애들아, 저 씨앗처럼만 살아라

할미꽃, 민들레, 방가지똥의 씨앗이 주는 삶의 소리

등록 2003.04.16 06:43수정 2003.04.1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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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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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연한 새순을 내고 노란 꽃을 피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들판 여기저기에서 민들레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바람 따라 긴 여행을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긴 여행을 준비하는 형을 배웅이라도 하려는 듯 피어오르는 노란 민들레들꽃이 더욱 흐드러지게 들판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오늘같이 따스한 봄날을 예고하는 아침에는 아이들 학교 보내가 싫습니다.


자연의 품으로 달려가 고사리도 한 줌 꺽어 보고, 꽃구경도 하면 좋겠는데 큰 아이들은 아빠의 제의를 무시하고 친구들이 좋다며 학교로 가고, 유치원 다니는 막내만 아빠를 따라 나섭니다. 막내를 데리고 고사리도 꺽고, 꽃구경도 시켜줄 생각을 하니 즐겁기만 합니다.

이렇게 좋은 날 아이들을 교실 안에 가두어 두어야 한다니, 우리의 교육은 '나이스'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골에 살면서도 꽃 이름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흙 한번 만져보지 못하고, 바다 근처에 살면서도 여름에 한 두 번 바다에 나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우리의 현실입니다.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행정을 한다고 '나이스'를 외치며 부모들의 신상명세서까지 요구하는데에만 신경쓰지 말고 자기 주변의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교육에 좀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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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아빠, 이리 와봐! 이상하게 생긴 꽃이 있다."

세상에, 그 곳에는 제가 이른봄부터 그렇게 찾으려고 해도 찾지 못했던 할미꽃이 있었습니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꽃, 그리고 이제 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할미꽃을 보니 어린 시절 할미꽃이 만개해있던 고향생각이 간절합니다. 지금 그 자리엔 아파트단지가 자리를 잡고 있죠.


"아빠, 꼭 머리 안 감아서 헝클어진 것 같다. 머리카락이 꼭 할머니들 머리카락처럼 하얗다."

꽃 이름을 알려주기 전에 여섯 살 짜리 막내가 한 말입니다.


"와, 우리 용휘 꽃 박사해도 되겠다. 이 꽃 이름이 뭐냐하면.....할미꽃이다."
"에이 거짓말, 아빠가 지어낸 거지?"
"아니야, 아빠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 줄께...옛날에 두 딸을 가진 할머니가 살았는데......"

할미꽃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며 아이들의 눈썰미가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척 보니 할미꽃이라고 이름 지을만한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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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들판 여기저기에 새 생명을 준비하는 몸짓들이 하얗게 피어납니다. 이제 그들은 바람을 타고 먼 곳으로 여행을 가겠죠. 그리고 그들이 여행의 종착지라도 여겨지는 곳, 그 곳에 가면 그 곳이 바위든, 돌 틈이 되었든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모습을 피어내겠죠.

자연은 떠나는 모습도 추하지 않습니다. 그저 덤덤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그리고 내가 배워야할 삶의 지혜를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어디든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피어나고, 그리고 떠날 때가 되면 그것도 덤덤히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이요, 아름다운 삶이라고 말입니다.

아들의 고사리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치원에 간 것보다 훨씬 좋은 날이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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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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