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79

등록 2003.05.02 17:41수정 2003.05.0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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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금와왕 앞에서 자신의 성급함을 실토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금와왕의 과감함에 맞서 주몽은 당당하게 얘기했다.

"화라니 어찌하여 화를 당한 단 말이오? 이 사람들은 모두 고구려왕인 내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부여로 문상을 가는 사람들일 뿐이오."


금와왕은 주몽의 뜻을 알고선 얼굴이 밝게 펴졌다.

"그렇다면 어찌 내가 막을 수 있겠소? 허나 사전에 얘기가 되지 않아 이 많은 사람들을 편히 먹이고 재울 곳을 마련하지 못했구려. 애써 올 것도 없이 이곳에 계시면 이 개사수가에 태후의 예로 신묘(神廟)를 세워 제사를 올리려 하는 데 그래도 괜찮겠소?"

"그렇게 해주시면 고마울 따름입니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 주몽과 금와왕은 짧은 대화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금와왕은 그 길로 돌아가 유화부인을 비류수가에 장사지내고 신묘를 세워 그 넋을 위로했다. 힘든 싸움을 치를 것이라 여겼던 병사들은 안도하며 부여에서 보내준 음식과 술로 흥겹게 노닐었다. 이 시기에는 장례를 치를 때 그곳에 온 사람들이 최대한 흥겹게 노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덕목 중 하나였다. 주몽은 금와왕에게 방물을 보내 감사함을 표시했다.

일의 진행을 전해들은 대소는 적극적으로 말은 하지 못한 채 화만 삭힐 뿐이었다. 더구나 금와왕은 고구려에 거짓으로 갔다 왔다고 한 사신들을 불러 문초하고선 먼 곳으로 추방시켜 버렸다. 분명 금와왕은 대소가 이 일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건드리고 싶진 않았고 대소 역시 좀 더 조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었다.


월군녀는 주몽이 한 일에 대해 크게 낙심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과욕이 너무 지나치지나 않았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끔 되었다. 해위는 이런 월군녀의 모습을 보며 한 가지 결심을 굳혔다. 주몽을 찾아가 독대를 청한 해위는 꿇어앉아 깊이 머리를 숙이며 먼저 잘못을 빌었다.

"무슨 일이오? 대체 왜 이러는 것이오?"


이미 상황을 짐작한 주몽이었지만 곁으로는 모른 척 해위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뢰옵니다. 신(臣)해위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모든 사실을 낱낱이 고하겠나이다."

"경이 말하려는 건 바로 왕후가 꾸몄던 일에 관한 것이 아니오? 그런 거라면 다 알고 있소."

주몽의 말에 해위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이미 다 알고 있다면서 자신을 그대로 놓아둔 저의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신(臣)을 죽여주시옵소서!"

주몽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내가 경을 왜 죽인단 말인가. 난 아무도 미워하지 않네. 단 내 말만 듣는다면 말일세."

"어떤 명이던 따르겠나이다!"

"앞으로 왕후가 어떤 일을 꾸민다면 즉시 짐에게 얘기해 주게. 이만 물러가게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해위가 물러간 후 주몽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은 월군녀에 대한 분노는 물론 아니었다. 자신의 위선적인 모습에 대한 분노였다.

'묵거! 자네가 말한 통치자의 길이 이런 것이었나? 다른 이들에게 거짓된 모습을 보여주며 그것이 나라고 믿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오지도 못하고 주위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것이 왕이란 말인가?'

주몽은 그동안 미움을 가지지 말라는 묵거의 유언이 진실 된 마음을 가지라는 충고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주몽에게는 점점 미움을 가지지 않는 다는 것은 자신을 철저히 기만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가고 있었다. 이 때부터 주몽의 전쟁은 밖으로 뻗어가지 않고 그의 마음 속에서 격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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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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