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등한 립장에서 통일해야지요

항일유적답사기 (10) - 연길로 가는 밤 열차Ⅱ

등록 2003.05.02 16:11수정 2003.05.0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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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도문에서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북한 남양이다. 멀리 북한 초소와 김일성 주석 초상이 희미하게 보인다. 중국에서 두 사람이 다리를 건너  북한으로 입국하고 있다. 국경치고는 언저리가 고즈넉하기 그지 없었다.
중국 도문에서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북한 남양이다. 멀리 북한 초소와 김일성 주석 초상이 희미하게 보인다. 중국에서 두 사람이 다리를 건너 북한으로 입국하고 있다. 국경치고는 언저리가 고즈넉하기 그지 없었다.박도
밤 열차

그들 세 사람이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면 내가 소외감을 느꼈고, 우리 조선족 세 사람이 우리말로 대화를 나누면 한족 청년이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들끼리 대화를 나눌 때면 별다른 얘기가 아닐 테겠지만 한몫 끼지 못하고 멀거니 바라본다는 게 괜히 따돌림을 당한 것 처럼 느껴졌다.

우리 조선족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눌 때면 한족 청년도 같은 기분이었을 게다. 우리 동포 세 사람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북한 식량문제로 옮아갔다.

“수령님이 돌아가신 후, 자연 재해를 맞아서 일시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겁네다. 북조선 전역에 내리 삼년 동안 가뭄 아니면 큰물이 졌기 때문입네다.”

몇 마디 대화밖에 나누지 않았지만, 황씨는 북한에 대하여 무척 호의적으로 말했다.

“우리 친척도 북조선에 사는데 그들이 이따금 찾아와서 처음에는 몇 보퉁이씩 먹을 걸 싸서 보냈습네다. 그런데 그들이 너무 자주 찾아오니까 아무래도 부담이 되지요.”
김씨는 한국에 대해 다소 호의적으로 말했다.


"하루 빨리 북조선도 개방해야 경제도 발전되고, 또 북미간 평화 협정도 맺어야 합네다. 작은 나라 북조선이 큰 나라 미국과 맞서자니 엄청난 군비가 들어서 북조선 당국이 인민들을 충분히 돌볼 여력이 없는 겁네다.

북조선이 미국과 평화 협정을 체결한 후, 경제력을 회복한 다음 북과 남이 외세를 물리치고 대등한 립장에서 통일해야지요.”


황씨는 북한 주민의 굶주림이 자연 재해와 막대한 군비 때문이라고 힘써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 나름대로 통일의 방법까지 얘기했다.

“사회주의는 욕심이 없다보니 발전이 너무 느려요. 이태 전에까지는 서울에 오가며 장사를 해서 괜찮았는데 요즘은 서울 가기가 하늘에 별따기야요.”

김씨는 서울을 동경하는 듯했다. 남편은 연길의 아무개 빈관에서 복무원으로 있으며, 자기는 장춘을 오가며 보따리 옷 장사를 한다고 했다.

연변 조선족 대부분은 먹고 입는 데는 큰 걱정이 없으나 자녀 교육비와 문화 생활비에 부족함을 느낀다면서 “여기 사람들은 외국에서 돈을 벌어와야 큰 부자가 된다”고 했다.

내가 사회주의 국가에서 무슨 교육비냐고 의문을 말하자, 최근에는 여기서도 교육비 부담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남보다 자식을 잘 가르치려면 가욋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중국이 개방된 후, 이곳 농촌 총각들이 장가가기 한결 어려워졌어요. 반반한 처녀들은 도시로, 남조선이나 일본으로 많이 나갔시요.”

김씨는 배시시 웃으면서 자기도 처녀였다면, 아마 남조선이나 일본으로 갔을 거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이미 겪었던, 현재도 겪고 있는 농촌 총각 결혼 홍역을 이곳에서는 이제 한창 겪는 듯했다.

“조선족과 중국인과의 갈등은 없습니까?”
내가 황씨에게 물었다.

“전혀 갈등이 없습네다. 한족들은 자기와 관계없는 일에는 별로 끼여들지 않습네다. 또 중국 중앙정부 당국에서는 벌써 오래 전부터 조선족도 자기네 인민으로 인정하고 자치주까지 만들어줬습네다.”

연길 서문 시장 근처에서 만난 참외 장수 허생원, 리어카를 나귀가 끌고 있었다.
연길 서문 시장 근처에서 만난 참외 장수 허생원, 리어카를 나귀가 끌고 있었다.박도
내가 그동안에 들은 말 중에서 가장 반가운 말이었다. 남의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 백성들로부터 차별 대우를 받는다면 그처럼 힘든 일이 있으랴.

그들은 나의 동북 유람 목적을 물었다. 중국 대륙에 흩어진 항일 독립유적지 답사를 왔다고 하자 다소 놀라면서도 반기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자기 세대도 조상들이 고생 많이 한 것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자세히는 모른다고 했다.

황씨는 남한을 동경하는 김씨와는 달리, 절대 빈곤이 없는 사회주의가 빈부 차이가 많은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체제이며,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사회주의 건설을 위하여 산다고 했다.

그의 너무나 당당한 이야기에 더 이상의 토론으로 잠깐 만남에 흠을 남기고 싶지 않아 나는 말을 아꼈다.

사람은 저마다 얼굴이 다르듯, 생각과 사상이 같을 수는 없다. 이제는 냉전 시대를 벗어난 때가 아닌가?

어떤 이데올로기든 모두 다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그 나라의 처지, 그 백성들의 뜻에 따라 가장 좋은 이데올로기를 찾아서 살면 되는 것이다.

960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우리나라 남북한의 무려 44배나 되는 거대한 국토에 56개의 민족, 13억 인구가 몰려 사는 공룡 중국은 그들 나름의 사회주의가 전 인민을 골고루 잘 살게 하는 알맞은 체제일지도 모르겠다.

중국 역사상 지금 같이 나라가 안정되고, 굶어죽는 사람이 적은 때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저런 얘기로 밤이 깊었다. 한족 청년은 이미 잠이 들었다. 나는 내 욕심만으로 그들을 붙잡고 더 이상 얘기를 나누기가 미안해서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객실을 빠져 나왔다.

복도에서 차창밖을 내다봤다. 드넓은 만주 대륙이 어둠에 잠든 듯 깊은 침묵에 빠졌다. 고요히 잠든 대지를 열차는 외롭게 쉬엄쉬엄 달렸다.

그냥 잠들기에는 무언지 아쉬움이 남았다. 누구라도 만나야만 갈증이 풀릴 것 같아서 객차를 건너 다녔다.

열차 뒷부분 객실은 일반 객실로 6인용이었다. 무더운 날씨 탓으로 출입문을 열어놓아 객실 안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일찌감치 잠이 든 승객, 책이나 신문을 펼치고 있는 승객, 삼삼오오 둘러앉아 트럼프 놀이를 하는 객실, 고량주를 가운데 두고 모임을 갖는 객실…….

한참을 쏘다녀도 내가 아는 얼굴도, 나를 알아주는 승객도 없었다.
“남조선에서 오신 선생 동무, 나랑 얘기 좀 합시다래.”

불쑥 내 어깨를 치며 악수를 건네는 북녘 동포도 없었다. 나는 객실로 돌아와 조용히 침상에 오른 후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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