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31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1)

등록 2003.05.13 11:45수정 2003.05.1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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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뭐라고?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대응하겠다고?"
"그렇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말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단단히 맛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런 괘씸한! 지금 당장 공격준비를…"
"아닙니다. 아직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위험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더냐?"

감히 자신에게 말을 정면으로 거역한 주석교가 못 마땅하여 분노에 떨던 철룡화존 구부시는 철기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놈들이 그걸 개발하지 못하였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습니다. 공격은 그걸 확인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오늘은 무림천자성의 극상층 수뇌부들만 모여서 회합을 갖는 날이다. 지금껏 철기린은 소성주 신분이면서도 이 회의에는 끼어 들 수 없었다. 그만큼 중대한 회합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회합은 의례적으로 열리는 회합이 결코 아니다. 현재 전 무림의 관심이 집중된 일을 결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무림천자성에는 온 천하에 산재한 무천장과 각 문파에 파견된 분타, 그리고 만천하에 두루 깔려있는 상계(商界) 등등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첩보들이 집결된다.

어떤 일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이해 당사자들간의 주장이 서로 난마처럼 얽혀 하나만 보면 다른 하나를 왜곡하기 쉬운 법이다. 따라서 이것들을 취합하고 분석하여 정확한 상황을 도출해 내는 것은 몹시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무림천자성에는 이러한 일을 전담하는 기구가 있다. 철마당이나 철검당 등 팔 당보다 상위 기구인 비보전(秘報殿)이다.

비보전주는 십이 장로 가운데 하나로 아무리 털어도 먼지가 안 난다는 무비수사(無非修士) 고파월(高巴月)이다.

그는 일개 무천장주 출신으로 장로 직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비교적 온건한 성품이다. 그는 현재 천하에 산재한 무림천자성의 분타들을 총괄하고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무림천자성 휘하 모든 세포 조직으로부터 정보를 전달받는 비보전과 버금갈만한 조직으로 순찰원을 꼽을 수 있다.

원주는 십이 장로 가운데 하나로 늘 오각형으로 지어진 전각에만 머물기에 오각수(五角帥)라 불리는 도날두(陶捏杜)가 맡고 있다. 방금 전 강경한 발언을 했던 사람이다.

그 역시 일개 정의수호대원 출신이다. 뛰어난 두뇌를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현 성주인 철룡화존의 눈에 뜨였다. 이후 몇 가지 시험을 거치는 동안 능력을 인정받아 현 위치에 오른 것이다.

비보전이 앉아서 일한다면 순찰원은 발로 뛰는 조직이다. 순찰원 소속 순찰들이 직접 강호의 모든 곳을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무림천자성이 세인의 선망을 받는 중대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각수 도날두나 무비수사 고파월처럼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림의 대세를 결정하는 이 회합에는 성주인 철룡화존과 부성주인 인의수사 채니, 그리고 오각수와 무비수사를 비롯한 장로들, 그리고 차기성주로 지목된 철기린 뿐이다.

오늘의 의제(議題)는 코앞으로 다가온 월빙보 공격 준비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를 사전 점검함과 아울러 장차 획책하고자 하는 주석교와의 일전(一戰)을 논의하기 위함이다.

얼마 전 무림천자성은 아부가문 문주인 금금존자 오사마를 잡기 위하여 삼만에 달하는 정의수호대원들을 파견한 바 있었다.

사실 이 대결은 애초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병장기의 성능부터 시작하여, 기동력이나 인원 등등 모든 면에서 무림천자성이 월등하였다. 아니 월등 정도가 아니었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지닌 장사 수백 명과 갓 부화된 병아리 한 마리와의 대결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수호대원들 가운데 목표하였던 금금존자 오사마의 옷자락이라도 구경해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정파 무림 사람들은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지만 마도 문파 사람들을 이를 두고 웃기는 일이라며 포복절도하였다.

이를 치욕으로 생각한 철룡화존 구부시는 공개적인 망신을 어떻게든 만회할 방법으로 서둘러 다음 목표를 결정하였다.

구부시의 구겨진 체면 때문에 피를 보아야 할 공격목표로 지목된 곳은 흑염수사 후세인이 이끄는 월빙보였다.

철룡화존이 그를 지목한 이유는 구 층짜리 쌍둥이 누각인 세무각 폭파사건에 자금을 지원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전에는 이러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 합당한 증빙자료들을 공개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증거 제시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발표를 무조건 믿으라 하였다.

흑염수사 후세인은 이에 즉각적인 반발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러면서 증거를 요구하였으나 묵살되어 버렸다.

이후 철룡화존은 누가 뭐라 할 틈도 주지 않고 공격준비를 명령하였다. 이것을 두고 마도에서는 말이 많았다. 같은 마도 문파인 월빙보가 공격을 당할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파무림에 속해있는 청성파(靑城派) 때문이었다.

얼마 전, 무림에는 놀라운 소문 하나가 떠돌았다. 청성파 장문인 삼안수사(三眼秀士) 민진부(閔秦富)의 여러 여식 가운데 하나가 오사마에게 은자를 건넸다는 것이 그것이다.

드러난 정황증거에 의하면 그 은자가 바로 세무각을 폭파시킨 폭약을 구입하는데 사용된 은자라고 하였다. 따라서 폭파사건의 배후에 청성파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무림천자성에서는 이것을 믿을 수 없는 증거라고 일축해 버렸다. 그리고는 처음에 발표한 대로 월빙보에서 지원하였다며 연일 공격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얼마 전, 철룡화존은 수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석교에 대한 식량 지원을 금하도록 명을 내린 바 있었다.

이에 비교적 온건한 성품인 무비수사를 비롯한 몇몇 장로들은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그런 명령을 내리는 것을 이해 수 없다면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룡화존은 성주 직권으로 명대로 이행하라 하였다. 그 결과 주석교는 예상되었던 반응을 보였다. 중단하였던 천뢰탄 개발을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 그것이다.

무림천자성으로서는 늘 자신들에게 반발만 하는 주석교가 곱게 보일 리 없다. 주석교 제자들이 굶어 죽거나 말거나 어떻게든 박살내려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식량을 지원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제자들을 기아(飢餓)에 허덕이고 있었지만 주석교는 천뢰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었다.

무림천자성으로서는 이것이 상당한 위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만일에 선무분타나 왜문문타에 사용할 경우 그곳에 있는 정의수호대원들 전원이 몰살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성되기 전에 박살내야 하나 그것 또한 마땅치 않았다. 주석교를 후원하는 화존궁과 일월마교 때문이었다. 주석교를 공격하면 그들의 합세가 예상되었다.

따라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한 함부로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무림천자성에서 내놓은 방법이 바로 식량지원이었다. 부족한 식량을 줄 테니 천뢰탄 개발을 중지하라 하였던 것이다.

무림에는 크게 나눠 두 가지 문파가 있다. 천뢰탄이 있는 문파와 없는 문파이다.

무림천자성이나 화존궁, 일월마교 등은 다른 문파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문파이다. 잘못 건드렸다가 천뢰탄 공격을 받으면 자칫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천뢰탄이 없는 문파는 강대 문파들의 부당한 핍박에도 제대로 항의조차 못한다.

없는 문파 가운데에는 선무곡도 포함되어 있다. 겉으로 드러내 놓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정황 상 무림천자성에서는 선무곡을 하나의 문파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저 이용가치가 있기에 그냥 내버려두는 문파일 뿐이다. 왜문이나 화산파에도 무림천자성의 분타가 있다.

따라서 각 문파와 체결한 분타 지위 협정서가 있다. 그것들은 선무분타 지위 협정서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선무분타의 것이 그보다 훨씬 더 불평등한 것이다. 얼마나 불평등한지는 얼마 전에 일어났던 사건에서 알 수 있다.

마차를 몰던 두 호위무사는 아무런 죄도 없는 두 소녀를 깔아 죽였는데도 무죄 방면되었고, 아무런 사과도 없었다.

공무 중에 일어난 사고이니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무 중이라면 선무곡의 어느 누구든 마음대로 죽여도 되고 그에 대한 책임은 일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에 대한 일체의 항의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선무곡의 그 어느 누구도 사고 조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선무분타 지위 협정서에 기록된 조항이다.

그야말로 불공평의 극치이지만 선무곡으로서는 힘이 없기에 울며 겨자 먹는 기분으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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