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토론할 줄 모르니?"

교생일기 - 문활(literacy)이 상실된 교실

등록 2003.05.18 15:27수정 2003.05.18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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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eracy : '읽고 쓸 줄 아는'능력으로 흔히 이해되어 왔으나 현재는 좀더 범위를 넓혀 '정치, 사회, 문화와 관련된 모든 활동을 영위함에 있어 그 활동의 방법을 찾아내고 배우는 일련의 과정'으로 규정되고 있음.

예비 교사의 신분으로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교육실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첫 주는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다보니 어느새 지나가 있었고, 두번째 주부터 본격적으로 각종 수업 참관, 조회/종례 지도, 학생 개별 면담 등을 실시하면서 우리 중등교육 현장의 현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나는 3학년 학급의 부담임으로 배정을 받았는데, 모든 것이 내가 중학교 3학년 시절이던 10년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면담을 통해 만나는 학생들은 10년전의 나와 마찬가지로 어느 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인가, 성적을 어떻게 올릴 것인가, 부모님과의 코드 불일치는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따위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수업 역시 마찬가지. 수행평가가 도입되었다는 점은 예전과 달랐지만 참관을 통해 본 수업 현장은 예전과 크게 다른 것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러나 수업 현장에서 여전히 리터러시의 역동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은 한편으로는 익숙하면서도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리터러시는 단순히 교육의 목적을 '학생으로 하여금 읽고 쓸 줄 알게 하며 어떤 사항을 머리 속으로 이해시키는'맥락에 한정하지 않고 배우는 사항을 자신의 삶과 연관지어 실질적으로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까지를 염두에 둔다.

교육은 지식 전달, 문화 전수 따위의 역할을 넘어 한 인간이 자기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게끔 하는 기술을 형성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는 점에서 리터러시의 중요성은 강조될 수밖에 없다.

7차 교육과정에 따라 새로 바뀐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이 실려 있었다. 원미동이라는 특정 지역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서민들 사이에 벌어지는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소설이 교과서에 실린 이유는, 이것을 읽으면서 소설이 얼마나 우리네 삶살이를 잘 드러내고 있는지를 맛보며 소설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자신의 삶과 결부시켜 이해하게 하기 위함이라 생각된다.

중학교 3학년생들에게 이러한 목적은 달성되기 어려운 것인가?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실제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최소한 소설을 자유롭게 읽으며 현재 자신의 삶을 떠올리고 감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교실 수업에서 원미동 사람들의 삶은 학생들의 삶과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험용 텍스트'로서, 구문과 한자어와 속담과 지시 대상을 완벽히 파악하라는 과제를 던져주는 하나의 구조물일 뿐이었다. 감상보다는 소설 내용 파악에 더 중점을 두는 프린트물, 작가가 소설을 쓴 이유보다 소설 내부의 어려운 단어나 구문에 더 신경쓰는 교사의 설명 등이 그랬다.

이러한 생각을 하던 차에 1학년들의 수업을 참관할 기회가 생겼다. '가정교육의 어제와 오늘'이 해당 단원이었는데 학생들이 직접 발표를 준비해 왔다는 것이다. 흥미를 느껴 교실에 들어갔는데, 단원 내용을 설명하겠다고 앞에 나온 학생은 '어디어디에 밑줄을 긋고 그 밑에 이러이러하게 적으세요'라는 말만 하며 30분을 소요했다. 자습서를 베껴온 듯한 흔적이 역력했다.


반면 다소 예전에 쓰여진 이 글이 자신이 받아온 가정 교육 및 가정의 현실과 어떻게 다른지 따위를 발표하거나 궁금해 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교사가 개입하여 그런 분야의 질문을 유도할 법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추후 이에 대한 질의에 '이렇게라도 해야 학생들이 본문을 보고 시험에 대비하게 된다'는 답변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교사의 책임만이 아니었음은 뒤이은 수업 참관을 통해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2학년의 한 학급 아이들이 그것을 가르쳐 주었는데, '글읽기의 본질'을 전달코자 하는 수업에서 교사는 이것 저것 유인물을 배포하고 모둠 활동을 지시하는 등 활발하게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노력했음에도 학생들의 반응이 자못 싸늘했다는 것이 그러했다.

교사의 사전 지시없이 스스로 생각하여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방식의 수업에 대해 학생들은 익숙하지 않은 듯 서로 잡담하며 소란스러운 수업 분위기를 연출했다. 4명이 토론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내도록 한 모둠 활동에서도 수업과 관련 없는 잡담으로 일관하거나 1명에게 위임(?)하는 모둠이 대부분이었다. 분위기를 잡기 위한 교사의 각종 발언도 별반 효과를 보지 못했다.

"너희들, 토론할 줄 모르니?" 통제에 지친 교사가 결국 내뱉은 말이다. 나는 이 말 속에 현재 우리 교육현장의 현실과 문제점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 속의 이해에 그치지 않고 가슴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는 배움은 토론과 대화, 참여 속에서 형성될 수 있겠기에 그렇다. 교사와 학생이 스스로 접하고 있는 텍스트를 '토론이 가능한, 열린'것이 아닌 '시험을 위해 파악해야 할 구조물'따위로 받아들이는 이상 리터러시의 상실은 불가피하다. 리터러시가 상실된 교실의 뒷벽에는 이름과 숫자만이 가득한 '중간고사 성적 일람표'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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