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39

찌를 때와 후려칠 때 (4)

등록 2003.05.22 13:31수정 2003.05.2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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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신선도에 남긴 이유는 동해무치가 장일정을 대신하여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근골이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 소리를 들은 호옥접은 무공을 연마하겠다면서 떠나기를 거부하였다.


장일정이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직접 무공을 익혀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다.

장일정은 처음엔 만류하였다. 하지만 살부살모를 저지른 흉수와 어찌 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있겠느냐는 말에 할말이 없었다. 그래서 반광노조와 둘만 나왔던 것이다.

장일정이 순순히 그녀를 남겨두고 온 것은 생각한 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절정 무공을 익혀 원수를 갚을 수 없다면 독(毒)을 이용하여 독살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낸 것이다.

북의가 지니고 있던 편작내경에도 독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해독(解毒)에 관한 내용이지 용독(用毒)에 관한 내용은 아니다. 다시 말해 중독된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지 독으로 사람을 죽이는 내용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독공(毒功)에 대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것은 신선도에서는 익힐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함께 있다가 무슨 불상사가 생길지 몰라 혼자 나온 것이다. 독공을 연마하다 자칫 호옥접을 중독시킬까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뭍에 올랐으나 그때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독공이란 익히는 사람도 드물고, 익히는 과정도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자칫 익히던 중 중독되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공에 관한 서적은 눈을 씻고 찾아 보려해도 찾을 수 없어 심히 고민되던 차였다.


그러던 차에 무천의방으로 가자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불감청(不敢請)일지언정 고소원(固所願)이었다.

적어도 무천의방에 즐비하다는 의서 가운데에는 분명 독공에 대한 것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핫! 소화타께서는 워낙 탁월한 의술이 있으시니 분명 방주가 되실 겁니다."
"에구, 그런 말씀 마십시오. 무천의방에 있는 의원들 모두가 기라성 같다는데 소생이 어찌…"

"하핫! 무슨 말씀을… 겸손도 웬만하셔야지…"
"그나저나 무림천자성에 대한 이야기 좀 해 주십시오."
"하핫! 물론입니다. 무림천자성은…"

상해 무천장주의 설명은 참으로 상세하였다. 장일정이 장차 무천의방 방주가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객잔 장방의 아들이 앓던 고질은 인근 강소성과 절강성, 그리고 안휘성은 물론 멀리 강서성과 복건성의 내놓으라 하는 의원들 모두가 한번씩은 들여다본 소문난 병이었다.

따라서 발병한 이후 들여다보거나 한번이라도 진맥해본 의원들의 수효만 해도 족히 오백은 넘을 것이다.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무슨 병인지 알아내지 못하였다는 것과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며 고개만 흔들면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들로서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괴이한 고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장일정은 불과 십 일만에 무려 십 년이나 병석에 누워있던 장방의 아들이 벌떡 일어나도록 하였다.

상해 무천장주는 매년 원단에 신년하례식을 할 때마다 무천의방 의원들에게 영화객잔 장방의 아들이 앓고 있는 질병에 대해 물은 바 있었다. 장방과 친분이 돈독하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적지 않은 은자를 후원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의방의 의원들조차 증상을 이야기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장방의 아들은 하루 중 가장 양기가 강하다는 오시(午時)만 되면 마치 광인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광을 하다가 혼절하곤 하였다. 깨어나서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하곤 하였다.

그러다가 점차 병이 깊어지자 발광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고 하였다.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온통 욕창( 瘡)이 생겨날 것이기에 사람을 사서 반 시진마다 뒤척이게 하는 것도 큰 일이었다고 한다.

수년 전부터는 몸의 한쪽을 쓰지 못하였고, 이를 악물고 있어 음식을 먹이는 것도 곤란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고 하였다. 덕분에 환자는 마치 목내이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의술에 문외한인 사람이 본다 하더라도 이구동성으로 달포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할 정도로 보였다.

장일정이 진맥한 결과 장방의 아들은 한두 가지 병에 걸린 것이 아니었다. 최근에 걸린 것은 중풍이었고, 전부터 앓던 병은 분명 남만(南蠻)에서만 난다는 고(蠱)로 인한 질병이었다.

이것은 웬만한 의서에는 거명(擧名)조차 되지 않는 것이기에 무천의방 소속 의원들조차 고개를 갸웃거린 것이다.

장일정은 속명탕(續命湯)을 복용시킨 후 백회, 신회, 풍지, 견우, 곡지, 합곡, 환도, 풍시, 삼리, 절골혈 등에 뜸을 떴다.

그리고 인중, 협거, 백회, 승장, 합곡, 예풍혈 등에는 침을 놓았다. 이렇게 하자 한쪽 몸에 있던 마비도 풀렸고, 악물었던 입도 원래대로 되었다. 웬만한 의원들이라면 절절 맬 난치병 중의 난치병인 중풍을 불과 이레만에 완치시킨 것이다.

만일 탕약과 침, 그리고 뜸에 대해 정통하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 한 일은 너무도 간단하였다. 생사잠을 담갔던 물을 복용시킨 것이다. 그러자 사흘이 지난 후 재채기와 함께 환자의 입에서 좁쌀보다도 작은 벌레가 기어 나왔다.

깊은 혼절에 빠져 있던 환자가 깨어난 것은 바로 이때였다.

이날은 장일정이 처음 진맥한 날로부터 정확히 열흘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이날부터 무려 보름 동안 영화객잔은 개점 휴업 상태가 되었다. 성대한 연회가 베풀어졌기 때문이다.

장방의 아들은 청년시절 기루에 들렀다가 천하절색인 옥향(玉香)이라는 기녀를 보고는 흠뻑 빠져들었다.

곧 그녀의 방심(芳心)을 얻기 위한 대대적인 선물 공세가 이어졌다. 그 결과 매일 밤 살이 타고 뼈가 녹는 듯한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事)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사내는 그때까지 혼례를 올리지 않은 총각이었다.

옥향은 자신의 신분 때문에 정실부인은 되기 어려우나 적어도 첩실의 자리만은 차지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몸담고 있던 기루에 새로운 기녀가 왔다. 설매(雪梅)라는 기명을 지닌 그녀는 옥향과 비교하였을 때 조금도 손색이 없는 미모를 지닌 천하절색이었다.

손에 쥔 떡은 작아 보이고 남의 손은 떡은 커 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같은 꽃이라 할지라도 들판에 핀 꽃보다 절벽 위에 핀 꽃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다.

이미 옥향의 청백을 차지한 장방의 아들 눈에는 설매가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다. 하여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이후 마치 혼백이 빠진 사람처럼 멍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옥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설매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버렸다.

옥향은 비록 기녀이기는 하지만 몸을 파는 창기(娼妓)는 아니었다. 장방의 아들을 진심으로 연모하였기에 청백을 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방심까지도 주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자 배신감에 치를 떨던 그녀가 선택한 것이 바로 음양환락고(陰陽歡樂蠱)였다.

이것은 사시사철 고온다습한 곳에서만 서식하는데 보통 음양 한 쌍이 붙어 지낸다. 남만 지방에서는 변함 없는 애정을 증거하려 연인들 사이에 가끔 사용되는 것이다.

양고와 음고를 나눠 복용할 경우 상대 이외의 이성과 음양화합을 할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장방의 아들은 설매의 마음을 얻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와 옥향과의 관계를 알기에 좀처럼 다가설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상해에서 제법 잘나간다는 집안의 청년들 모두가 그녀에게 눈독들이고 있었기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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