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얘기 귀담아 듣는 언론이 진짜 언론"

새벽을 여는 사람들 (16) <한겨레> 윤전부 강현명씨 이야기

등록 2003.05.23 17:00수정 2003.05.2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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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무형의 역사들이 윤전기사 강현명(32)씨의 손을 통해 유형의 기록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역사를 갓 구워낸 따끈따끈한 종이 냄새가 진동을 하고 비행기의 굉음을 쏟아내는 윤전기가 쉴새 없이 달리고 있습니다.


"제 손으로 직접 만든 신문을 통해 독자들이 몰랐던 세상 얘기들을 알게 된다는 것에 일의 보람을 느낍니다."

<한겨레> 윤전기사로 11년을 재직한 강현명씨는 "매일 다른 기사가 나오기에 매 순간마다 새로워요. 일 할 때는 어떻게 시간이 가는 지도 몰라요" 하며 자신의 일에 긍지와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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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더불어 그는 국민주로 창간한 <한겨레>를 만든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집니다.

"우리 윤전부는 다른 신문사와 달리 젊은 윤전기사가 많아요. 비록 일은 힘들어도 <한겨레>에 대한 믿음과 고집을 가진 젊은 윤전기사들이 많다는 것이 우리 윤전부의 자랑이죠.

잘못된 것은 잘못했다고 정확히 꼬집어 주고,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며, 민감한 문제들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정면에 맞서 강하게 질타하는 신문이 바로 우리 <한겨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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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반면 일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냐는 물음에 그는 "그런 건 없어요. 아직까지 단 한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하며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에겐 새벽 2시가 가장 졸린 시간입니다.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팔굽혀펴기 등을 하지만 간혹 틈틈이 눈을 붙이는 순간도 있다고 합니다.


"이젠 일상이 돼버렸지만 그래도 밤에 일하는 게 솔직히 힘든 건 사실이죠. 가끔 짬을 내 눈을 붙이기도 하는데 그때는 기계의 시끄러운 소음을 들어야 비로소 마음놓고 잠을 잘 수가 있어요. 오히려 기계 소리가 멈춰 조용해지면 잠이 확 달아나 버려요. 그건 즉 기계에 무언가 사고나 문제가 터졌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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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인쇄업이 발달된 몇몇 나라에서는 이미 모든 작업이 자동화되어 윤전기사가 사양 직업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인터넷 매체의 범람으로 인해 종이 신문의 가치가 위협을 받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는 종이 신문에 관한 애틋한 믿음을 져버리지 못합니다.

"이미 생활 정보지 B신문은 모든 작업을 다 기계가 하고 있어요. 경영자 처지에서는 첨단 기계화가 이익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아무리 디지털 시대가 도래한다 해도 종이 신문이 그리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와 달리 날이 갈수록 더 좋은 질의 신문을 독자에게 보여준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만 둘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해 본 적이 없구요. 근데 점차 기계화되면 일 할 수 있는 그 많은 인력들이 과연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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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에겐 세 살배기 아들 석응이가 있습니다. 그는 석응이가 웃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젊은이로 성장하여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게 살아주기를 바랍니다.

"제 아들이 나중에 절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 제 일을 당당히 석응이에게 자랑하고 싶습니다! 인쇄업에 뛰어든 지 10년이 넘었지만 단 한번 후회없이 잘한 선택이라 스스로 믿고 있습니다.

제가 석응이를 어디까지 교육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석응이가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는 데까지 지원할 거예요. 단, 성인이 되면 석응이 혼자 독립하게 만들 겁니다. 부모에게 의지하는 약한 아들로 키우고 싶지는 않아요. 자립적이며 강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청년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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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의 인생엔 두 번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유년 시절 부모님이 크게 싸우셨을 때와 보증 때문에 가압류 처분이 내려졌을 때입니다.

"97년에 선배 보증을 섰어요. 착한 게 잘못이었나 봐요. 은행에선 계속 협박 전화가 오고 월급의 반이 나가고 가압류 당했죠. 차라리 돈을 그냥 줬으면 줬지…. 보증이라는 제도는 정말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멍청했나봐요. 결국엔 퇴직금을 미리 받아 다 갚았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 선배가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어디에 있든 잘 살았으면 해요.

그 당시 아내의 위로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결혼하고 난 후 아직 아내와 한번도 크게 싸운 적이 없어요. 어린 시절 부모님이 크게 싸웠던 걸 보고 상처를 받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아내와는 절대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 제 결혼생활 신조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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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얼마 전 그와 그의 아내는 또 한번 큰 슬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석응이 동생이 7개월만에 유산된 것입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무 말도 안 나와요. 아내가 이상한 꿈을 꿨는데 그게 똑같이 현실이 돼버렸어요. 아내가 정말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전 아내에게 바라는 것이 없어요. 오히려 제가 못 해 준 것들이 많아 그저 미안할 뿐입니다.

석응이 가졌을 때 입덧도 많이 하고 정말 고생했는데 맛있는 것 한번 못 사주고…. 매일 빈손으로 들어가고 정말 잘 해주지 못했어요. 노후에 아들녀석 장가 보내고 나면 아내랑 둘이 통나무집에서 농사 지으며 욕심 없이 사는 게 앞으로의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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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세 가지는 부모님, 가족, 직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 어머님이 아파 그의 마음이 좀처럼 편하지 않습니다.

"어머님이 허리 치료로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에요. 의사 선생님은 수술할 정도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지만 나이든 분이라 걱정이 되네요. 빨리 완쾌하셔서 다시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의 고향은 양평입니다. 한 달에 한 번 고향을 방문하는 그는 젊은이가 사라진 자신의 고향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는 소중한 과거의 것들이 많이 잊혀졌다며 씁쓸해 합니다.

"만약 제가 신문을 만든다면 잊혀진 옛날 얘기들을 많이 담고 싶어요. 서민들의, 서민들을 위한, 서민들에 의한 작은 기사나 투고들을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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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가 뽑은 23일자 금요일 추천 뉴스는 새만금 살리기 뉴스입니다.

"그 분들에게 정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온 국민들도 새만금 사업이 잘못 됐다는 걸 다 아는데. 정말 노 대통령은 새만금 사업에 대해 다시한번 고민해 신중히 결정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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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뿌연 먼지와 광음이 멈추는 시간입니다. 밤새 고생한 기계를 친자식 어루만지듯 정성스레 기름칠하고 닦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강현명씨는 그가 만든 신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통쾌함' 을 전달해 주고 싶어 합니다. 서민의 작은 얘기를 귀 담아 듣는 언론이 늘어나는 것 바로 그가 꿈꾸는 우리 언론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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