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딴지 같다'는 소리 듣지 않게 처신하는 것도 쉽지 않죠. 제 맘대로 아무데고 기어들어가는 돼지감자 같은 존재가 되지 않고 사는 법을 터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김규환
그런데 농촌에 살았던 나에겐 방학이 두 번 더 있었다. 무슨 (*1)‘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말할 신세대 청년이 있을 수 있다. 도시에서 학교 다닌 사람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일 것이다.
시골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던 까닭에 영농철인 늦봄과 가을에 방학이랍시고 주는 3~4일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고난의 ‘농번기 방학’이 있었다.
80년대 이전에는 저수지(貯水池) 하나 없는 (*2)'천수답(天水沓)'이 많아 농사짓기 힘들었다. 2모작을 했던 곳이라 얼른 보리 베어 보릿단을 쟁여두고 물때를 맞춰 몇 날 며칠이고 멱살잡이 해야 농사지을 수 있었다.
밤새 물을 대 가까스로 논을 갈아 써래질 하여 한시가 바쁘게 모내기를 해야하는 절박한 시기에 1차 ‘농번기 방학’하면 어른들 입장에서는 애들 줄줄이 많이 낳은 덕을 톡톡히 봤다. 막내가 좋았고 왜 나는 막내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심각히 고민하게 만든 ‘농번기 방학’.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이면 어른 몫에 버금가는 일을 해야했던 아이들은 학교에서 방학을 해주지 않으면 “거식아, 오늘 애 봐라와~”하시면 (*3)‘삭걸레’ 갈아주며 하룻내 포대기에 동생 업고 젖 물리러 논두렁 밭두렁을 오가야 했고 “보리 벼야 헝께 낼 핵꾜 가지마라와~” 하시면 두말 않고 일을 거들어야 했다.
“놉 얻어놨다. 모 심을라믄 바쁜께 심부름 해야된다.”하시면 아무 말 못하고 최소 이삼일은 학교 가지 않을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러고서 담임 선생님께 나중에 말씀드리면 아무 일이 없었다.
이러니 학교에서도 ‘농번기 방학’할 때가 되면 4학년 이상의 언니 오빠들은 책가방 대신 아버지가 잘 들게 갈아준 낫을 베이지 않게 (*4) ‘사내키’로 날을 칭칭 감아 겨드랑이에 끼고 학교로 갔다.
미리 신청한 학부모 댁을 돌아가며 3~4일 간 보리를 벴다. 휴식 시간에 샘물에 사카린 녹인 물 한 그릇 더 먹겠다고 얼마나 설쳐댔는지.
지금은 아마도 아동 학대 또는 강제노동이라 불릴 법하고 일 시키면 집 나가버릴 아이들 꽤 있을지도 모르는 ‘농번기 방학’. 오히려 나는 학교로 도망치고 싶었다.
바쁜 영농 철이다. 모내기가 한창이다. 부모님과 농사짓느라 애쓰는 형제에게 문안 인사드리자. 주말 여행은 잠시 접고 고향으로 농번기 방학을 떠나자. 일하며 먹는 새참은 꿀맛일 게다. 들녘에서 막걸리 한잔 들이키면 더 없이 좋을 테다. 아무 논에나 들러 ‘모밥’ 얻어먹는 추억을 되새기면서 추억도 한 아름 퍼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