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구야, 제발 무사히 돌아와만 다오

견공들의 가출사건...혹시 개장수가 끌고 간 게 아닐까?

등록 2003.05.30 11:39수정 2003.06.0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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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생활을 하면서 우리 식구로 생각하고 기르는 견공 세 마리가 있는데 순서대로 백구, 백팔, 황구가 그들이다. 그런데 요즘 황구는 집을 나가 소식이 없다. 그 이후로 어디서 개짖는 소리만 나면 혹시나 그 놈인가 해서 바깥을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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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백팔이가 염치가 없는지 주인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 이전같으면 난리가 났을텐데. 백팔이는 쌍꺼풀도 진하다. 넌 좋겠다. 쌍꺼풀 수술 안해도 되고. ⓒ 김민수

나흘 전 견공 백팔이의 허술한 집이 세찬 바람에 위태위태했다. 시골이라 개들에게도 자유를 주고 싶었지만, 이 놈들이 워낙 사람을 좋아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사람만 보면 달려드니 손님들이나 교인들을 여간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공무원들이 풀어놓은 개를 단속한다고도 하고, 도로로 다니다 사고라도 나면 모두 주인이 배상해야 한다고 하니 그들에게 자유를 만끽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서툰 솜씨로 개집을 만들어 입주를 시킨 것인데 똑같이 만들어 주었건만 유독 백팔이 놈이 힘이 좋아서인지 유독 백팔이의 집만 비가 오면 새고, 바람이 불면 쓰러지게 생겼다.

백팔이의 집을 만들어 주려 하는데 이 놈이 그저 한번만 쓰다듬어 달라고 난리들을 치는 통에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 만들 동안 마실 좀 갔다와라'하고 풀어주었다. 그랬더니 백구와 황구가 차별을 한다고 항의를 한다. '알았다. 너희들도 잠깐만 나갔다 와라' 할 수밖에...

이른 아침 신나게 길을 건너 골목길로 향하는 놈들을 보면서 개답게 키우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기서 사단이 생겼다. 나이가 제일 많은 백구(13개월)가 앞장을 서니 백팔이(8개월)와 황구(4개월)가 신나게 쫓아갔다.

집을 다 만들어 놓고 휘파람을 아무리 불러대도 기척이 없었다. 조금 멀리 갔나 해서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이상하게 동네를 돌아다니던 개들도 보이질 않았다. '혹시 개장수가 끌고 간 게 아닌가?'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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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도 반성하는 빛이 역력하다. 황구를 찾아오라고 해도 차밑에 들어가 처량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이럴 땐 백구하고 속시원히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김민수

다음날 저녁까지 소식이 없었다. 텅 빈 개집을 볼 때마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안 좋았다. '그래도 세 놈인데 잡혀 갔어도 전부 잡혀가지는 않았을 텐데…'

나중에 마음이 급해져서 차를 타고 동네를 골목 골목 누벼보기도 했지만 개들은 보이질 않았다. 막내도 개들이 걱정되는지 "아빠, 우리 백구하고 백팔이하고 황구하고 이젠 안 들어와?"했다.

사흘째 되는 날 새벽, 백구와 백팔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반가운 마음과 그동안 속상했던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야, 황구는 어디 갔니?"

화가 난 것을 눈치챈 놈들이 꼬리를 팍 내리고는 묵묵부답이다.

"야, 백구 너 빨리 가서 황구 찾아와. 너 찾아올 때까지 밥 안 준다."

역시 묵묵부답.

아내는 돌아와 준 개들이 고맙다며 얼른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가져왔고, 놈들은 허겁지겁 밥을 먹고는 뭔 짓을 했는지 집에 들어가 늘어지게 종일 잠만 잤다.

그런데 황구는 그 날도 소식이 없었고, 간밤에 태풍을 동반한 비가 억수같이 내렸는데, 오늘도 소식이 없다. 개가 낑낑거리는 소리만 나면 바깥으로 눈이 간다. 혹시 황구가 아닐까 해서…. 막내도 황구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 걱정이 되는가 보다.

"아빠, 황구는 아직 안 왔어? 안 오는 거야?"
"잡혀가지 않았으면 올 거야. 걱정하지마."

백팔이는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지금, 제 집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고, 백구는 황구 찾아오라고 풀어놓았더니 비만 흠뻑 맞고 오는 바람에 목욕시켜 광에 넣어두었다.

비록 말 못하는 개들이지만, 그래도 이 놈들은 황구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텐데... 황구를 기다리는 우리 집 식구들은 '견공가출사건' 이후 우울하기만 하다. 주인을 잃어버린 황구의 집도 쓸쓸하기만 하고...

"황구야, 어디 있니? 모든 걸 용서해줄 테니 이제 그만 돌아만 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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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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