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리필 좀 해주세요!"

책 속의 노년(57) : 〈내 영혼의 리필〉

등록 2003.05.31 12:21수정 2003.05.3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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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를 다시 만난 것은 한 5년 전이었을 것이다. 커다란 체구에 꾸미지 않은 얼굴,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조끼와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무뚝뚝한 말씨는 변함이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얼핏 보면 남자같기도 했지만, 일터에서 막 달려온 모습에서는 땀흘려 일하는 건강함이 느껴졌다.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는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큰오빠가 하는 야채 도매상 일을 돕기 시작했고, 어느덧 그 일이 벌써 25년을 바라보고 있다. 학교 다닐 때도 그리 살갑게 지내온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들어 다시 만난 인연으로 요즘은 1년에 서너 차례 만나 안부를 묻고 맛있는 것을 먹곤 한다. 마주 앉으면 걸어가고 있는 길이 전혀 달라 좀 낯선 면도 있지만, 조금씩 더 깊이 알아가며 서로 소중히 여기고 있다.


며칠 전, 친구와 만나 점심을 먹고 요즘 거리에서 한 집 건너 만나게 되는 커피 전문점으로 갔다. 의자에 털썩 앉으며 친구가 하는 말.

"나 이런 데 오늘 처음 들어와 본다." 시원한 것을 한 잔씩 가져다 마시는데, 다시 하는 말. "사람들이 손에 빨대 꽂힌 컵을 하나씩 들고 다녀서, 저런 건 어디서 사먹는 걸까?" 한 적이 있단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앞으로 이런 데서 사먹으면 되겠구나…' 하고 덧붙인다.

밤 10시에 일어나 한밤 중 내내 경매와 도매 일을 하고 새벽장이 파하면 그 때 일이 끝나는 친구의 일과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누구를 만나려 해도 점심 때 만나고 일찍 돌아가 잠자리에 들어야 다시 밤에 일어날 수 있다는 친구.

그래서 전화 통화는 오전이나 오후 이른 시간에만 가능한 친구. 거친 장터에서 강한 의지와 망설임없는 판단력으로 자신의 자리를 확실히 차지한 씩씩한 친구. 꾸밈없이 솔직담백하게 다가와 문득 마음을 툭 건드리고 가는 친구….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고 접하는 것이, 낮과 밤을 바꿔 생활하는 친구에게는 그토록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요즘은 차를 마시고 그것이 부족하면 더 채워주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며, 어디 가서 차 마실 때 더 먹고 싶으면 "여기 리필 좀 해주세요"하면 된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그런데 빈 찻잔에 커피를 다시 채우듯이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가슴도 다시 채울 수 있을까? 〈내 영혼의 리필〉의 저자 리처드 P. 존슨은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이야기를 꺼낸다. 단, 거기에는 실천해야 하는 몇 가지 원칙과 방법이 있다는 것을 덧붙이고 있다.

'젊음'은 '늙지 않음'의 다른 표현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늙어 가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두려워하고 있는 우리들의 태도를 지적하며,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지, 젊음과 영적 활력을 유지하게 해주는 비결은 없는지를 고민한다. 그러면서 나이듦이 주는 장점과 선물을 받아들일 것을 권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의 '성숙'이 '노화'라는 부정적인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숙해져야 하며 이것은 결국 태도의 문제라고 결론 내린다. '노년기의 상실을 성장의 기회로 보는 것, 노년에 대한 두려움이 노화를 부추긴다는 사실, 자기 몰두에 대한 경계,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시간인 바로 지금에 집중하기'는 모두 우리들의 태도, 즉 마음의 상태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가장 중요한 자기 보호 수단인 용서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분노와 마음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도 살펴보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세상을 보는 눈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 것과 신앙 그리고 삶의 깊은 의미를 찾아 내면으로 들어가라고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는 감정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의 느낌에 이름을 붙이고, 그 느낌을 인정하며 길들이고 표현 방식을 택해 겉으로 표현할 것을 친절하게 안내하며, 아울러 우리의 삶의 에너지를 100%로 놓고 그것을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있게 배분할 것을 당부한다.

사실 일상에 치이고 분주함에 휩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 안의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낸 채 맥 놓고 누어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의 영혼을 새로운 활력으로 다시 채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재충전, 다시 채우기가 이루어진다면 일상을 넘어 나이듦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충만하고 넉넉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숙한 삶이 아니겠는가.

여기까지 오는 길이 달랐고, 앞으로 살아가는 길 또한 다를 것이 분명한 그 친구와 나, 그 다름 가운데서 똑같은 것 한 가지는 바로 나이 들어감이다. 커피만 리필해서 마실 것이 아니라 우리들 영혼도 다시 채울 수 있도록 서로 돕는다면 참 좋겠다. 우리 둘은 서로 다르기에 서로를 새롭게 채울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영혼에 활력을 주는 12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1. 나이듦에 대한 시각을 바꿔라.
2. 어디에서나 사랑을 찾아라.
3. 함께함을 기뻐하라.
4. 현재에 살아라.
5. 진정한 자아를 찾아라.
6. 용서하라.
7. 분노와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워라.
8. 아낌없이 베풀어라.
9. 신앙에 기뻐하라.
10. 삶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라.
11. 감정의 포로가 되지 말라.
12. 삶의 균형을 유지하라

(내 영혼의 리필 The 12Keys to Spiritual Vitality - Powerful Lessons on Living Agelessly / 리처드 P. 존슨 지음, 한정아 옮김 / 열린,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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