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고난에도 다시 일어서는 꽃들

등록 2003.06.03 19:07수정 2003.06.03 20:0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태풍이 지나간 자리의 풍경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 김민수

며칠 전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밤새도록 몰아쳐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비와 바람이 그친 뒤 텃밭에 나가 부러지고 넘어진 채소들을 보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의 정성이 물거품이 되는 듯한 마음에 비온 뒤 맑게 개인 하늘이 얼마나 얄밉던지요.

a

다알리아 ⓒ 김민수

텃밭에 심긴 채소들만 수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화단에 심겨져있던 다알리아도 지난 밤 태풍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다쳤습니다.

갈갈이 찢긴 꽃잎은 너무도 아플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연약한 꽃대가 부러지지 않고 밤새 온 몸으로 바람과 맞서 싸웠다고 생각하니 숙연해 집니다.

삶이라는 여정에도 이런 태풍이 올 것이고, 때로는 본 모습을 상실할 만큼의 상처도 주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태풍에 굴복하는 순간 절망이라는 것이 나의 삶을 잠식해 들어갈 것이니 어떤 태풍이라도 반드시 이겨내야 하겠죠.

a

ⓒ 김민수

그렇게 태풍이 지나고 이틀이 지났습니다. 미처 피지 못했던 꽃몽우리들이 태풍이 지난 후 앞을 다투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세상을 바라보기 전에 그렇게 심한 태풍이 있었는지 알기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태풍에 온 몸에 상처를 입은 꽃을 보면서 저 꽃은 모양새가 왜 저렇게 누추하냐고 하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태풍에 짓물렀던 꽃잎을 털어 내고 다시 일어선 꽃을 보니 모양새는 비록 그전보다 아름답지 않지만 그 속내에 들어있는 아름다움은 더욱더 진하게 다가옵니다.

삶의 여행길이 늘 순탄하다면 연단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고난이 찾아 올 때 우리는 겸손해 집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a

박새 ⓒ 김민수

한달 전에 막 피어나던 박새는 연하고 부드러운 꽃을 피었습니다. 봄날에서 여름으로 향해가고 있는 평온한 날씨들 속에서 그들은 앞을 다투어 피어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앞을 다투어 피고 지던 어느 날 그들에게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모진 바람과 뿌리째 쓸려 내려갈 정도의 폭우가 갑자기 들이닥쳤습니다.

태풍과 폭우가 지나간 박새의 군락을 다시 찾았을 때에는 풀들도 누워있었고, 물의 흐른 자리를 따라 박새들이 여기저기 뽑혀 누워있었습니다. 뿌리를 뽑힌 것들은 누런 빛으로말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꿋꿋하게 일어선 박새들의 꽃잎은 그 전의 연하던 꽃잎이 아니라 더욱 강인한 느낌을 주는 꽃으로 당당하게 서있었습니다.
겉으로 보는 아름다움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아름다움까지 볼 수 있을 때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a

ⓒ 김민수

오늘 소개해 드린 꽃들은 그리 예쁘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꽃 여행을 함께 떠난 여러분들의 심미안을 믿고 있습니다.

비록 꽃잎은 헤어지고, 보듬어주고 싶을 정도의 연약한 꽃잎은 어디로인가 가고 강인한 느낌을 주는 투박함만 남았지만 그 꽃도 역시 아름답게 보아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연을 보면서 어떤 소리를 들어야 할까요? 자연은 우리들에게 수많은 소리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면 우리는 귀머거리가 되어 자연이 주는 섬세한 소리들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자연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한 번 열고 그들이 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시간들을 갖는 훈련을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어느 새 자연을 닮아갈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자식 '신불자' 만드는 부모들... "집 나올 때 인감과 통장 챙겼다"
  2. 2 10년 만에 8개 발전소... 1115명이 돈도 안 받고 만든 기적
  3. 3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4. 4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5. 5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