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71

용봉향로(龍鳳香爐) (6)

등록 2003.06.28 13:54수정 2003.06.2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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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쭈? 이잇! 야아압! 어어어어…?"
콰아아앙―!
"아앗!"


석탁을 눌러 상판이 바닥에 닿게 하는 것이 이곳 다물 연공관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 하였다.

그런데 연공관 안에는 여러 종류의 병장기들과 수많은 서책들이 꽂혀있는 서가가 전부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보아하니 이 연공관은 제세활빈단의 단원이 되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곳이다. 따라서 육중한 병장기로 석탁을 부수는 방법은 아닐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사람이 사용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막강한 내공이나 근력으로 석탁을 내리눌러 상판이 바닥에 닿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를 반증하듯 석탁의 기둥과 바닥 사이에는 가느다란 틈이 있었다.


청룡갑을 걸친 덕에 근력이라면 남부럽지 않던 이회옥이었지만 석탁은 아무리 눌러도 요지부동이었다.

근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한 이회옥은 서가에 꽂혀 있는 수많은 서책 가운데 무공과 관련되었거나 기관토목술에 관련된 것들에서 방법을 찾아보려 하였다.


그러나 서가(書架)에서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단 한 권도 내공심법이나 기관토목술에 연관된 서책은 없었던 것이다.

수확이 있다면 수많은 서책을 읽느라 절로 높아진 지식과 서경덕이라는 사람이 지은 태허설을 보고 나름대로 창안하여 태극일기공(太極一氣功)이라 이름 붙인 일종의 내공심법이 전부이다.

태극은 태어나서 자란 태극목장에서 따온 명칭이고, 일기공은 무림제일 기공이라는 다소 자만스런 명칭이다.

이것은 세상 어느 곳에나 충만해있다는 기(氣)를 체내로 끌어당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다른 심법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내가기공은 기를 체내에 갈무리 하지만 이것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기공을 익히면 하단전이 불룩 솟게 되는데 이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쨌거나 죽을 때까지 이곳 연공관에 머물 수 없다 생각한 이회옥은 며칠 전부터 혼신의 기력을 다하여 석탁을 내리눌렀다.

일단 이 지긋지긋한 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몇 달 동안이나 혼자 지내다보니 사람 냄새가 그리웠던 것이다.

물론 모든 공간에 존재한다는 기를 빨아들인 상태에서 눌렀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석탁은 미동(微動)도 않았다.

무거운 것들을 올려놓으면 될까 싶어 병장기란 병장기는 몽땅 올려놓기도 하였고, 산더미처럼 서책을 쌓아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방법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사실 석탁은 한 눈에 보기에도 육중한 데다 무척이나 튼튼해 보이는 것이기에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여 하루종일 석탁과 씨름하다 지쳐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다시 용을 쓰기를 거듭하였다. 그런데 그토록 요지부동이던 석탁이 갑작스럽게 회전하는가 싶더니 너무도 쉽게 바닥으로 꺼졌다.

그리고는 별 힘도 가하지 않았건만 산산이 부서진 상판을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결과가 빚어지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회옥 본인은 전혀 짐작치 못하고 있으나 그가 현재 가용(可用)한 내공은 얼추 반 갑자를 넘어서고 있었다.

운기조식한 시간으로 따지만 그의 내공은 일 년도 채 못되어야 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십 년이 넘는 공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태극일기공 때문이다.

나한기공주해에서 심득(心得)한 무리(武理)와 태허설에서 착안한 것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극상승무공을 창안해낸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은 이회옥이 용을 쓰던 중 순간적으로 무게 중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때 넘어지지 않기 위하여 석탁을 잡아당겼는데 이것이 작용하여 회전하게 된 것이다.

사실 석탁의 상판은 반 갑자 이상의 공력으로 잡아 돌리면 회전하면서 자동적으로 밑으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이런 것을 모르고 전력을 다하여 짓눌렀으니 산산이 깨어져 버린 것이다.

"쩝! 한 마디 듣겠군."

이회옥은 깨진 돌 조각들을 보며 일타홍의 투덜거리는 영상을 떠올렸다. 기껏 무공을 익히라고 들여보냈더니 기관이나 망가트렸다고 한 소리 할 것이 뻔할 것이다.

그러던 중 그의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졌다.

"어라? 저건 뭐지?"

상판이 부서져 나간 뒤 바닥에 남아 있던 것은 기둥이 들어간 흔적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기둥이 안으로 쑥 밀려드는가 싶더니 그곳에서 작은 기둥 하나가 솟고 있었다.

그런데 그 위에는 황금 빛 찬란한 물체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한눈에 봐서는 무슨 용도로 쓰이는 물건인지는 알 수 없는 그것은 어찌 보면 화려하게 장식된 술잔과 그것을 덮는 뚜껑 같아 보이기도 하였고, 어찌 보면 귀중한 물건을 담는 함(函)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우와! 되게 멋있다. 헌데, 이게 뭘까?"

이회옥은 생전 처음 보는 너무도 휘황찬란한 물건에 금방 매료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괴물체의 형상 때문이었다.

높이가 두 자 가량 되는 그것은 도저히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기가 막힌 솜씨로 만들어진 그야말로 천품(天稟)이었다. 너무도 정교하였기 때문이다.

"혹시…, 이게 박산향로(博山香爐)라는 것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이회옥의 뇌리는 언젠가 스쳐가듯 읽었던 서책의 내용을 섬전처럼 훑고 있었다.


향로(香爐)는 천축(天竺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냄새의 제거, 종교의식, 그리고 구도자(求道者)의 수양정진을 위하여 향을 피웠던 도구로 훈로(熏爐)라고도 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서 한(漢)나라에 이르는 시기에는 바다를 상징하는 승반(承盤)위에 한 개의 다리와 중첩된 산봉우리형의 몸체를 갖춘 향로가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박산향로의 시원(始原)이다.

박산향로는 당시의 산악숭배, 무속,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방생술(放生術)과 양생술(養生術), 무위(武威)사상, 음양(陰陽)사상 등을 쫓는 신선사상(神仙思想)이 조형적 배경이 되었으며, 신선사상이 가장 유행했던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는 것이다.


이회옥은 눈앞의 물건과 박산향로에 대한 묘사가 비슷하자 향로가 아닌가 짐작하고 있었다.

향로인 듯한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주제는 박산향로에서 볼 수 있던 봉래산을 중심으로 한 신선의 세계였다.

향로의 꼭대기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서 있는 봉황은 신선들의 땅인 해동 봉래산(蓬萊山)에 살고 있는 상서로운 전설의 새이며, 천하가 태평할 때만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영물(靈物)이다.

이 봉황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절로 노래하고, 절로 춤을 춘다고 하여 예로부터 춤과 음악에 흔히 동반되는 것이다.

이러한 봉황의 묘음(妙音)에 귀 기울인 듯 다섯 마리의 기러기로 보이는 원앙(鴛鴦 :옛 기록을 보면 봉래산의 원앙은 기러기를 닮았다고 한다.)의 시선과 동작이 봉황을 향하고 있었다.

선계(仙界)의 악사(樂士)들도 봉황을 맞아들이기라도 하듯 각기 금(琴), 소(簫), 완함(阮咸 : 현악기로 악기의 공명통이 달처럼 둥글기 때문에 월금(月琴)이라고도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진비파, 진한자라고 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이 악기가 보이며, '악학궤범'에는 향악에만 쓰이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 삼실총의 벽화와 악학궤범에 보이는 월금은 모두 사 현이고 무용총의 것은 오 현이다. 중국에서는 목이 짧은 것을 월금, 목이 긴 것을 완함이라 하였다. 원래는 당악기였으나 악학궤범이 이르러 향악에만 사용되었으며, 연주 방법과 제작법은 당비파와 같다고 한다.), 적(笛), 동고(銅鼓)를 두드리고 켜는데 표정이 다 다르고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도 사실적이었다. 크기가 작지 않다면 살아있는 사람이 실제로 연주하는 모습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산중의 신선들은 명상(冥想)에 잠기기도하고, 낚시도 하며, 머리도 감고, 말을 타고 달리거나, 수렵을 즐기기도 한다.

향로로 생각되는 물건의 뚜껑에는 일흔네 곳(마흔한 곳의 능선을 가진 산과 화생중인 서른세 곳의 산)의 봉우리가 있었다.

또한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과 길짐승, 현실세계에 실재하는 호랑이, 사슴, 코끼리, 원숭이, 멧돼지 등 서른아홉 마리의 동물과 다섯 사람의 악사, 산중의 신선 등 십육 인의 인물상이 표현되어 있었다.

이밖에도 여섯 군데의 나무와 열두 군데의 바위, 산중턱을 가르며 난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낚시터가 된 잔잔한 물결까지 나타낸 호수가 있었다.

향로의 노신(爐身)을 싸고 있는 연꽃잎들에는 두 신선과 날개 달린 물고기를 비롯한 수중생물, 물가의 생활과 밀접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슴과 학 등 스물여섯 마리의 동물이 보여 결국 이 향로 전체에는 신선으로 보이는 인물 십팔 인, 동물 예순다섯 마리가 표현되고 있는 셈이었다.

불과 두 자 가량 되는 물건에 새겨지기엔 너무도 많은 종류와 수효였지만 어느 것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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