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문을 여니 태고의 신비가

섬세하게 다듬어진 '제주 용머리 해안'

등록 2003.06.30 17:16수정 2003.06.3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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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이 바다인 제주는 그 해안절경 또한 뛰어나다. 처음 내가 이곳에 왔을 때, 바라볼 수 있는 바다는 기껏해야 여름에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해수욕장 뿐이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겨울바다 환상에 푹 빠졌다. 여름바다가 낭만이라면 겨울바다는 꿈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바다는 기억 속의 추억을 쫓을 수 있어 좋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줍잖게 가끔 제주바다의 전부를 다 본 것처럼 말하곤 했다. 그것은 어쩌면 뭍에서만 살았던 사람들이 바다를 그리워하고 느끼는 목마름과 환상 때문일것이다.

용머리 해안 입구
용머리 해안 입구
따라서 어느 곳에서나 바다를 볼 수 있는 나는 제주에서 살고 있음이 무슨 특혜를 받은 사람처럼 우월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그동안 미처 내가 보지 못했던 또 하나의 신비스런 바다 즉 해안절경에 푹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안절경은 보는 지역과 위치, 기분, 계절에 따라 요술쟁이로 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마 중 가장 큰 선물은 한줄기 햇빛이다. 오랜만에 에어컨을 끄고 자동차 창문을 활짝 열었다. 운전석으로 파고드는 여름 햇빛에 팔이 시커멓게 타도 좋다. 햇빛을 자동차에 묶어 놓고 달려간 곳은 해안절벽이 아름다운 '용머리 해안'. 바위언덕이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용머리 해안'.

공항에서 30분 정도 달렸을까? 시원스레 뚫린 서부산업도로는 최고 속력을 낼 수 있어서 좋다. 뚫린 길 위에 갑자기 나타난 산방산의 풍경에 환호성을 질렀다. 꼬리를 문 차량행렬을 따라 산방산 입구에 이르렀다. 항상 보는 바다지만 이곳에서 보는 바다는 검푸르게 보였다. 멀리 태평양에 온 기분이랄까? 바다 풍경에 마치 외국에 온 기분처럼 들떠 있었다.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간다 하여 '용머리'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간다 하여 '용머리'
20년을 넘게 이곳에서 살았는데도, 관광지에 오면 항상 수학여행을 온 학생처럼 마음이 설렌다. 바다, 돌, 나무, 하늘 어느 것 하나 신비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대형버스에서 내리는 40여 관광객들 뒤를 따라 바다 쪽으로 내려갔다. 마치 천국의 문을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천국의 문을 여니 바위와 절벽 그리고 바다와 조화를 이룬 태고의 신비가 있었다. 비경이라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천국의 계단은 올라가야 할텐데 어찌 이 계단은 내려가는 것일까?


영겁의 세월동안 굳어진 절경
영겁의 세월동안 굳어진 절경
한 발짝 한 발짝 돌계단을 타고 내려가는데,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행여 발을 헛디디면 금방이라도 바다 속으로 풍덩 빠져 버릴 것 같은 전율을 느끼면서도 눈은 해안절경의 풍경에 빠져 들어갔다. 급경사를 내려가니 사암이 굳어 수 천 만년 동안 쌓이고 쌓여 층층으로 이루어진 해안절벽을 보니 인간의 능력이 무심해졌다.

마치 해골같기도 하고…자그마한 동굴과 구멍이 뚤린 돌들의 형상은 도저히 사암이 굳어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층층이 쌓인 주름을 보니 얼마 전에 돌아가신 100살을 넘긴 외할머니의 주름살을 연상케 했다.


마치 해골 같기도 하고...
마치 해골 같기도 하고...
관광객들은 오묘한 절경에 빠져 계속 셔터를 눌러 대기에 바빴다. 파도가 그 절벽의 안쪽까지 타고 들어왔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리도 바다는 파란 것일까? 그 바다 끝에는 방금 전 지나쳤던 해변마을의 풍경이 다른 세상처럼 둥둥 떠 있다. 마치 처음 보는 바다 끝 마을처럼 신비스럽게만 느껴진다. 그 바다 끝에는 또 다른 전설이 있을 것만 같다.

멀리 보이는 해변 마을이 전설처럼 느껴지는데
멀리 보이는 해변 마을이 전설처럼 느껴지는데
잠시 절벽의 끝자락에 서서 심호흡을 해본다. 태평양의 시점이라서 이렇게 검푸른 바다인가? 바람이 불어서인지 파도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돌아온 절벽을 뒤돌아본다. 태고의 신비처럼 느껴진다. 햇빛은 이곳까지 따라와서 머물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용머리가 왕이 나타날 훌륭한 형세임을 알아차린 진시황이 호종단을 보내어 용의 꼬리와 등을 칼로 끊어버렸는데 이때 피가 흐르고 산방산의 괴로운 울음소리가 여러 날 이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정말이지 산방산 앞에서 보는 '용머리 해안'은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 바다는 화가 나 있었다.
그 바다는 화가 나 있었다.
층층이 주름진 해안절경에 잠시 앉아본다. 그 깊은 바다에서 해녀들이 갓 잡아 올린 소라며 전복 해삼을 파는 아줌마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도 층층이 쌓인 주름진 절벽만큼이나 지나 온 세월을 파도와 싸웠을 생각을 하니 해녀들의 모습이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바다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환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용머리 해안에서 보는 산방산은 그 기세가 너무 당당해 보였다. 어느 조각가가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답게 바위를 깍아 세울 수 있을까? 아니 누가 이렇게 정성스레 바위를 겹겹이 올려놓을 수 있을까? 어느 예술가가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남길 수 있을까?

누가 저렇게 신비스럽게 깎아 세웠을까?
누가 저렇게 신비스럽게 깎아 세웠을까?
"바람이 너무 불어 안전상 용머리 해안을 한바퀴 돌지 못한다"는 안내요원의 말에 불만이 생기긴 했지만 신비스런 '용머리 해안'은 분명 자연의 조화가 가져다 준 극치였다.

'용머리해안'은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에 있으며 주변 관광지로는 산방산과 차귀도, 수월봉, 제주조각공원, 화순 해수욕장 등이 있다. 찾아가는 길은 제주공항- 서부산업도로- 동광- 대정- 산방산- 용머리 해안으로 이어지며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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