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푸름이는 정말 못말려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92>임파선

등록 2003.07.07 17:17수정 2003.07.0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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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인터넷에 '펜픽'을 연재하는 큰딸 푸름이

인터넷에 '펜픽'을 연재하는 큰딸 푸름이 ⓒ 이종찬

"아빠! 그저께 나 목이 아파 병원에 갔었는데 임파선이 부었대. 그리고 5일 정도 입원을 해야 된대."
"뭐어? 임파선이 어쨌다고?"
"그 땜에 왼쪽 볼이 약간 부은 거래."


임파선? 큰딸 푸름이의 전화를 받은 나는 즉시 검색에서 임파선이란 단어를 쳤다. 국어사전에는 "☞림프샘"이라고 나와 있었다. 림프샘? 나는 다시 림프샘에 마우스를 갖다댔다. 그러자 이내 손가락이 표시되었다.

"림프샘 [명사] 림프관의 군데군데에 분포하는, 매듭 모양의 작은 조직. 2,3mm의 크기로 둥글거나 콩 모양이며, 림프 속의 세균을 거르는 구실을 함. 림프선. 림프절. 임파선."

근데 림프관은 또 뭐란 말인가. 나는 다시 검색에서 림프란 단어를 쳤다.

"림프(lymph)[명사] 척추동물의 체액의 한 가지. 보통 림프관 안에 있는 액체를 이름. [피와 마찬가지로 몸 안을 돌면서 영양소와 면역 항체를 운반함.] 림프액. 임파(淋巴). "

그랬다. 임파선은 피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 안을 돌면서 각종 영양소와 면역 항체를 운반하는 그런 체액이었다. 그동안 편식이 심했던 큰딸 푸름이는 그 체액을 운반하는 관이 약간 부었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것 때문에 큰딸 푸름이가 편도선이 걸린 게 아니었는데도 자꾸만 목이 아프다고 했단 말인가.

"아빠! 뭐 해?"
"방금 샤워하고 나왔어."
"빨리 와."
"친구랑 같이 있다며?"
"조금 전에 갔어."

지난 토요일, 큰딸 푸름이는 담임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집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마치 상이라도 탄 것처럼 수시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것도 수신자 부담으로. 기가 막혔다. 내가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거는 것은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푸름이는 "그게 내 특기"라고 했다.


그래. 그 때문에 푸름이가 며칠째 병원을 다니며 링거를 맞았단 말인가. 근데 그것도 모자라 입원까지 하다니. 내 어릴 적 같았으면 그 정도의 병은 할머니 손은 약손이라며 아픈 부위를 한번쯤 쓰다듬어 주면 그만이었을 것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 병은 깊어지기 전에 아예 뿌리를 뽑는 것이 좋은 게 아니겠는가.

"아빠! 근데 저녁은 어떡해?"
"병원 근처에서 사 먹지 뭐."
"그럼 푸름이 언니는?"
"언니는 입원했으니까 우리끼리 가야지."
"아싸!"


그랬다. 둘째딸 빛나는 아빠랑 단 둘이 외식을 하는 게 몹시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병원에 가면 언니를 슬쩍 꼬집어 줄 거라고 말했다. 왜? 하고 내가 묻자 이제는 언니를 꼬집어도 언니가 링거를 꽂고 있기 때문에 자기를 어쩌지 못할 거란다. 그동안 언니에게 대들다가 당한 수모를 이번에 톡톡히 갚겠다는 것이었다.

"근데 엄마는?"
"엄마는 아마 백화점에서 저녁을 먹고 9시쯤에나 올 걸."
"언니 빼고 우리끼리 저녁 먹으면 좋은데."
"왜?"
"그냥."

그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내가 빛나를 데리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큰딸 푸름이는 병원 로비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링거를 꽂고 병원 로비에 오두마니 앉아 TV를 바라보며 깔깔거리고 있는 푸름이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환자복을 입고 있어도 이상하게 환자 같다는 그런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어때?"
"심심해."
"그래. 입원을 하니까 좋아?"
"아니. 근데 아빠! 내 삼겹살은 어떻게 됐어? 혹시 아빠가 빛나 쟤한테 다 구워준 건 아니겠지?"
"어휴! 그 녀석도 참! 입원하고 있으면서도 삼겹살이 생각 나."
"응."

하여간 우리 푸름이도 정말 못 말릴 노릇이다. 링거를 꽂고 입원해 있으면서도 삼겹살 먹을 생각을 하고 있다니. 하긴 그도 그럴 것이다. 내가 주말에 집에 가면 일요일 저녁은 반드시 두 딸들에게 삼겹살을 구워주었으니까. 또 두 딸들은 일요일 저녁은 아예 삼겹살을 구워 먹는 날로 알고 있으니까.

"아빠! 근데 백일장 심사기준이 대체 뭐야?"
"왜 그래. 또 백일장에 나갔다가 가작을 한 모양이구나."
"그날 글을 잘 썼다 싶으면 가작을 받고, 글을 대충대충 쓴 날은 틀림없이 장원 아니면 차상을 받거든."
"너가 글을 너무 잘 쓰니까 그렇지. 누가 도와준 줄로 알고."
"그러니까 더욱 신경질이 난다는 거야."

큰딸 푸름이는 글을 참 잘 썼다. 시와 소설, 동화 등 가리지 않고 척척 써냈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팬픽'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연재까지 한다고 했다. 팬픽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팬을 주인공으로 해서 쓰는 소설이란다. 또한 그 소설이 일주일 만에 조회 횟수가 5천명을 넘었다고 했다.

그때 나는 푸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백일장 같은 형식적인 글쓰기에 매달리지 말고, 쓰고 싶은 내용을 네 마음껏 글로 쓰라고. 그리고 그렇게 쓴 글들을 차근차근 모아 두었다가 잡지사나 출판사에서 신인상 모집을 할 때 다시 한번 탈고를 한 뒤에 응모하라고.

"푸름아! 잠깐만 기다려. 빛나랑 저녁 좀 먹고 올게."
"으응? 어쩌면‥ 어쩌면 그럴 수가?"
"아싸!"
"그럼 굶을까. 푸름이가 아프다고."
"그건 아니지만‥."
"그래. 언니는 링거나 맞고 있어. 나랑 아빠랑 맛있는 거 사 먹고 올 테니까."

빨랑 다녀와, 하는 푸름이의 말투에는 아빠에게 몹시 서운하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또한 자기는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어떻게 빛나랑 외식을 즐길 수 있느냐는 듯한 그런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도 외식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아빠가 자기만 쏘옥 빼고 말이다.

그렇찮아도 푸름이는 지난 주에 네게 이런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아빠! 아빠는 딸이 아프다는 데도 아무렇지도 않아? 그때 내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푸름이는 어디가 어떻게 아프며, 오늘 병원에 가서 무슨 주사를 맞았고, 의사 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시더냐, 라는 그런 말들을 상세하게 물어보지 않았다는 거였다.

"뭐? 아빠랑 밖에서 국수를 사먹었다고?"
"응. 정말 맛 있었어."
"그기가 어딘데?"
"병원 근처 **상가야."
"근데 빛나만 사주고 나는 안 사 줄 거야."

그 순간, 또 한번 푸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이내 깊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왜 자기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 때 이 난리를 피우냐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국수를 가지고 말이다.

"푸름아! 엄마가 배가 몹시 고프거든. 아빠따라 금방 다녀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
"올 때 국수 한 그릇 포장해 올게."
"아니. 먹고 싶지 않아. 엄마나 가서 많이 먹고 와."
"너 국수 좋아하잖아?"
"아니 먹고 싶지 않아."
"사 올 게."

나는 아내와 빛나를 데리고 서둘러 그 국수집으로 갔다. 시계는 이미 9시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다행히 9시까지 영업을 한다는 그 촌국수집은 그때까지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나는 국수 한 그릇과 막걸리 반 되를 시켰다. 아내는 5분도 안 되어 국수 한그릇을 후딱 먹어 치웠다. 그리고 국수 한 그릇을 포장해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푸름이는 끝내 그 국수를 먹지 않았다. 아까 내가 빛나를 데리고 간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기만 혼자 달랑 남겨놓고 온 가족이 국수를 먹으러 간 데 대한 일종의 시위라도 하는 듯이 보였다. 결국 그 국수는 병원에서 개봉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 국수를 장모님께 드리기로 했다.

"푸름아! 너 언제 퇴원하지?"
"......"
"아빠가 묻잖아?"
"다음주 금요일이야."
"그럼 그때 우리 가족 모두 국수 먹으러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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