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81

일지매 (4)

등록 2003.07.10 13:48수정 2003.07.1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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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는 해동인(海東人)으로 전설처럼 전해지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하나인 황제(黃帝)와 십 년에 걸쳐 무려 일흔 세 차례나 자웅(雌雄)을 겨뤄 연전 연승을 거뒀던 전쟁의 신이다.

그는 탁록대평원에서 황제인 공손헌원(公孫軒轅)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부지기수의 병장기들을 개발해냈다.


날로서 상대를 상케 하는 병장기로는 도(刀), 검(劍), 두추대검(頭椎大劍)이 있고, 찔러서 상케 하는 병장기로는 극(戟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창), 모(矛 :자루가 긴 창), 옹호지극(雍狐之戟)과 과(戈 :창), 수극(手戟)이 있다.

상대를 치는 병장기로는 거부(巨斧)와 오구장(五丘杖)이 있으며, 쏘는 병장기는 궁(弓), 노(弩), 이외에도 대궁(大弓), 대노(大弩), 태노(太弩)가 있고, 돌을 날려 상대를 무력케 하거나 성(城)을 부수는데 사용하는 비석박격지기(飛石迫擊之機)가 있다.

갑옷으로는 동두철액(銅頭鐵額 :투구의 일종), 개(鎧 :갑옷의 일종) 이외에도 예(芮)와 피갑(皮甲 :가죽 갑옷), 개갑두무(鎧甲兜 ) 등이 있다.

파천부는 이때 발명된 거부(巨斧) 가운데 하나인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과두문은 파천부를 운용하는 방법을 기록한 것이었다. 이것을 익힌 왕구명은 여옥혜를 만나자마자 청룡검을 건네주었다. 몸에 맞는 병장기가 생겼기에 아낌없이 건넨 것이다.


그동안 청룡검법이라는 상승 검법이 있으면서도 청룡무관이 유명해지지 않은 것은 몸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왕구명도 그렇지만 그의 선조들은 모두 칠 척이 넘는 거구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겨우 석 자 남짓한 검을 휘두르는 것은 마치 어른이 부지깽이를 휘두르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파천부를 애병으로 삼은 왕구명에게 붙여진 역발산이라는 외호는 그야말로 적절하다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도끼질 한번에 아름드리 거목도 두 쪽으로 갈라질 정도로 가공할 위력을 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솜씨를 본 탑탁호골 좌비직을 비롯한 각 당의 당주들은 두말 않고 그를 총관으로 인정하였다.

근력(筋力)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왕구명에게는 한 수 접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세상은 넓고 기인은 많다면서 자신들은 정저지와(井底之蛙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하였다고 탄식하였다.

어쨌거나 협도당은 여옥혜가 창건한 정의문의 정식 명칭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칭하는 문파명인 셈이다.

문주인 여옥혜는 추수옥녀라는 외호를 버리고 스스로 일지매(一枝梅)라는 외호를 지었다. 그래서 협도당이 다녀간 곳에는 한 줄기에 오직 한 송이 매화만 그려진 그림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녀가 정의문의 상징으로 매화를 선택한 것은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꽃을 피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줌으로서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신의 표상이기 때문이었다.

본시 매화는 한 가지에도 여러 송이 꽃을 피우지만 한 송이만 그리는 것은 무림지옥갱에 하옥된 채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부친을 구해내겠다는 일념을 상징한 것이다.

그녀는 약령시에 내다 팔기 위하여 대흥안령산맥을 넘던 조선 상인들로부터 지니고 있던 모든 홍삼을 사들였다.

그리고는 산적들에게 강탈당했다는 소문을 낸 것이다.

병법 삼십육계 중 제 십오계인 조호이산지계를 펼친 것이다.

예측대로 혈면귀수는 노발대발하며 정의수호대원들로 하여금 즉각 산적 토벌에 나서도록 하였다.

하여 그들이 광활한 대흥안령산맥 속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을 때 정의문 소속 제자 대부분은 산해관에 포진해 있었다.

본거지라 할 수 있는 대흥안령산맥에는 극히 일부만 남아 치고 빠지는 작전으로 정의수호대원들의 얼을 빼고 있었다.

하지만 여우같이 약아빠진 혈면귀수는 끝끝내 무천장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 그의 곁에는 그의 안위를 책임진 정의수호대원들이 있었기에 무작정 담을 넘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적지 않은 희생을 각오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보타신니의 검법과 청룡검법을 익힌 여옥혜와 파천부법을 익힌 왕구명이야 어떻게 대적한다지만 탑탁호골 좌비직을 비롯한 다른 당주들과 휘하 제자들은 아직 정의수호대원들을 감당해낼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자중한 것이다.

애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던 여옥혜는 제자들로 하여금 기원과 전장을 급습토록 하였다. 이번엔 격장지계를 펼친 것이다.

물론 무천장과 극히 밀착된 곳만 고른 것이다. 이렇게 하면 혈면귀수가 나타날까 싶었지만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흥안령산맥으로 나갔던 정의수호대원들이 돌아왔기에 할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 비하면 아직 오합지졸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물러선 것이다.

정면 대결에서는 승산이 채 일 푼도 되지 않기에 정의문은 경계가 느슨한 틈을 타 기원이나 전장, 도박장 등을 털었다.

그리고는 그렇게 얻은 은자를 빈촌에 뿌렸다.

이렇게 하면 은자에 환장한 혈면귀수가 무천장 밖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그를 생포하여 전후 사정을 알아본 뒤 만일 농간을 부렸다면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방법으로 죽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는 끝끝내 나오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였거나, 약아서가 아니라 색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색을 밝히다 패가망신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이처럼 목숨을 부지하는 경우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혈면귀수를 어떻게 할 수 없는 동안 시간은 점점 흘렀다. 그러는 사이 산해관 인근에 자리잡은 빈촌들은 점점 사정이 나아지고 있었다. 하릴없던 협도당원들이 눈꼴 신 기원이나 전장 등에서 은자를 훔쳐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협도당의 명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분명 도적의 무리이건만 무천장이나 피해를 본 극히 일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환영받는 집단이었다.

적어도 산해관 인근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이 어수선해서 그런지 비난받아 마땅한 도적들이 칭찬 받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 중원의 북동쪽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그 바람이 잠시 불다 멈출 바람인지 아니면 만 천하를 휩쓸고 지날 대 폭풍의 전주곡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 * *

"언니! 우린 이제 어떻게 하지? 먼저 아버님이 계신 탑리목분지로 가야하는 것 아냐? 기다리실 텐데…"

"그럼, 가긴 가야지. 하지만 그냥 갈 수는 없잖아. 사부님의 원수를 갚는 것이 우선이야. 안 그래?"

"으응!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데, 우리 힘으로 될까?"

"호호! 얘는 뭔 걱정을 그렇게 해? 우리가 익힌 무공은 무림천자성이라는 데에서 근무하는 정의수호대원 쯤은 우습게 알 그런 상승 무공이야. 게다가 우린 둘이고…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을 거라고 했잖아. 안 그래?"

"그, 그거야 그렇지만…"

"호호! 얘는… 걱정하지 마. 우선 합비로 가서 마면호라는 놈을 처치하자. 그 다음에 우리를 능욕하려했던 철기린을 찾아서 해치워야지. 그리고 나서 주제 파악도 못하고 우리를 넘봤던 보달기와 그놈의 졸개들을 혼내주자. 아버님께서 기다리시고 계시는 건 잘 알지만 거기 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어. 그러니 탑리목분지는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 가자. 좋지?"

"그, 그럼 사부님의 원수는?"

"호호! 얘는… 그거야,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지. 우린 지금 태산으로 가는 중이야. 여기서 계속 북상(北上)하면 되지. 감히 우릴 넘봤던 놈들도 손봐줘야 하지만 가장 먼저 처리할 일은 인두겁을 쓴 짐승인 그놈의 정체를 낱낱이 밝히는 거야. 그래야 저승에 계신 사부님께서도 편히 잠드실 거야. 안 그래?"

"맞아! 그런데 어찌…?"

"호호! 여기서 태산으로 가려면 어차피 합비를 지나야 해. 그래서 마면호를 제일 먼저 처치하자고 한 거야. 어차피 철기린이나 보달기는 어디 있는지 모르니 일단 태산을 다녀온 다음에 찾아도 늦지 않을 거야. 이의 없지?"

"으응! 그랬구나. 알았어."

대답을 하기는 하지만 사라는 왠지 엄습하는 불안감 때문에 흠칫 떨렸다. 그러나 언니인 유라는 조금의 걱정도 없다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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