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82

일지매 (5)

등록 2003.07.11 09:16수정 2003.07.1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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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인 초인악이 개정대법으로 내공을 건네고 죽은 후 둘은 사부의 침상 아래에서 두 권의 비급과 한 권의 도, 그리고 옥잠 하나를 발견하였다.

비급은 사부의 가전무공인 일월도법의 전반부 십팔 초식과 후반부 십팔 초식을 익히기 쉽게 도해로 그려놓은 무공비급이었다. 그리고 한 자루 도는 사부의 가전지보인 일월신도였다.


머리 부분에 꿈틀거리는 용이 양각되어 있는 옥잠은 누구의 솜씨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명품임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옥잠 그 이상도 아니었고 그 이하도 아니었다.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저 옥잠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둘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일월도법 전반부와 후반부 모두를 연성해 내는 개가(凱歌)를 올렸다.

일월도법은 전반부 십팔 초식만 익힌 사부의 쌍둥이 형인 한운거사 초지악을 정의수호대원들을 길러내는 무공교두가 될 정도인 상승무공이다.

따라서 전반부만 익힌다 할지라도 웬만한 사람은 평생을 익혀도 대성하기 힘든 일인데 무공을 모르던 한낱 여인의 몸으로 극성까지 익힐 수 있었던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초인악이 개정대법으로 남긴 각기 반 갑자 정도의 내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둘 다 문일지십(聞一知十)하는 총명함 덕분이다.


마지막 셋째는 사부가 남긴 일월신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월신도는 다른 도에 비하여 유난히 도신(刀身)이 두툼한 것이 특징이다. 그렇기에 처음엔 그것을 들고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들어 애를 먹었다. 도법을 익히기는 하여야겠는데 정작 도가 무거워 휘두르기가 힘들자 둘은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고심하였다.

그러던 중 눈썰미가 좋은 사라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일월신도는 중심부에 아주 가느다란 선이 그어져있다. 그것은 도신은 물론 칼등과 손잡이까지 이어져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그녀는 결국 일월신도가 일도(日刀)와 월도(月刀)로 나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은 대대로 도를 지니고 있던 초씨 집안의 가주들조차 모르던 사실이다.

일월신도가 무겁기는 하지만 사내들에게는 조금만 근력을 키우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중심부에 그어진 선에 의심을 품었던 사람이 전무하기 때문이었다.

일월신도는 원래 부부를 위한 병장기였다.

일도는 사내가, 그리고 월도는 여인이 사용하는 것으로, 일월도법은 부부가 펼치는 일종의 연수합격식(連手合擊式)이었다.

여인이 전반부 십팔 초식을 펼치는 동안, 사내는 후반부 십팔 초식을 펼치는데 이렇게 할 경우 기관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 엄밀한 도막이 형성되어 서로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상대를 신랄하게 공격하는 수법이 된다.

일도와 월도는 자성(磁性)이 강한 자철광을 제련하여 만들었기에 가까이 대면 마치 지남철이 달라붙듯 그렇게 달라붙는데 어찌나 단단하게 달라붙는지 웬만해서는 떼어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반 갑자 내공을 지닌 사라와 유라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떼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일도와 월도가 떼어진 단면에는 뭔가가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원래의 일월도법 삼십육 식 구결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비급에 있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비급에 기록된 것은 일월도법이 연수합격식이라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허술한 부분을 보완, 또 보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굉장히 복잡다단하였다. 보법도 그랬고 보는 이로 하여금 어지럽다 느끼게 할 만큼 현란한 변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에 비하면 원래의 일월도법은 간단 명료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정도였다. 혼자 모두를 하는 것과 둘이 나눠하는 것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라와 유라가 쉽게 전, 후반부 삼십육 식 모두를 연성해 낸 것이다.

그렇다고 둘이 익힌 일월도법이 허술하냐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늘 연수합격을 하게 되니 비급에 기록된 일월도법을 혼자 펼치는 것보다 강력하였다.

만일 비급에 기록된 구결에 따라 일월도법을 익힌 무인과 도신에 쓰여 있는 구결을 보고 일월도법을 익힌 두 사람과 대결한다면 후자가 백전백승을 거둘 정도이다.

그렇기에 무림천자성의 정예인 정의수호대원들을 길러내는 한운거사 초지악을 어렵지 않다는 표정으로 언급한 것이다.

아무튼 모든 연성을 마친 둘은 사부의 무덤 가에서 반드시 인면수심인 한운거사의 정체를 만천하에 낱낱이 밝혀 다시는 고개를 들고 활보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어머나 얘! 저기 좀 봐라."
"어머! 영락없는 사자(獅子)네…"

유라가 가리킨 곳을 바라본 사라는 감탄사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조각이라도 했는지 갈기를 세운 사자의 형상과 너무도 똑같은 바위가 보였기 때문이다.

"언니! 저기 좀 봐. 저것도 사자의 모양 같지 않아?"
"어디? 어머! 정말 그렇네…"

사라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유라 역시 감탄사를 터뜨렸다. 사자의 형상을 한 호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호! 저건 용하고 봉이 서로 뒤엉켜 있는 것 같지 않니?"
"어디? 어머, 정말 그렇네. 여긴 정말 아름다워. 안 그래?"

"그래! 호호! 이런 절경을 코앞에 두고도 한 번도 못 보다니… 안 되겠다. 우리 저기 가서 수욕(水浴)이나 한번하고 갈까?"
"수욕…?"

"그래, 여긴 아무도 없는 것이니 까짓 것 오랜만에 발가벗고 한 번 씻어보자. 좋지?"
"호호호! 좋아, 언니!"

걸치고 있던 경장을 훌훌 벗어 던진 유라가 먼저 물 속으로 뛰어 들자 이에 질세라 사라 역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중원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화려한 금발에 새하얀 피부를 지닌 사라와 유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빙기옥골(氷肌玉骨)! 십전완미(十全完美)!

만일 발가벗은 두 여인의 나신을 보는 행운을 누릴 시인 있다면 한동안은 이 두 마디 이외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며 몸매이기 때문이다.

잠시 숨을 돌리고 난 시인은 화용월태(花容月態), 침어낙안(侵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 경국지색(傾國之色), 해어화(解語花) 등등을 떠올리다가 긴 한숨을 내쉬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필설(筆舌)로 형용치 못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절실히 깨달으며, 자신이 본 것을 생생하게 기록할 수 없음에 낙담하게 될 것이다.

사라와 유라는 애써 흠을 잡으려 해도 잡을 곳이 없을 만큼 완벽한 몸매의 소유자였고, 아름다움의 소유자였다.

천상(天上)에서 내려온 옥녀(玉女)와 월궁(月宮)에서 하강한 항아(姮娥)가 한가로이 유영(遊泳)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둘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이곳은 황산에서 가장 긴 협곡인 비취곡(翡翠谷)이라는 곳이다. 사자의 머리를 닮은 바위는 사두암(獅頭岩)이라 하고, 사자의 형상을 한 호수는 청사지(淸獅池)라 불리는 곳이다.

그리고 지금 사라와 유라가 뛰어든 못[澤]은 용봉지(龍鳳池)라 불리는 곳이다. 비취곡에는 이외에도 해풍탄(海蚌灘), 화경지(花境池), 옥환지(玉環池) 등 여러 절경이 있다.

"이제 우리는 사부님이 말씀하시던 구룡폭(九龍瀑)을 지나 합비로 향할 거야."

한참 동안 인어 같은 몸놀림으로 유영을 즐기던 유라는 따사로운 햇살에 따뜻해진 바위에 걸터앉아 머리를 말리면서 동생인 사라의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이곳 황산에는 봉래삼봉(蓬萊三峰)이 있는데 천도봉(天都峰)과 옥병봉(玉屛峰), 그리고 연화봉(蓮花峰)이 그거야. 그 중 천도봉과 옥병루(玉屛樓)라고도 불리는 옥병봉에서 흘러나온 물이 운곡계(雲谷溪)의 물과 만나 장엄한 모습으로 쏟아지는 것이 바로 구룡폭이지. 이건 아홉 번이나 꺾이면서 쏟아져 내리는데 각기 아홉 개의 담(潭)을 만들어서 구룡담(九龍潭)이라고 부른대."
"언니! 언니는 어떻게 그런 걸 잘 알아?"

사라는 지금껏 마음 속으로만 품고 있던 의문을 비로소 털어놓았다. 같은 날, 같은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 언니인 유라는 언제나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사라는 늘 열등감을 느끼며 살았다. 그렇지만 자존심이 있기에 묻지 않았는데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곳은 오늘 처음 보는 곳이고 유라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부의 거처에서 무공만 연마했다. 그런데 만물박사처럼 막히는 것 없이 척척 대답하니 어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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