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안으로 들어간 헐벗은 ‘꼬꼬닭’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26>어린 내가 닭장 속에 들어간 이유(닭 요리를 위한 전초전)

등록 2003.07.13 11:49수정 2003.07.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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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80마리나 길렀던 우리집

우리 집에서는 닭을 많이 길렀다. 여든 마리가 넘었다. 그렇게 마리 수가 많았던 것은 부화할 때만 조금 손이 들어갈 뿐 그 이후는 해질 녘 엇가리에 가두고 모이 한 번 휙 던져줘도 복날이 가까워지면 먹기 딱 좋게 자라기 때문이다.

소작으로 기른 ‘묵갈림’ 소 한 마리, 돼지 두 마리, 염소 두세 마리, 개 한 마리에 비하면 마리 수가 비교되지 않았다. 그래야 단백질 자급자족을 할 수 있으니 실질적인 집안 영양식의 대명사였다.

새싹이 노랗게 돋아나기 전에 둥지에 알을 넣어주면 스무날 하루 삼칠일이 지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어김없이 “쏙쏙” “쪽쪽” 그 맑은 소리를 내다가 “삐약삐약” 하며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왔다. 노랗던가 까맣던 귀염둥이 병아리는 우리 솔강이 해강이 만큼이나 예뻤다.

그렇게 알을 깨려면 짚으로 짠 둥우리에 각각 스무 개에 남짓 다섯 마리의 암탉이 부화를 해야 한다. 어둠침침한 곳에서 알을 품고 있는 암탉에게 모이 갖다 주느라 내 어린 시절 봄날은 갔다.

그러니 마당에는 울긋불긋 가지각색으로 닭이 차지했다. 붉은 색 바탕에 검은 색 옷을 입고 맨드라미보다 더 선명한 빨간 벼슬을 자랑하는 수탉, 누런빛 흰색 까만 암탉이 서열을 정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겨울엔 초가집 이엉에 붙은 나락을 따먹으러 올라가 지붕을 후벼파던 못된 놈들도 있었다. 그땐 간지대로 쫓아내도 결코 내려올 줄 모른다.

“워~”
“워~”
“쉬~”
“후여~”

외쳐보지만 굼벵이 잡는데 열중할 뿐이다. 결국 사람이 지쳐갈 무렵 작대기로 힘껏 던져 날개 죽지라도 맞춰야 한다. 그래도 그놈은 지붕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지붕 뒤쪽으로 돌아가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며 아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또 다시 후벼파고 있다. 요놈들을 더 오래 뒀다가는 봄철 고사리 꺾을 때나 장마철에 빗줄기가 주룩주룩 서까래를 타고 비가 들이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 알도 낳지 못하는 수탉이 “꼬꼬댁 꼭꼭” “꼭꼬댁 꼬꼬” 하며 한 번 울어 젖히면 주위 수탉은 물론이고 암탉들도 덩달아 우짖으니 집안에 불난 일 말고 제일 시끄럽다. 그 땐 도리가 없다. 돌멩이 두 개 세 개 찾아 사정없이 가격(加擊)을 해야 “꽥” 하며 옆집 마당으로 훌쩍 뛰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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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고센농장의 토종닭 ⓒ 김규환



온 마당을 차지하고 마구 어질러 놓는 닭의 일상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는 암탉은 모성본능과 귀소본능의 절대강자다. 어찌나 사납던지 모이를 주는 주인도 몰라본다. 아장아장 걷던 다섯 살 아래 동생 연순이가 근처에 접근했다가 사납게 달려드는 토종 암탉에 혼비백산 달아나는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돼지도 접근하기 어렵고 평소 적수가 되지 않은 누렁이도 그 땐 몸조심해야 한다. 1미터 이상 풀쩍 뛰어 공격을 해대니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밤이 되면 닭장으로 찾아오니 귀소본능마저 대단하다.

마당가에 노란 싹이 트면 엄마 손잡고 나온 병아리들이 마당을 점령한다. 지렁이 닮은 볼그족족한 가녀린 발,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가냘픈 다리로 뭐 후빌게 있다고 마냥 발짓을 해대면 간혹 지렁이를 만난다.

붉은 실지렁이를 보면 깜짝 놀라는 듯 하다가 이내 친해져서 침을 꼴깍꼴깍 흘리며 요리 쪼고 저리 뒤집어 갖고 놀다가 부리에 길게 물어 마당 사방을 쓸고 돌아다니는데 덩달아 뒤를 쫓는 병아리 떼가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열댓 마리의 쫓고 쫓기는 쟁탈전 벌어진다. 싸움이 길어지면 대문간 밖으로 나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중병아리들에게 빼앗기는 수도 많았다.

자올자올 병 걸린 병아리에겐 고추장에 밥 비벼주면 다시 살아나

병아리를 포함 닭이 퇴비 자리 근처에서 얼마나 발길질을 해댔던지 성가시기가 웬수가 따로 없었다. 보리 까시락과 보릿대, 나락 이삭이 섞인 검부러기가 있을 때는 정도가 심했다. 마당을 쓸어 다시 올려 가지런히 해 놓으면 주인 아들 심정은 헤아릴 생각이 없는지 한나절이 멀다하고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러다 심심하면 마당 아래쪽에 조금 고여있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본다. 하늘보고 다시 물 한 모금. 몇 번이고 반복하다 풀 톡톡 따먹고 하루살이, 깔다구 등을 땅을 박차고 잡아먹는다.

“자올자올” 고개를 떨구고 저승사자 호출을 받는 불쌍한 병아리도 있게 마련이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병에 걸린 병아리가 늘어만 간다. 제아무리 깨워도 일어날 줄 모르는 이 병아리에겐 고추장이 약이었다. 중병아리 이전에 해롱해롱 졸다가 죽고 마는 뉴카슬병에 걸리면 식은 밥에 고추장을 맵게 비벼준다.

그걸 먹으면 그 놈은 살았고 그 마저 못 받아먹던가 먹을 생각이 없으면 정말 저 세상으로 가고 마는 것이다. 비빔밥 만들어 주다가 숟가락에 묻은 흰쌀밥을 얼마나 떼먹었는지 모른다. 마이신을 물에 타서 준 것은 한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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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저 너머로 넘어가는 까닭을 아십니까? ⓒ 김규환



닭장 속으로 단백질을 꺼내러 간다

여든 마리가 다 자라기 전까지는 꽤 위험한 순간에 여러 번 직면하게 되는데 슬기롭게 잘 나는 놈들은 60여 마리에 이른다. 살쾡이, 고양이 밥에 매가 채가는 경우와 동네 형들의 닭서리에 스무 마리는 어디로 종적을 감춘 지 알 수 없다. 행랑채에 붙은 닭장으로 연기가 밤새 솔솔 들어가면 질식하여 죽는 놈도 더러 있었다. 몸집이 불어 커 가는 속도와 비례하여 시나브로 없어지므로 눈에 띄게 마리 수가 줄어들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뿐이다.

예순 마리에서 게 중 먼저 자란 닭을 5월 말쯤부터 한 마리씩 잡아 먹어간다. 가을 문턱에 이르면 서른 마리 이하로 그 숫자가 현저히 줄어드니 우리 집은 닭만큼은 꽤 자주 먹은 편이었다. 열흘이 멀다하고 닭을 잡아먹었으니 말이다.

낮에는 닭 잡기가 쉽지 않았다. 갑작스레 손님이 찾아 올 때는 아버지 밥에나 두 줌 섞어드렸던 쌀보다는 보리쌀을 두어줌 오복이 모아 “구구~” “꾸~구”하고 부르면 서로 먹겠다고 멋모르고 덤빈다.

여름이 깊어갈수록 그 낌새를 보고 덤비지 않으면 쌀이라도 던져줘야 했다. 비좁은 공간에서 정신 없이 먹어나가는 틈을 보아 매가 채가듯 뒤쪽에서 다리를 확 낚아채면 다행이다. 첫 번에 성공리에 마치지 못하면 두어 시간 닭 잡는데 허비하는 수도 있었다. 잔뜩 손님께 바람만 들게 하고 아쉬운 걸음으로 떠나게 하는 수밖에 없다.

밤에는 훨씬 수월하다. 다섯 살을 넘기고는 키 작은 내가 주로 닭장 안으로 들어갔다. 키 작다는 것이 요긴하게 쓰이고 안성맞춤이었으니 밖에서 누구 한 사람만 어둠 속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면 용기를 내 닭똥을 밟으며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어둠에는 나약하기만 한 닭은 손아귀에 들어올 때까지 “고고” “꼭꼭” “꼬고곡” 할 뿐 멀리 도망가지도 큰 소리내 시끄럽게 울지도 않는다. 횃대 위에서 잔걸음으로 몇 발짝 움직일 뿐이다. 잡히지 않으려 옆에 있는 닭을 밀쳐내므로 그 때 툭 떨어진 한 마리를 주워도 되었다.

바깥 달빛을 받아 어슴푸레한 빛에만 의지하여 적당한 크기의 닭을 선정하면 두 날개를 잽싸게 모아 채거나 다리를 잡으면 “꽥~”"꽥!” 한두 번 비명을 지르고 목을 내게 맡겼다. 이왕지사 닭을 잡아왔으므로 털 뜯는데도 같이 한다.

아궁이 안으로 기어 들어간 헐벗은 꼬꼬닭

목을 두 번 확 비틀어 왼손에 움켜쥐고 바닥에 옴짝달싹 못하게 누르며 형제들과 때론 아버지와 둘이서 털을 뽑는다. 퇴비자리 언저리에서 주로 하지만 비 오는 날엔 정지 흙바닥이 작업 장소다.

맨 먼저 길고 억센 날개 쪽 털을 뽑아나간다. 이윽고 겨드랑이, 다리, 목을 거쳐 하나하나 뽑아 나가면 10여 분 만에 홀딱 벗겨진 알몸 닭으로 변신한다. 잔털을 뽑고 있는 사이 한 사람은 짚 다발을 한 단 풀어 움켜쥐고 온다. 조금은 조심스럽게 털을 뽑아야 하는데 닭 이(虱)가 언제 팔 둑을 타고 기어오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끓는 물에 튀기기보다 연기 내음이 덜 나는 짚을 태워 잔털과 닭발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기 위해서인데 그렇게 닭을 잡으면 꿩고기 다음으로 맛있다. 그 때 키운 닭이 요즘 닭과 비교되지 않는 육질을 자랑하고 고소하기 이를 데 없지만 굳이 그렇게 하는 까닭은 닭 껍질을 좋아하는 집안 사람들의 식성 때문이기도 했다.

가져온 짚 다발을 풀어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하는 작업은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닭을 부엌에서 잡던 어느 날 큰형과 누이는 황당한 꼴을 당하고 만다. 웬만한 털을 다 뽑아 짚으로 그을리려고 닭을 부삭(아궁이) 앞에 둔다. 순간 숨통이 덜 끊겨서인지 닭이 아궁이 안으로 기어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 어~”
“워메 달구새끼(닭)가 고래구녁(고래구멍)으로 기어들어가부렀어야.”
“얼렁 대막가지 좀 갖고 와봐라.”

어르고 달래보았지만 점점 깊이 들어간 닭이 나올 턱이 없었단다. 급한 김에 부지땅(부지깽이)으로 건드려보고 고래 쑤실 때 쓰던 긴 대를 가져와 건드려 보아도 나올 줄을 모른다. 최후의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움푹 패인 아궁이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연기를 솔솔 피우니 눈물 머금고 밖으로 나온 황당한 사건을 어릴 적 들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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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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