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육회 얻어먹느라 아버지 곁을 떠나지 못했다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27>우리 집 닭 잡는 33년 전 풍경

등록 2003.07.13 16:17수정 2003.07.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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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털을 다 뽑고 나서 지푸라기에 불을 붙인다. 다리와 머리를 번갈아 가며 잡고 휘휘 돌려가며 부지깽이 하나 길게 걸쳐 잔털을 제거하노라면 헐벗은 닭이 누릿누릿 구워져 보기에 참 좋다. 닭털 타는 냄새가 확 풍긴다.

활활 금세 타버리는 짚이니 잠시도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마구 돌려가며 후후 손을 불며 툭툭 문질러 주고 큰 것은 확인하여 쏙 뽑으면 투실투실한 닭살이 확연하고 통통하다. 이렇게 하고 나면 웬만한 큰 털 작은 털 가리지 않고 다 없어진다.

마지막으로 몸통을 잡고 닭발과 머리, 겨드랑이 부분에 불에 갖다 댄다. 약간은 오래 대고 있어야 했다. 발 껍질이 적당히 익으면 무릎 뼈에서 시작하여 다섯 발가락 있는 방향으로 식기 전에 쭉 훑어 껍질을 벗겨낸다. 가무잡잡한 것, 노오란 것, 흰 것 등 발 색깔도 여러 가지다.

물을 길어다 놓은 양동이를 가까이 가져와 대야에 물을 붓고 닭에 따끈따끈한 기운이 남아 있을 때 즉시 물에 담가 빡빡 문질러대면 김이 모락모락 나며 잘도 씻겨진다. 큼지막한 도마 위에 올려 숫돌이나 장꽝 널찍한 돌에 무쇠 칼을 싹싹 갈아 살에 들이대면 닭 잡기 행사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날짐승은 풍(風) 기운이 세다’고 해서 반드시 부리와 사지(四肢)의 맨 끝 부분을 칼로 먼저 잘라 없앤다. 발은 따로 떼어 둔다.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배를 가르는 것이다.

배따기는 사람마다 숙련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꽤 어렵다. 칼끝으로 가슴뼈를 중심으로 옆구리에서 한 쪽으로 살짝 기울게 칼집을 내고 칼자국을 따라 새가슴 부위에 이르러 꼭 힘을 주고 세게 누르면 “톡” 하며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이등분되는데 자칫 잘못했다가는 밥통을 건드리고 만다. 그러니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밥통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닭 뱃속이 온통 똥 천지가 되니 말이다. 칼질을 잘 해도 아귀힘이 보통이 아니고서는 겁낼만한 공정이다. 여기까지 해내면 다음 일은 그래도 수월한 편이다. 곧 힘을 더 주어 양쪽으로 눌러 벌려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한다. 안에 있는 내장을 끄집어내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밥통을 먼저 꺼낸다. 밥통과 붙어 있는 식도(食道)와 나란히 기다랗게 입까지 이어지는 그 아름답게 울어예던 목 울대를 쭉쭉 잡아 빼 혓바닥까지 끄집어내다 확 잡아채면 위쪽은 완성이다.

“달걀이 오십 개는 되겠는디‥.”
“아부지. 참말로 그러네요.”
“봐라, 이건 껍질도 생겼다.”
“워메, 오늘 오후에 날 것이었는지라우. 그 옆에 것은 얇은 막만 있는데요.”
“아들아, 이번에 잡은 씨암탉은 쬐끔 아깝쟈?”
“글게라우. 며칠 더 나뒀다 잡았으면 알 한판이 뭡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단다. 이미 잡은 걸 되돌릴 수가 없잖냐?”
“중병아리들을 얼른 키워야겠네요.”
“암. 고마니 줄기나 풀 잎사귀도 많이 베어다 주거라.”
“예, 아부지.”

선혈이 묻은 달걀 실핏줄이 선명하게 그어진 노란 알이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먼저 아버지께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달걀을 하나 톡 떼어서 입으로 가져가신다.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막내아들에게도 하나 주셨다. 그냥 삼킬까 하다가 굵은 소금 대여섯 개 털어 넣고 깨물어 버렸다. 입안에 노른자 달걀이 가득 고였다.

그 다음 아래쪽으로 작업을 해나간다. 창자만 터지지 않게 푹 파듯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긁어내면 항문 주위에까지 손쉽게 분리가 된다. 마지막으로 똥구멍에서 칼질 한 번 해주면 살덩이와 내장이 완전 분리가 끝난 것이다.

어쩌다가 손톱으로 밥통인 위(胃)를 잘못 건드리면 그 안에 들어있던 모래며 사금파리, 꼬막껍데기, 조개 껍데기 조각 등 돌 종류의 꽤 큰 것이 들어 있고 나락이나 탱탱 불은 콩, 보리 등 곡식이 나온다.

고깃덩어리는 한 곳에 잠시 두고 그 사이 간(肝) 옆에 붙은 파란 쓸개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한다. 고통이 심한 경우 쓸개가 쪼그라들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쓸개를 조심해서 손톱으로 터지지 않게 떼어 내고 염통(심장), 콩팥(신장), 간 등은 피를 제거하고 따로 모아 담아둔다. 작은창자(소장)와 허파는 분리하여 버린다. 큰창자 대장과 닭똥집 모래주머니는 소금과 밀가루 넣고 씻을 준비에 들어간다.

그 무렵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내장에 칼을 들이대기 전에 가슴살을 떼서 주셨다. 날로 기름소금 찍어 먹으면 횟감으로 손색이 없다. 다음 맛보는 것은 닭발이다. 털 뜯는 마지막 단계에서 닭발 껍질을 확 벗겨버렸으므로 여러번 씻을 필요도 없다.

칼등으로 콩콩 찧고 물러지면 칼날로 자근자근 수십 번 난도질을 하면 그 억센 닭발도 부들부들 먹기 딱 좋게 된다. 아직 나는 그 보다 더 고소하고 감칠맛 나고 오도독 씹히는 회다운 회를 먹어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소주 석 잔을 비우셨다. 닭발은 각각 하나씩을 먹었다. 내가 그리 아버지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었던 이유는 그 맛난 토종닭 회를 몇 점 얻어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 살 때부터 시작된 나의 그런 식성은 열 다섯 까지 이어졌다. 그러니 내 음식 이력은 특이하다 못해 기이했고 형제들의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맛난 육회를 먹는 즐거움에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양계장이나 닭 집처럼 모가지 숨통 근처에 날카로운 칼을 콕 찔러 피를 빼는 방법도 요즘 널리 쓰이고 있는 도축방법이긴 하나 모든 동물은 서서히 죽이는 게 고기 질이 부드럽기 때문에 피를 빼려다 고기 맛을 버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 내장을 씻으면서 물에 담가두면 다 빠져나가니 별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모래주머니를 손질한다. 두꺼운 피막을 두 토막 내 안에 있는 잘 소화된 똥을 드러내고 위장에 좋다는 누리끼리한 속껍질을 벗기고 굵은 소금 팍팍 쳐가며 이리저리 돌에 문댄다. 끝으로 맛 본 건 똥집이었다.

큰창자를 칼끝으로 구멍에 찔러 넣어 쭉쭉 밀면서 묽은 닭똥을 걷어내서 따면 회충이 드글드글 한 적도 있어 그 전에 먹었던 회 맛이 싹 달아나는 때도 있었다.

물에 헹구고 소금 뿌려 대여섯 번 씻는다. 큰창자라지만 가녀린 창자는 손질하기는 다소 더럽고 비위생적이며 시간도 꽤 걸리는 무릎까지 아픈 성가신 일이다. 그래도 절대 버리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일념뿐이다. 쫑쫑 썰어 닭죽이든 닭볶음에 넣으면 쫄깃함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니 누구든 한 점이라도 더 먹으려고 야단을 떨었다.

지금도 광주 근처 나주, 담양, 장성, 곡성, 화순 근처에서는 닭 요리 집에서 똥집과 닭발, 가슴살을 먼저 내오는 집이 더러 있다. 나는 그런 음식을 오랜 동안 습관처럼 달고 살았다. 다른 지역 출신들은 먹어나 보았는가 모르겠다.

내장 손질을 마치고 고기 손질을 마저 해야 한다. 기름기가 부족한 시절에는 꼬리털이 박힌 꽁지에 붙은 기름덩어리 한 점 먹으면 닭 한 마리 다 먹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니 그 때는 절대 잘라서 버리는 일이 없었다.

닭 잡는 일을 마치고 쇠죽을 쑤러 나갔고 음식은 어머니와 누나가 했다. 닭 한 마리면 백숙에 가까운 닭죽을 쒀도 여덟 식구가 먹고 남았다. 찹쌀 죽을 쒀서 각자 그릇에 뜨고 닭을 부위별로 골고루 찢어 양푼에 담아뒀다가 죽 위에 몇 점씩 올려주셨다.

그날 나는 몇 그릇을 먹은 지 모른다. 마늘과 인삼 세 뿌리뿐이었는데 그 맛 흉내를 아무리 내려고 해도 재현하기 힘들다. 어릴 적엔 짱구가 되도록 먹었는데도 왜 그리 허천병이 났던지.

올 여름 휴가 땐 고향으로 가서 그 참 맛을 한 번 느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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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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