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청년시절,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추억

박철의 <느릿느릿이야기>

등록 2003.07.28 05:43수정 2003.07.2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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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남이섬1.

남이섬1. ⓒ 강가딘


나는 유년시절을 큰 개울물이 집 앞에 흐르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큰 강물이 흐르는 곳에서 살았다. 집 앞의 개울물은 내 유년시절의 추억을 한곳으로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삶의 흔적이 다 개울하고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하루 종일 개울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동네 아이들하고 어울리면서 헤엄을 배웠다. 개울물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갈래가 합쳐지는 곳에는 큰 바위가 있고 물웅덩이가 깊어, 아이들이 너럭바위에 올라가 다이빙을 하곤 했다. 하루 종일 물에서 놀다보면, 고추가 오그라들어 번데기만큼 작아진다.

그때 물에서 터득한 것은 내 몸을 물에 맡기면 내 몸은 물에 뜬다는 것이다. 발로 물장구를 치지 않고 편안한 자세로 물에 몸을 맡기면 부력에 의해 몸은 수면위로 부상(浮上)하게 된다. 그때 배운 엉터리 헤엄을 지금까지 잘 써먹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물에 빠져 두 번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고, 두 사람을 물에서 건져냈다. 한 사람은 거의 익사직전에 있는 사람을 구해 살려냈고, 한 사람은 초등학교 5학년 사내 아이였는데, 불행하게도 죽고 말았다.

6살인가 7살인가? 정확하지 않은데 물놀이를 하다가 깊은 웅덩이에 빠지게 되었다. 사람이 물에 겁을 먹거나 힘이 빠지면 몸이 물 수직으로 서게 되어 있다. 몸이 수평이 되어야 하는데 몸이 수직으로 곧추서게 되면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만 까불다가 물웅덩이에 빠졌는데 아무리 헤엄을 쳐도 물이 도는 여울목에 빠져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그때 ‘아, 나는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a 남이섬2.

남이섬2. ⓒ 강가딘


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누나가 달려왔는데, 누나도 나를 구하려다 같이 물에 빠져 내가 물에 쏙 들어갔다 나오면, 누나가 물 속에 들어가고 둘 다 물에 빠져 죽기 직전에, 동네 아주머니가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다 우리 둘을 발견하고 구해주셨다. 그 아주머니가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때 십여 분 정도의 느꼈던 공포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최초로 경험한 공포였다.


그 다음은 20대 중반 청년시절이었다. 친구들이랑 강원도 남이섬으로 캠핑을 갔다. 마장동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 밖으로 상쾌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무가 지나가고 산이 지나가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지나간다. 그때 나는 ‘아, 자유다!’ 하면서 진정한 자유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렴풋이 자유를 만끽했던 순간이다.

우리 일행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넜는데, 건너자마자 목이 마르다고 맥주를 두어 병 나눠 마셨다. 텐트를 치고 잠시 쉬는 동안, 내가 호기를 부렸습니다.

“야, 우리 헤엄쳐서 강을 건너갔다 오자! 어때, 근사하지? 우리 내기하자.”


나 말고 친구가 셋이 더 있었는데, 배를 타고 오면서 서로 자기 수영실력을 자랑하던 터였다. 내가 분위기를 띄우자 처음에는 좋다고 하더니 두 녀석은 꽁지 내린 강아지모양 슬그머니 기권을 하고 한 놈이 나와 수영대결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강가에 가서 팬티만 입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잔잔한 강물에 몸을 맡기고 팔을 쭈욱 쭈욱 내뻗으면서 물을 가르며 나아갔다.

적어도 남이섬에서 강 건너 육지까지가 거리가 1km가 넘었을 것 같은데, 우리 둘은 킬킬거리며 강을 건넜다. 마침 저녁노을이 강물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기분이 최상이었다. 입으로는 물을 퉤퉤 뱉으면서 다정하게 헤엄을 쳤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생각했던 ‘자유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실감하면서….

a 남이섬3.

남이섬3. ⓒ 강가딘


드디어 강을 다 건넜다. 강에서 걸어 나와 돌작밭에 섰는데 몸에 약간의 한기가 오고, 새끼발가락에 쥐가 나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시 남이섬을 향하여 강물에 뛰어들었다. 얼마동안 강물을 가르며 나가는데 오른쪽 새끼발가락에 쥐가 나서 오그라들더니 점점 심해져서 물장구를 치기가 어려워졌다.

몸을 뒤로 누이고 배영으로 나가는데 속도가 붙질 않았다. 발가락에서 시작했던 쥐가 종아리로 그리고 넓적다리로 올라오는데, 손으로 다리를 주무르면서 어떻게 하든 남이섬까지 가야만 했다. 같이 갔던 친구는 나보다 50미터는 앞서 가고 있었다. 기를 쓰다보니 죽을 맛이었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다리 한쪽은 계속 쥐가 나서 나중에는 허리까지 올라오는데 그때 ‘아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유'도 다 달아나고 말았다. 친구들에게 소리를 질러도 한 녀석도 쳐다보지 않는다.

어떻게 하던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하겠는데 내 몸은 강물에 곧추 서있고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와 내기를 했던 친구가 남이섬에 도착해서 내가 강물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텐트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다른 친구들을 불러와 나를 구하러 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두 녀석은 위기에 처한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쨌든 내 힘으로 강을 건넜다. 뭍에 도착해서 완전 녹초가 되었다. 살았다는 안도감에서 눈물이 나오는데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20대 중반, 자유와 죽음을 맞바꿀 뻔했던 별로 아름답지 않은 추억이다.

a 남이섬4.

남이섬4. ⓒ 강가딘


그 후로 가급적 수영 잘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는 잘 안 하는데, 아내에게 만큼은 아직도 수영 잘한다고 큰소리를 친다. 아내도 내가 수영을 굉장히 잘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죽음과 자유를 맞바꿀, 용기도 젊음도 나에겐 남아있지 않다. 내 나이도 강물처럼 많이 흘러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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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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