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선 눈이 내리고, 땅에선 온천수가 솟다

북위 40도, 일본 기타도호쿠(북동북 지방) 기행 (3) - 아키타현

등록 2003.07.30 10:01수정 2003.07.3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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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노천탕,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땅에서는 온천수가 솟았다
야외 노천탕,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땅에서는 온천수가 솟았다박도
도로유 온천마을

다음 행선지는 오늘밤 숙소겸 유황온천으로 유명한 도로유 온천 마을이라고 했다. 이 마을은 산간 오지로 무척 먼 길이었다. 눈 속의 산마을을 계속 달렸다. 아름다운 설경이었다.


이따금 눈에 띄는 주유소나 가게에는 ‘現金歡迎(현금환영)’이란 글씨를 붙여놓았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모양으로 일본인도 카드보다는 현금을 더 좋아하나 보다.

그런데 경치가 좋은 도시나 마을을 여러 차례 지나는 데도 우리나라라면 흔히 보일 듯한 러브호텔의 요란한 간판이 하나도 안 보였다. 쑥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일행들에게 물었더니, 그들도 잘 모르는 것은 일본친구들에게 물어가며 자세하게 일러줬다.

집집마다 마스코트인 양, 눈집을 한 채씩 만들어 집 앞에 세워 놓았다
집집마다 마스코트인 양, 눈집을 한 채씩 만들어 집 앞에 세워 놓았다박도
러브호텔이 우리나라처럼 관광지마다 즐비한 것은 아니다. 일본도 동네 외곽이나 고속도로 변에 위치한 이들 건물의 외관은 외국의 성모양이나 그럴 듯하게 눈길을 끌만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또 인기가 있는 러브호텔일수록 겉모양보다는 객실 하나하나가 색다르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좋은 설비를 갖추고 있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불륜이나 연인들만이 아니고, 부부가 오는 경우도 많다. 일본은 워낙 주택난이 심각해서 한 방에서 자녀와 지내거나, 심한 경우는 방 한두 칸의 집에서 부모와 자녀와 함께 지내기에, 가끔 부부가 이런 러브호텔을 이용하면서 한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고 간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여관이나 호텔에 동성끼리 출입하는 것은 규제하는 곳이 많고, 인기가 있는 곳은 엄청나게 몰려서 이용자들이 줄을 서거나 미리 예약을 해야 된다.


일본의 여관은 1박 2식에 얼마라는 식으로 식사와 숙박을 같이 묶어서 요금을 산정한다. 그리고 방마다 서비스를 담당하는 메이드가 있기 때문에 혼자 투숙하는 사람을 여관에서는 달가와하지 않는다.

일본사람들은 한 방에 4인 이용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는 데다가, 혼자 투숙하러 온 사람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처럼 실리에 밝은 사람들이 오는 손님을 안 받는다고 할 수 없으므로, 혼자 투숙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약을 받을 때, "죄송하지만 손님이 원하시는 그날은 만실이라 빈방이 없습니다"라고 완곡하게 거절을 한다고 했다.

아오모라현에 있는 스카유온천(지금도 남녀혼욕탕으로 성업 중임)
아오모라현에 있는 스카유온천(지금도 남녀혼욕탕으로 성업 중임)박도
나는 이제까지 무턱 일본의 성문화는 우리나라보다 더 개방적이고 무질서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현지 사정에 밝은 이들에게 자세한 얘기를 듣고 보니, 의외로 일본은 그들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그렇게 문란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지난 번 일본 기행 중에 방송대 이영 교수에게 들은 바, 일본에서는 남녀가 러브호텔을 가도 각자 부담으로 반반씩 비용을 분담한다는, 그래서 일본 여성들은 이런 면에서 쩨쩨한 일본 남자보다는 기분파 한국 남자를 선호한다는 우스개가 생각나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입으로 먹고 사는 개그맨 김광회씨가 이런 얘기에 빠질 수 있나. 이런 저런 객담으로 차내에 웃음꽃이 폈다. 이번 테마 여정에는 아오모리현에 있는 스카유 온천도 들른다는데, 그곳은 아직도 남녀 혼욕탕으로 성업 중이라는 귀띔도 있어서 나그네의 호기심을 잔뜩 부풀게 했다. 차내 환담을 즐기는 새 땅거미도 지고, 버스는 온천 마을 들머리에 도착했다.

온천마을로 가는 길, 대형버스는 지날 수 없을 만큼 좁고 적설량이 많았다
온천마을로 가는 길, 대형버스는 지날 수 없을 만큼 좁고 적설량이 많았다박도
18: 00, 거기서는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우리가 탄 대형버스가 도저히 온천마을에는 갈 수 없다고, 이미 여관 측에서 미니버스 두 대가 와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니버스에 짐을 옮겨 싣고 온천마을로 향했다. 산도 깊고, 길도 좁고, 적설량도 2-3미터는 돼 보였다. 마치 개미 한 마리가 크림 케이크를 핥으며 지나는 꼴이었다.

18: 20, 마침내 온천마을 오쿠야마(奧山)여관에다 여장을 풀었다. 여관 이름대로 오지(奧地) 중의 오지, 깊은 산마을로 온천으로 물이 흔한 지 온 길바닥이 흥건했다. 온천수를 이용해서 길의 눈을 녹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숙소는 이층인데 올라가 보니 다다미방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부산의 우리 집 이층이 모두 다다미방이었기에 마치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오쿠야마 온천여관
오쿠야마 온천여관박도
19: 00, 여관 안방에서 저녁 식사가 있었다. 산채 정식이라는데, 작은 소반에 일인용 밥상이 나왔다. 찌개조차도 일인용이었다. 음식을 담은 그릇이 모두 달랐다.

여기서는 반찬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다른 이에게 옯겨다 주는 것은 큰 결례라고 한다(젓가락을 사용하여 물건을 건네는 것은 장례식 때 유골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전하는 것으로만 연상하기에 일본에서는 이렇게 젓가락으로 물건이나 음식을 주고 받는 것은 금기시한다).

반찬의 양도 조금씩 담은 바, 꼭 필요한 양만큼 담았다. 어찌 보면 좀스럽지만 대단히 위생적이었다. 이에 견주면 중국은 그릇마다 철철 넘쳐서 그 양에 그만 질려 버린다. 우리나라는 그 중간쯤이다.

사실 우리의 식생활 문화 중에 바꿔야 할 것으로, 찌개나 간장은 대체로 공용으로 너도나도 숟가락이 함께 간다. 부침개 같은 것은 한 입 먹고 난 다음 그대로 간장 종지에다 찍어 먹는다. 생각해 보면 대단히 비위생적이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파는 어묵가게의 간장종지는 아마 수십 명의 침이 묻어 있을 게다.

내 어렸을 때, 할머니는 결벽증이 심해서 엿장사들의 엿은 잡숫지 않았다. 할머니는 엿장수가 뒷간을 다녀온 뒤 손을 닦지 않고 뭐 만지던 손 그대로 엿을 만지기에 그런다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하셨다.

식사 후, 여관 안에 있는 온천탕을 들여다보았다. 온천물이 젖빛으로 유황 냄새가 확 풍겼다.

이 온천탕은 남녀가 함께 쓰는 욕탕으로
남성 전용시간은 오전 06: 00-06: 45, 오후 7: 40- 8: 40
여성 전용시간 오전 06: 45- 07: 30, 오후 6: 30- 7: 30으로 게시돼 있었다.

야외 노천탕, 냉온의 조화가 절묘하다
야외 노천탕, 냉온의 조화가 절묘하다박도
21: 00, 이 여관에는 야외 노천탕도 있는 바. 시간이 늦었지만 우리 일행을 위해 개방한다기에 노천탕으로 갔다. 탕 안은 온천물이 솟고, 탕 곁에는 눈이 일 미터는 더 쌓였다. 바위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는가 하면 하늘에서는 펄펄 눈송이가 떨어졌다.

옷을 벗을 때만 추웠지 막상 탕 안으로 들어가자 기분이 상쾌했다. 주당들은 노천욕을 즐기면서 물 위에다가 술잔을 띄워 놓고 마신다고 하니 이게 바로 신선놀음이 아닐까?

객실로 돌아오자 그새 이불이 깔렸고, 석유난로로 방안이 훈훈했다. 석유냄새에다 화재 염려로 난로를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온돌이 아니지만 견딜만 했다.

VJ 윤영진 씨와 나란히 누웠다. 그는 세계의 오지를 두루 섭렵한 지라 얘깃거리가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온천욕을 한 뒤끝이라 눈이 절로 감겼다. 아무리 재미난 얘기도 쏟아지는 잠에는 당할 수 없었다.

참 긴 여로의 하루였다. 아침은 서울서 먹고, 잠은 일본의 산간 오지마을에서 자다니 새삼 지구촌에 사는 실감을 했다.

노천탕 탈의실 겸 휴게실
노천탕 탈의실 겸 휴게실박도
온천마을
온천마을박도
온천마을 지붕에 쌓인 눈
온천마을 지붕에 쌓인 눈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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