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깔’ 베러 가면 즐겁다

‘꼴 베기’<2> 땅강아지, 두더지, 지렁이, 뱀과의 만남

등록 2003.08.05 19:55수정 2003.08.0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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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어울려 '깔 베기'


내 고향 화순에선 소가 먹는 풀인 ‘꼴’을 ‘깔’이라 했다. ‘꼴’이라 부른 적이 거의 없다. 아마도 'ㄲ'과 'ㄹ' 받침 사이에 있던‘아래아(·)’가 표준어에선 ‘ㅗ'로 바뀌어 '꼴'이 되고 우리 지역에선 ‘ㅏ’로 바뀌어 '깔'이 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우린 그 '깔'을 무척 많이 벴다. 자기 논두렁 베러 가는 날만 혼자서 갔다. 친구들과 함께 '깔'을 베러 가는 날이 절반쯤은 되었으니 그들과 어울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같은 또래 아이들과 함께 '깔 베기'는 즐겁다. 놀이까지 곁들여지니 일에서 해방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숫자가 적을 때는 세 명, 많을 때는 일곱 명이 함께 간다. 그러니 여럿이 자기가 필요한 만큼 베어 오려면 넓은 곳을 찾아야 했다. ‘깽번’이라 불리는 냇가로 가는 게 몰려가기에 안성맞춤이다.

같이 베다보면 솜씨도 각기 다르다. 대충대충 긴 풀만 베는 아이, 몽글고 맛 좋고 영양 많은 걸 골라 베는 아이, 자신의 망태나 바지게가 넘치도록 꾹꾹 눌러 양껏 베는 아이, 헐렁하게 채워 모양새만 한 짐 되게 하는 아이가 있다. 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걸 말해주기도 하고 성격도 작용한 것이리라.

어떤 애는 잘든 ‘바리깡’으로 머리를 빡빡 민 것처럼 고르게 잘 깎는 아이가 있어 같이 가면 기분이 좋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날이 잘 들지 않아 씹히던가 쥐가 뜯어먹듯 듬성듬성 몇 군데만 베고 곧잘 다른 곳으로 옮아가 다음 사람에게 전혀 기회를 주지 않는 미운 아이도 있었다.

그러면 같이 갔다가도 기분이 잡쳐 한마디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서 차분히 베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아따, 너 정말 그렇게 벨 거야?”

“뭘?”


“얌마, 너만 깔 베냐구?”

미안타고 하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계속 우겨댔다가는 개골창에 빠지는 다툼을 벌이는 수가 있다. 풀 베다 말고 무슨 소란이냐며 친구들이 달려간다. 그러고 나서 몇 마디 말다툼을 더 한다.

“앞으로 너랑 같이 깔 베러 오는가 봐라.”

“씨불놈아! 나도 너랑 같이 안가.”

“요… 욧~”

급히 달려온 나머지 친구들 덕에 그걸로 끝난 게 다행이다.

'깔' 베다 짬짬이 벌이는 즐거운 놀이

절반 이상을 베 놓고는 커다란 당산나무 앞으로 모이기 십상이다. 누가 모이잔 말을 하지 않아도 한 명이 다리 뻗고 앉아 있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온다. 그 때부터 벌어지는 놀이가 있다.

가장 흔하게 하는 것이 남자들만 모인 터라 옷을 홀딱 벗고 멱감는 것이다. 쑥을 따로 뜯으러 갈 필요도 없었다. 자신이 벤 꼴에 쑥 몇 개를 비벼 귀를 틀어막고 급하게 물로 뛰어든다.

30여 분 몸을 식힐 겸 목욕을 한다. 마침 날도 덥고 햇볕도 뜨거워 탱탱 불은 때 벗기기에 좋다. 도랑 가 바위에 앉아 겨드랑이와 팔 다리는 맨들 맨들 매끔한 돌을 골라 직접 문지르고 등짝은 친구에게 밀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다 물에 풍덩 한 번 빠지면 때가 둥둥 떠서 퍼지니 온갖 물고기들이 몰려와 때 주워 먹기 바쁘다. 좀 더 오래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살갗을 간질이기도 한다. 겁 없는 고기는 살을 파먹듯 덤비기도 한다.

멱감다 느티나무 아래로 몰려와서는 말타기를 한다. 먼 곳에서부터 힘껏 굴려 허리가 부러져라 뛰어 올라 상대를 무릎으로 가격하여 대열이 흐트러지면 한 번 더 할 기회가 있었으니 온갖 심술을 다 부렸다. 맨 몸으로 벌이는 말타기는 등짝이 패이고 개미마저 올라와 물어 뜯는다.

지칠 대로 지치면 물가로 다시 기어나가 몸을 마저 씻고 돌을 주워 물장구를 튀긴다. 꼴찌가 1등의 '깔 망태'를 지고 가는 내기를 하는 것이다. 한 사람에 한 번의 기회로 결판을 내기로 했다. 일곱 명이 차례로 돌을 던졌다.

몸을 바짝 숙여 납작하고 날렵한 돌을 골라 수면 위로 힘껏 던진다. 물 위로 물총새가 물을 “툭! 툭!” 치며 냇가를 직선으로 탐색하듯 돌멩이가 물장구를 치며 “톡~톡~톡~” 물 위를 걷는다.

“하나, 둘, 셋, 넷!”

“너는 보나마나 3등이다.”

“하나, 둘, 셋.”

“형근이가 꼴찌는 맡아 놓았구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그래, 성호가 현재 1등!”

일곱 명이 한번씩 던졌다. 평소 1등을 했던 병주는 손으로 땅을 치던 통에 꼴찌를 하고 말았다. 성호가 오늘은 1등을 했다. 다섯 방울을 튕긴 나는 4등을 했다.

“야, 내가 이겼다.” 성호 혼자 지르는 함성에 다들 풀이 죽어 있었다. 다시 자신의 낫을 찾아 '깔'을 마저 베러들 갔다.

땅강아지, 두더지, 지렁이와의 만남

후텁지근 더운 날이면 온갖 동물도 꿈틀거린다. 비가 올 징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물 속 고기는 산소 부족으로 위로 치고 올라온다. 멀리서 보면 벌써 빗물이 동구란 물방울을 만든 듯 하다.

땅 속의 동물도 가만있질 않는다. 한 때 ‘비사표’ 통 성냥의 날아다니는 사자를 닮은 땅강아지가 몇 마리 보인다. 꿈틀꿈틀 흙이 소주병 크기로 소리 없이 쭈루루룩 골을 파며 움직이면 두더지가 이동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동물은 징그럽거나 위험스럽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땅강아지를 몇 마리나 잡아서 갖고 놀았는지 모른다.

뱀 새끼만큼이나 큰 논두렁 지렁이는 상황이 다르다. “으…” 징글맞은 지렁이! 논두렁 지렁이는 집안 퇴비자리에 있던 지렁이와 크기, 모양에서 사뭇 달랐다. 보통 지렁이의 10배는 족히 되었다. 모양은 구불구불하지 않고 두껍다. 좋은 흙을 얼마나 먹어댔는지 검은흙이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 머리 쪽에 둥근 띠도 확연했다.

그런 지렁이가 논두렁 풀숲에서 “쑤욱” 머리를 내밀고 아래쪽으로 1미터 가량이나 훌쩍 뛰는데 그걸 보고 놀라지 않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뱀이라는 생각에서다. 대개 맨발로 논두렁을 깎았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운 것이다.

“어!”

“윽!”

소스라치게 놀라며 흠칫 뒤로 발을 빼 몸을 사린다. 곧 지렁이였다는 걸 확인했는데도 멀리 도망가지 않으면 결단을 내야 한다. 왜낫 날에 걸쳐 휙 벼가 쑥쑥 자라고 있는 논배미 가운데로 던져버리고 다시 베기를 계속 하게된다.

비 오기 전날이나 직전에는 지렁이가 쑥쑥 기어 나오니 풀숲에 손을 밀어 넣기가 겁났다. 가끔은 발바닥에 물컹하고 미끌미끌한 지렁이가 밟히는 수도 있었다. 때론 발등으로 그 놈이 스멀스멀 기어가니 정말이지 비 올 무렵 풀베기는 고역이다.

꽃뱀 화사(花蛇)와 능담 능구렁이, 두꺼비와의 만남

뱀도 더운 대낮을 피해 이른 아침이나 해 지기 두어 시간 전부터 창궐(猖獗) 한다. 습하고 풀숲이 너울져 있는 곳이라면 뱀이 있을 확률이 꽤나 높다. 이런 곳에 양말도 신지 않고 기어 들어간다는 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이나 야밤 공동묘지를 혼자 지나는 것보다 무섭다.

그러니 제아무리 좋은 풀이 있어도 그 곳은 피하는 것이다. 독사나 능구렁이, 꽃뱀인 화사(花蛇)가 없을 때는 물어도 독이 없는 물자수라도 꼭 있기 때문이다.

'깔 망태'를 지고 들길을 내려오다 보면 능구렁이가 개구리나 들쥐, 두꺼비를 그 작은 입을 찢어져라 “쩌억-” 벌리고 꿀꺽꿀꺽 삼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주위 기운도 그렇고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잡아먹는 그 섬뜩함에 머리카락이 쭈뼛 쭈뼛 일어선다. 그래도 한 번 본 이상 개구리 다리나 쥐꼬리가 조금 보일 듯 말 듯 한 상황이 전개되는데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개구리는 몇 번 목을 움직이면 쏘옥 안으로 들어가지만 들쥐와 두꺼비는 딴판이다. 제 입보다 10배가 넘는 덩치를 일단 입에 갖다대고 물었다하면 2,30분간을 한 자리에서 꾸역꾸역 야금야금 밀어 넣어 삼킨다. 거의 일(一)자에 가깝던 놈이 임신 8개월에 가까운 배통아지를 하고 있는 그 몰골이란 가관이다.

배불뚝이가 꼼짝 않고 한 자리에 머무르던 그 모습은 두 시간 여 힘들여 풀을 벤 시골 아이들에겐 배부른 돼지의 포만감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아따 저놈 검나게 배부르겄구만~’하고는 침 한번 “퉤-” 뱉고는 집으로 돌아온다.

때론 배부르지도 않은 뱀이 길을 차지하고 비켜 주지 않을 때는 사람이 더 공격적으로 변한다. 주위에서 아무 작대기 하나 주워 흠씬 두들겨 패주는데 피를 질질 흘리고 길바닥에 나뒹굴게 된다. 그런 재수 없는 뱀은 죽어서 개미나 파리의 밥이 되고 만다. 무섭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짐씩 지고 집으로

성호, 병주, 병섭, 병문, 해섭, 형근이와 나는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쉬는 동안 또 한가지의 놀이를 했다. 다름 아닌 ‘낫 꽂기 대회’가 그것이다. 흙이 적당히 모여 굳어 있는 곳을 찾아 자신의 낫을 땅에 던져 내리꽂는다. 그러다 보면 때론 낫 끄트머리가 부러지는 수가 있었다. 집에 돌아가서는 낫을 잃어버렸다고 거짓으로 고하는 일이 있었다.

두 번 밖에 보지 못했던 두꺼비 만나면 뱀 볼 때보다 얼른 도망친다. ‘두꺼비가 오줌이 눈에 닿으면 눈이 멀어버린다’고 하는 속설(俗說)에 근거한 것이다. 정말 그런지는 몰라도 어른들을 곧이곧대로 믿은 아이들은 순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잘게 썰어 물을 길러다가 쇠죽을 쒀주고 밥을 먹으면 어찌나 맛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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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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