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대의 영혼의 지갑은 어디에 있는가?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등록 2003.08.11 07:16수정 2003.08.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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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며칠 전이었습니다. 불현듯 지갑의 행방이 궁금해서 서랍을 열어 보았지만 지갑은 없었습니다. 장롱 서랍에도 없었습니다. 옷 속을 뒤져보았지만 거기에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 방 저 방을 다니면서 찾았지만 지갑은 어디에 숨었는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학생부 예배를 인도하고 돌아온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둘이 함께 지갑을 찾았습니다. 일단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어 보았습니다. 또 못 보고 지갑을 지나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서랍 속 밑바닥부터 샅샅이 뒤졌습니다. 반짇고리 속도 뒤졌습니다.

가방이라는 가방은 다 열어 보았습니다. 그래도 없었습니다. 다시 옷 속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철지난 옷 속까지. 아내와 나는 ‘없어’ ‘없어’ 하면서 거의 탈진 상태가 되기까지 지갑을 찾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그러자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 서울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잃어버린 것일까? 전철을 탄 적이 있는데 전철 속에서 신문을 읽을 때 소매치기를 당한 것일까? 아내와 나는 추리소설을 쓰듯이 지갑의 행방에 대해 추적을 시작했지만 이미 건망증의 포로가 된 내 머리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아이들이 돌아왔습니다. 애들한테도 “너희들 아빠 지갑 못 봤냐?” 하나마나한 소리를 했지만 아이들도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내가 “여보, 찾아 볼만큼 찾았으니 이제 찾는 건 그만 두지요. 일단 밥부터 먹읍시다”하며 지친 듯이 말했습니다.

지갑 속에 무엇이 들었는데 그 난리이냐고요? 돈이 몇 만 원 들었을 것이고, 운전면허증, 새로 발급받은 주민 등록증, 전화카드, 명함 몇 장, 메모지…. 다른 것보다 운전면허증과 주민등록증이 걱정이었지요. 별의별일이 다 벌어지는 세상이니, 그런 걱정을 안 할 수 있겠어요.


밥을 먹을 때도 완전히 모래알 씹는 맛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한참 지난 후에 다시 지갑의 행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또 좀 전의 그 짓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내일이 주일이고 그 다음날이 월요일이니 일단 분실신고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시 신문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여보, 지갑 찾았어요” 하며 내 지갑을 들고 달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안방과 내방, 거실을 다 뒤진 다음, 애들 방으로 달려가 거기에 걸어 둔 바바리 코트 주머니 속에서 내 지갑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바탕의 소동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건망증이 심해집니다. 지방으로 볼일이 있어 자동차를 운전해서 갔는데 일을 다 보고 돌아오려고 했더니 자동차 열쇠가 어디 가고 없는 것입니다. 식당에 가서 밥을 사먹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외투가 없어졌습니다. 외투를 식당에 벗어 놓고 왔습니다. 그 것 뿐만이 아닙니다. 자질구레한 것들을 수 없이 잃어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시 찾으면 되고, 찾지 못하면 조금 억울하지만 다시 돈을 주고 구입하면 됩니다.

우리는 지갑보다 더 귀한 것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별로 소중하지도 않은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진정 소중한 삶의 가치는 몽땅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것에 대해 조금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나 망설임도 없이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지금 그대의 영혼의 지갑은 어디에 있습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히 살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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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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