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04

인과응보(因果應報) (1)

등록 2003.08.11 12:31수정 2003.08.1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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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과응보(因果應報)

"당신이 배루난(裵累難)이오?"
"끄윽! 그런데? 그런데, 넌 누구냐? 꺼어억!"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던 청년의 눈빛은 한 마디로 불량배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빛은 조금만 빈틈이 보여도 즉각 달려들려는 늑대의 그것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매우 고약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쫙 째진 눈, 매부리코, 얇은 입술, 그리고 입가의 칼자국은 강호의 뒷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차반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앞섶은 풀어 헤쳐져 수북한 가슴의 털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취해서 그러는 지 알 수 없지만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는 불량배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아직 해가 중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 지(之) 자로 비틀거리면서 저잣거리를 휘젓고 있음에도 어느 누구 하나 나서서 그를 제지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그가 걸친 청삼 때문이었다. 한 자루 장검이 구름을 뚫고 나오는 문양이 수놓아진 그것은 분명 정의수호대원들이 걸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좌판을 걷어차 진열해 놓았던 상품들이 흩어져도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잘못 되는 날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배루난은 분명 무림천자성 소속 정의수호대원이다. 그리고 이제 한 달 후면 고향인 성도(成都)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원래는 석 달 전에 돌아갔어야 하는데 선무분타에 근무하는 동안 마차로 어린 소녀들을 치어 죽이는 사고를 쳤기에 복무기한이 석 달 늘어나 지금껏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강호의 정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정의수호대는 엄한 규율로 유명한 곳이다. 따라서 환한 대낮에, 그것도 명절도 아닌 이 즈음에 만취해 해롱거리는 것은 분명 복무규율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루난이 이 같이 굴 수 있는 것은 정의수호대의 전통 때문이다. 정의수호대원이 되기 위해선 사내라면 태산으로 가서 무공을 연마한 후 비무를 통해 합격을 해야 가능하다. 여인의 경우에는 남해 보타암에서 수련을 하게 된다.

이후 정확히 오 년 동안 복무해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수련을 마치고 시험을 통과하면 정식 단원이 되어 임지를 배정받게 되는데, 처음 임지에 당도하면 신참으로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게 된다.

이후 근무를 하면서 차츰 고참이 되어 가는데 복무연한이 거의 차 석 달 정도가 남으면 "말년"이라 하여 웬만한 행사에는 불참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다가 두 달이 남게 되면 금방 집에 갈 사람이라 하여 "갈참"이라고 부른다.

물론 모든 임무에서 열외가 된다. 그러다가 한 달이 남게되면 그때부터는 "찬밥"이라 불린다. 이때부터는 휘하 후배들에게 명을 내려도 말이 잘 안 먹혀든다.

어차피 금방 고향 앞으로 할 사람인데 그에게 잘 보여 무엇하냐는 의미도 있지만 그 동안 당한 것이 억울하여 말을 해도 못 듣는 척하는 것이다.

배루난은 어제부로 찬밥이 되었다. 정확히 한 달이 남게 된 것이다. 하여 이를 자축한다면서 숙소를 이탈하여 밤새도록 기녀를 끼고 술을 퍼마셨기에 대낮인데도 이렇게 만취상태인 것이다.

아무튼 이회옥은 상대가 시인하자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전에 선무분타에 근무한 적이 있소?"
"이 짜식이? 끄으윽! 얌마, 네놈이 누구냐고 물었지? 끄윽! 내가 누군지 알아? 끄윽! 짜식, 갈참도 넘어 찬밥이야. 알아? 찬밥! 임마, 나 배루난이 어제부로 찬밥이 되었다구. 알았어? 에이, 세상이 왜 이렇게 흔들리는 거야? 끄으으윽!"

비틀거리던 배루난은 어지러운지 머리를 흔들며 벽을 짚었다. 신형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만취상태인 것이다.

"선무분타에 근무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소."
"뭐라고? 끄으윽! 이 자식이? 찬밥이 되었다고 내 말이 말 같이 안 들려? 임마, 누구냐고 물었잖아? 끄으윽! 어쭈! 그래도 말 안 해? 쨔식, 당장 관등성명을 대. 대체 어떤 놈이 네 상관인지 모르지만 작살나게 해주지. 끄으으윽!"

배루난은 이회옥이 이제 약관을 갓 넘긴 듯 보이자 뭘 모르는 신참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말을 함부로 하고 있었다.

한편, 이회옥은 속에서 치미는 것이 있었지만 억지로 이를 억누른 채 다시 나직한 음성을 토했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드러내려 하는지 이번엔 말을 놓았다.

"선무분타에 근무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끄윽! 이 자식이 감히 누구에게? 뭐? 물었다? 얌마, 뒈지고 싶어? 어라? 내 검이 어디 갔지? 엉? 이게 어디 간 거야?"

새까만 후배 주제에 말을 놓자 그냥 둘 수 없다는 듯 허리춤을 뒤지던 배루난은 손에 아무 것도 잡히지 않자 당황한 듯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무림천자성에서 지급한 무적검을 잃어버리면 엄벌에 처해짐은 물론 복무기간이 무려 오 년이나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지긋지긋했던 복무기간을 채우고 이제 간신히 찬밥이 되었는데 다시 오 년이 늘어난다 생각하니 술이 확 깨는 모양이었다.

잔뜩 혀가 말려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 힘들던 그의 음성도 갑작스럽게 또렷해졌다.

"이상하다? 어디에 뒀지? 어디에 뒀더라? 으으음!"

배루난은 지난 밤 무한 최고의 기원인 천향원(天香院)의 대문을 박차고 들어간 바 있다. 그곳은 천하에 이름난 갑부들이나 드나들 정도로 호사스런 곳이다. 언감생심 꿈도 못 꿔볼 그런 곳임에도 불구하고 짐짓 호기를 부린 것이다.

그곳에서 혼자 감당도 할 수 없으면서 기녀들도 다섯이나 불러 진탕 먹고 마셨다. 그리고는 인사불성이 되어 골아 떨어졌다.

천향원에서 무림천자성의 수뇌부도 아닌 일개 정의수호대원인 배루난을 손님으로 받은 이유는 그가 무적검을 잃어버리면 복무기간이 오 년이나 늘어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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