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어 얻을 수 있는 1석 10조의 효과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33>콩잎된장국 끓여먹고, 장아찌 담그고...

등록 2003.08.11 22:43수정 2003.08.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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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새총인가 뭔가하는 약이 있더군요. 그걸 발라 콩을 심으니 새가 총을 맞았다싶게 하나도 빼 먹지 않았습니다.
무슨 새총인가 뭔가하는 약이 있더군요. 그걸 발라 콩을 심으니 새가 총을 맞았다싶게 하나도 빼 먹지 않았습니다.김규환
올 한해는 친구네 나무 농장을 관리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 주말마다 일을 하니 몸도 좋아지고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가끔 답답할 때도 서울 집을 벗어나 인천공항 쪽으로 무작정 나섰다가 그곳을 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투리 땅에 고구마, 고추, 들깨 심어 줄기 따오고 풋고추, 깻잎 따먹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풀 매는 것도 수십 번이었습니다. 일감이 늘어나니 이게 취미가 아니라 반 농사꾼이 된 듯 힘겨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조경수(造景樹)를 올 봄에 옮겨 심어 조성한 터라 나무가 뿌리박음이 시원치 않을 때 관리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갖은 꾀를 내야했습니다. 우선 곳곳에 비닐을 씌우고 올라오는 족족 뽑았지요.

나무 사이에 콩을 심으니 콩이 풀을 억제하고 비료도 스스로 만듭니다. 특히 질소라지요.
나무 사이에 콩을 심으니 콩이 풀을 억제하고 비료도 스스로 만듭니다. 특히 질소라지요.김규환
올 한 해 700여평의 땅에 김을 매려면 보통이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친구도 농사를 잘 모르고 친구의 어머니도 연로하신 데다 서울에서 사시니 거들어 줄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콩을 심자는 것이었습니다. 콩을 조금 빠르게 심으면 여러 가지 잇점이 있습니다. 첫째, 콩잎이 그늘을 만들어 풀이 자라는 걸 억제합니다. 다음으로 산을 일궈 심은 첫 해이므로 거름기가 부족하기 쉬운데, 콩이 뿌리혹박테리아를 만들어 부족한 양분을 보충합니다.

최소 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으니 콩 한번 심는 걸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잘해서 콩 몇 말을 얻으면 메주 걱정 끝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친구 어머니와 친구를 설득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풀밭인지 콩밭인지 나무밭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뽑아야 하는 게 풀이니...
풀밭인지 콩밭인지 나무밭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뽑아야 하는 게 풀이니...김규환
더군다나 콩을 심으면 제초제 쓸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도 한 몫 했습니다. 날씨 푹푹 찌는 날, 그 냄새 풀풀 나는 농약 통을 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땅을 지키고 주변 환경을 살린다는 건 다음 문제였습니다. ‘일단 일을 편하게 하자. 내 몸을 지키자’는 생각이 우선이었으니까요. 그런 결정으로 얻은 수확이 몇 가지인지 모르겠네요.

1미터 가량의 공간 사이사이에 줄을 지어 콩을 심었지요. 그냥 심었다가는 새들의 밥이 되는 수고만 하다가 말 것이기 때문에 ‘새총’이라는 붉은 색의 약재를 묻혀 건조했다가 세 알씩 심었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쭉정이만 빼고 거의 대부분이 잘 나서 자랐습니다.


특별히 비료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공기중의 질소를 얼마나 끌어왔는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더군요. 나무도 수분과 거름기를 잃지 않고 거무잡잡해졌습니다. ‘그래, 정말 잘 했구나!’ 는 생각이 들더군요.

콩꽃이 핀지 꽤 됐습니다. 청순한 이 꽃에서 누런 메주콩이 열리겠지요.
콩꽃이 핀지 꽤 됐습니다. 청순한 이 꽃에서 누런 메주콩이 열리겠지요.김규환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보드라운 어린 잎을 따다가 된장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콩잎을 따먹는 야생동물이 마땅히 없어 손으로 직접 따줘야 하는 수고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콩 잎을 따주면 콩 알이 더 실하게 잘 여물잖아요.

아내는 콩잎 된장국을 잘 모르더군요. 그래서 알려줬습니다. ‘잎을 한 줌씩 모아 살살 비벼서 다소 진하게 국을 끓이면 된다’구요. 두세 번 끓이더니 이젠 도사가 된 듯 합니다.

콩잎된장국은 어렸을 적 많이 먹어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아버지는 꼴 망태에 가득 담아 와서 여름 이후 가을 겨울 채소가 부족한 시절에 먹도록 잘 말려 두셨습니다. 그 맛은 잊을 수 없습니다. 혀끝을 감싸며 감칠맛이 나고 씹히는 맛도 좋습니다. 질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부드러워 풋내도 나지 않아 적당합니다.

콩잎을 따면 이렇게 잠시 없어 보이다가도 금방 너울집니다. 웃자라면 감당하기 힘들지요.
콩잎을 따면 이렇게 잠시 없어 보이다가도 금방 너울집니다. 웃자라면 감당하기 힘들지요.김규환
지난주는 금요일에 가고 일요일에도 갔으니 일주일에 두 번이나 갔습니다. 이미 자주빛 작은 꽃이 피었고, 어떤 것은 콩깍지에 뜨물이 들어 콩 모양을 보이며 알차게 익어갑니다. 길고 진 장마에 너울져서 자라기도 합니다. 콩이 잘 자란 곳은 풀이 맥을 못 춥니다. 일감은 확실히 덜었지요.

콩이 넘어지면 결실이 좋지 않습니다. 끝까지 잘 돌봐줘야 합니다. 갈 때마다 콩잎을 따오는데 다음에 가보면 가지와 새순이 나와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오래된 콩잎은 나를 즐겁게 합니다.

콩잎국 드셔보셨습니까? 꼭 한 번 먹어보세요.
콩잎국 드셔보셨습니까? 꼭 한 번 먹어보세요.김규환
된장에 가지런히 포개 넣어 뒀다 반찬 없을 때나 입맛 없을 때 꺼내 먹으면 대단한 밥반찬이 됩니다. 콩잎 장아찌는 들깻잎, 장아찌의 흐물흐물한 느낌과는 달리 쫄깃하고 감칠맛 나며 향도 그리 강하지 않아 누구든지 먹기에 좋습니다.

대구경북지역 전역과 전라남북도 산간지역에서 즐겨먹던 음식이었습니다. 처가에 가서 작년에 다시 맛 본 뒤로 다소 빠르다는 느낌이 들지만 직접하기로 했습니다. 한 장 한 장 포개가며 어른들의 자식 사랑과 땅의 고마움을 느낍니다.

한 부분도 버리지 않고 요긴하게 활용했던 어른들의 지혜에 새삼 놀랍니다. 하여간에 올 한 해는 콩과 함께 지낸 소중한 해입니다.

콩을 씻어서 물기를 빼고 있습니다. 조금있다 된장에 넣을 차례입니다. 농약 한 번 안쳤으니 먹어도 탈 없겠지요?
콩을 씻어서 물기를 빼고 있습니다. 조금있다 된장에 넣을 차례입니다. 농약 한 번 안쳤으니 먹어도 탈 없겠지요?김규환
콩잎을 한 무더기 깔고 위에 된장 올리고 이런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도 먹을 수 있을 겁니다. 제일 맛 있는 것은 이달 말쯤 콩잎이 노랗게 샜을 때 따서 넣는 것입니다. 들깻잎도 마찬가집니다.
콩잎을 한 무더기 깔고 위에 된장 올리고 이런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도 먹을 수 있을 겁니다. 제일 맛 있는 것은 이달 말쯤 콩잎이 노랗게 샜을 때 따서 넣는 것입니다. 들깻잎도 마찬가집니다.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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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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