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숫가루를 타서 먹었습니다. 영양도 많지만 살찔 염려도 없고 여러 곡식을 고루 먹으니 몸에도 좋습니다. 약간 푸르스름한 것은 검정콩이 조금 많이 들어 간 것과 쑥, 익모초를 넣었기 때문입니다.김규환
해마다 보리타작이 끝나면 어머니는 바쁜 농사철인데도 짬을 내셨다. 보리 닷 되에 찹쌀, 멥쌀, 검정콩 각각 두 되씩 준비하신다. 영양 많은 율무 한 되, 수수, 조 반 되와 검정깨 세 홉도 어디다 *꼼쳐(‘꼼치다’, ‘꿍치다’는 ‘몰래 숨겨 놓다’의 전라도 사투리) 놓았는지 꺼내오신다.
갖가지 재료를 조리로 잘 일어 말리셨다. 나무로 불을 *‘싸게’(불기운이 세다는 뜻) 때서 볶으면 탈 염려가 있으므로 마른 짚 한 다발 가져다 불을 슬슬 때며 볶는다. 수수 빗자루 대용으로 짚 한 줌을 휘휘 젓다가 긴 주걱으로 밀어주며 볶으면 곡식마다 다른 고소한 향기가 부엌에 가득 찬다. 동네 어귀에 까지 냄새가 풍기니 놀다말고 집으로 돌아왔다. 불 때는 보조자는 나였다.
“엄니, 볶은 거 한 줌 먹어도 될랑가?”
“예 있다. 시방 묵고 살자고 헌거신디 한 줌이 문제냐?”
“참말로 꼬습네요. 엄니도 한 번 드셔보싯쇼.”
“엄마는 폴새(이미, 벌써) 묵어 봤단다.”
“이걸 볶으면 정때(점심때) 지나면 미숫가리 먹을 수 있겄제라?”
“하믄~”
“오늘 저녁엔 밥 안 묵고 미숫가루 실컷 먹을라요.”
“막둥이 아들이 먹는다는데 누가 머라 한다냐?”
“엄니 혼차(혼자) 가시면 무거울 것인디 따라 갈끄라우?”
“아녀, 아들은 아부지 약주나 한 되 받아다 놓아라. 풋나무 해오시면 출출할 것잉께.”
“알았어라우~”
덤으로 익모초를 구하지 못했을 때는 쑥 서너 줌 따 말려서 머리에 이고 방앗간으로 가신다. 여름철 가족들의 입맛과 영양을 생각하여 방앗간에 다녀오시는 것이다. 그 무렵엔 설과 추석 대목, 정월 대보름 다음으로 방앗간이 바쁘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거의 때를 같이 하여 *‘미싯가루’(미숫가루의 사투리) 만들러 가시기 때문이다.
뛰듯 부산히(바삐 서둘러) 집을 나서 학교 마을 새터로 차를 타러 가시는 뒷모습을 동구 밖까지 나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버스 올 때를 맞춰 신작로로 혹여 어머니가 오실까 나와본 것이 서너 차례다.
어머니를 기다린 지 꽤 오래다. 지친 나머지 감나무에 붙은 매미소리를 들으며 *말래(마루)에 누워 부채질을 하며 낮잠 한숨 자니 파리 떼가 성가시게 한다. 흥건해지도록 땀을 흘리며 잔 통에 냉수 한 그릇으로 잠을 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