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잡는 중에 볼 수 있는 소금쟁이김규환
미꾸라지는 흐레(뻘과 비슷한 진흙이 으깨진 것)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있다. 논과 개울, 연못의 진흙 속 유기물, 플랑크톤을 먹고 자란다. 미꾸라지 잡으러 가려면 해질 녘이 좋다. 물 속 산소가 부족한 오후 느즈막에 가서 석양 짙게 물든 걸 보고 집으로 오면 좋다. 그 때 가면 수온이 약간 올라 위로 나오게 끔 되어 있다. 챙길 건 별로 없다.
옷을 간단히 입고 툼벙(부사이나 전라도에서는 명사로 웅덩이를 뜻한다)이나 논으로 가면 된다. 먼저 물풀을 걷고 물꼬를 막고 한없이 품어 나간다. 허리가 아프도록 마구 품다보면 바닥이 드러난다.
이제는 신발을 벗어 던질 차례다. 고무장화 없이도 맨발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발을 담가 움퍽한 곳으로 가야 미꾸라지든 뭐든 잡을 수 있다. 두 눈 딱 감고 뭐가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땅으로 발을 폭 집어넣어 담가야 한다. 무릎 부근까지 질컥거리는 진흙이 차 오른다. 끈적끈적한 고인 물 비릿한 냄새가 코를 확 찌른다.
소죽 퍼주던 ‘바케스(양동이)’를 가져가 푹푹 빠지는 수렁논으로 들어가면 수십 종의 물벌레, 고기와 마주친다. 거머리, 피라미 몇 마리에 물방개 주위를 맴돈다. 소금쟁이 열댓 마리 떠돌고 기름장어 물뱀처럼 활개를 치며 물을 흐린다.
흘러내리는 옷을 한 춤 걷어올리고 잡 고기 몇 마리 훑어 담고 가장자리에서부터 야금야금 흙을 뒤집는다. 뽀글뽀글 물거품이 오르는 곳을 헤집으니 미꾸라지가 휙 뒤집어지면서 잠시 맥을 못 춘다. 곧 자세를 가다듬고 진흙 위를 쪼르르 기어간다. 제 정신을 차리기 전에 잡는 게 방법이다.
이내 빠져나가고 마는 미끄러운 것이라 두 손을 살며시 갖다 댔다. 세게 잡으면 미끄러지니 살짝 감싸기만 해야 한다. 꼼지락 꼼지락 내 작은 손 사이를 비집고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며 꿈틀거린다.
“형, 잡았어. 바케스…”
“얼른 바가지에 담아부러.”
“어어어…”
간신히 한 마리를 바가지에 담았다.
뒤집고 헤집기를 반복한다. 한 부분도 빠트리지 않고 이 잡듯 뒤진다. 수렁이라 물이 바닥에 고이자 고기를 '바케스'에 담고 다시 물을 퍼낸다. 쌀쌀한 바람이 물 밖 기온을 차갑게 하니 노출된 부위는 닭살 마저 돋는다.
“형, 많이 잡았어? 끓여 먹을 양이 될랑가?”
“응, 쬐까만 더 잡으먼…”
지친 나머지 형이 잡는 걸 구경하는 게 낫겠다 싶어 한 번 물어 본 것뿐이었다. 아직 미끈한 것에 적응이 덜 된 나는 교묘히 빠져나가는 미꾸라지 잡기가 힘겹고 더디다. 벌써 형은 두 되 쯤 되는 바가지에 절반 가량을 채웠다. 풀을 한 줌 뜯어 튀어 나가지 못하게 해놓고 있다.
형이 잡은 것과 합쳐 보니 국그릇으로 두 그릇쯤 돼 보인다.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꿈틀대는 미꾸라지가 물을 조금만 채워서 인지 거품이 일기 시작한다. 물을 조금 더 부어줬다. 그래야 집에까지 가져가서 해감을 하면 된다.
어머니는 우리가 미꾸라지 잡으러 간 동안 밭에서 씰가리(시레기의 전라도 사투리)를 몽창 삶아서 물에 담가 놓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추어탕은 미꾸라지가 자라는 환경이 좋아야 하지만 씰가리가 좋아야 맛을 낸다.
본디 추어탕(鰍魚湯)은 새끼손가락만큼 작은 민물고기인 미꾸라지로 추어(? 추워)질 때 끓여 먹는다. 미꾸라지를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 정도면 열 댓 사람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나는 동네 어른들을 모시러 옆집을 돌아야 한다.
미꾸라지 잡는 아련한 추억을 가진 농촌출신 사람들은 이 때부터 나락 익을 때까지 바쁘다. 미리 몸을 보신하고 가을걷이를 준비하는 것이다. 나는 그 날 미꾸라지가 아닌 추억을 듬뿍 잡았다. 온 몸이 진흙 범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