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가마솥 추어탕이 맛있는 계절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34> 어머니가 끓여주신 그 맛

등록 2003.08.22 09:31수정 2003.08.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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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이 가마솥에서 한참 끓고 있다. 한 번 끓이려면 최소 한나절을 잡아 먹는다. 여유를 한 번 가져보자.
추어탕이 가마솥에서 한참 끓고 있다. 한 번 끓이려면 최소 한나절을 잡아 먹는다. 여유를 한 번 가져보자.김규환
추어탕이 가을을 부른다


추어탕이 맛있는 계절이다. 추어탕 철이다. 육(肉) 고기 몇 근에 전혀 뒤지지 않는 가을철 최고의 보양식품 추어탕. 말복이 지나면 추어탕이 최고다. 이때쯤 미꾸라지 살도 피둥피둥 쪘겠다.

한식이라면 뭐든 잘 먹고 몇 가지는 곧잘 요리도 하는 나는 웬만하면 밖에서 추어탕을 사먹지 않는다. 식습관이 그렇게 된 건 내가 살아온 과정이 작용했으리라. 광주광역시 상수원인 동복댐 최(最) 상류였으니 틈만 나면 물을 품어 미꾸라지 잡을 곳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건 그 지역 출신인 나만의 특혜인지도 모른다.

밖에서 먹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추어탕 맛을 느낄 수 없다. 한 번 입에 댔다 하면 세 양푼은 먹어야 하니 내 왕성한 식욕을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또 한 가지가 있다. 이상야릇한 냄새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염된 물에서 나는 석유 냄새가 한 숟가락 뜨는 순간 혀와 코를 마비시켜 기분까지 잡치게 하여 다시는 먹을 맘이 들지 않게 까지 한다.

미꾸라지 해감을 한다. 굵은 소금 두 줌 팍 뿌려주면 후두둑 파닥파닥 젖먹던 힘까지 내서 발버둥을 치며 밖으로 튄다. 얼른 뚜겅을 덮지 않으면 다시 씻어야 하니 주의를 요한다.
미꾸라지 해감을 한다. 굵은 소금 두 줌 팍 뿌려주면 후두둑 파닥파닥 젖먹던 힘까지 내서 발버둥을 치며 밖으로 튄다. 얼른 뚜겅을 덮지 않으면 다시 씻어야 하니 주의를 요한다.김규환
비단 나뿐이 아니다. 형도 마찬가지다. 우린 입맛은 확실히 닮았다. 피자 한 번 먹어보지 못한 집안의 내력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 조금은 피곤하겠지만 대안은 있다. 가족끼리 모였다 하면 산골짜기로 올라가 미꾸라지를 잡아다가 추어탕을 끓인다.

누구 누구는 고기 잡아다 줬다고 두 다리 쭉 뻗고 기다리지 않는다. 결혼 후 아내와 형수들은 모른다고 가만 있질 않았다. 잡는 걸로, 먹는 걸로 끝내지 않고 전 과정을 같이 해나간다. 함께 준비하고 나눠서 일을 하니 힘겨운 줄 모른다. 얼마나 이 일을 오래 했는가, 연변에서 물 건너 시집 온 셋째 형수 솜씨도 이제는 고수에 이르렀다.


고기잡고, 푸성귀 준비하고, 솥 씻고, 불 때고, 양념을 마련하여 마저 끓여서 가족의 땀을 훔쳐보며 먹는 추어탕 맛. 조르지 않아도 으레 만나면 미꾸라지 잡아 끓이는 순박한 고향에 살았던 우리는 행복하다.

한가위도 얼마 남지 않고 체력도 고갈될 만큼 약해졌으니 손수 한번 끓여 먹어보자. 추어탕 맛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추어탕 끓이기 위한 준비>

호박잎 세장으로 같이 문질러 씻으면 밀가루도 필요없다. 미끈한 점액질 완전 제거.
호박잎 세장으로 같이 문질러 씻으면 밀가루도 필요없다. 미끈한 점액질 완전 제거.김규환
1. 해감과 미꾸라지 손질

미꾸라지 등 장어과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와 달리 해감을 잘 해야 한다. 흙 속에서 자라므로 흙과 이물질을 제거해줘야 하는데 방법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일단 하루쯤 찬물에 담가 빼내고 마지막에 굵은 소금 두어 줌을 치고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게 뚜껑을 닫는다.

민물고기는 짠 소금을 먹으면 내장에 있는 잡것을 다 게워낸다. 후두둑 튀는 것도 잠시. 2분여 지나면 미꾸라지가 하얀 거품을 무수히 뱉어내며 초죽음 상태에 이른다. 워낙 미끄러운 고기이므로 호박잎 세 장을 미꾸라지에 문지르며 씻으면 미끈한 점액질도 제거되고 비린내도 가신다.

미꾸라지에  된장을 풀어 푹 삶아준다.
미꾸라지에 된장을 풀어 푹 삶아준다.김규환
2. 푸성귀 등 재료 마련

푸성귀 등 재료를 마련하는 것도 일이다. 가을 무청이 나오기 전까지는 배추 시래기를 쓰는 게 좋은데 적당히 센 것을 미리 구해뒀다가 끓는 물에 오래 삶는다. 삶아지면 건져서 찬물에 담가 풋내를 제거한다. 서너 시간은 기다려야 제 맛을 낸다.

마늘, 생강, 파 등 양념과 마른 홍고추를 확독이나 믹서에 갈고 들깨를 넉넉하게 갈아 기본 육수로 사용한다.

마른 고추 간 물을 준비했다.
마른 고추 간 물을 준비했다.김규환
3. 가마솥 준비

어떤 솥이든 가마솥 맛을 따라올 수 있을까? 잘 관리되지 않은 솥은 녹이 슬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일이 아니다. 어느 한 사람이 수고를 하면 더 맛있는 고향의 맛을 볼 수 있으니 이 정도는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

씻기 전에 물을 부어 놓고 불기를 기다린다. 철 수세미나 지푸라기를 오므려 득득 문질러 녹을 씻는다. 이후 적당히 씻겨지면 맹물을 붓고 아무 푸성귀나 집어넣어 군불을 한 번 땐 후 팔팔 끊으면 퍼낸다. 다음으로 쌀뜨물을 부어 한 번 더 끓여주면 쇠의 녹 냄새는 말끔히 사라진다. 이런 수고를 덜려면 평소에 돼지기름을 안팎으로 칠해주면 된다.

<가마솥에 추어탕 끓이기>

시레기를 듬뿍 넣어 거섶이 부족하지 않게 한다.
시레기를 듬뿍 넣어 거섶이 부족하지 않게 한다.김규환
1. 가을을 재촉하는 따가운 날, 가마솥 걸어 추어탕 끓이는 재미

솥이 준비가 되면 주재료인 미꾸라지에 된장을 푸짐하게 풀어 삶는다. 이때 두부를 넣고 약하게 서서히 끓이면 물이 뜨거워짐에 따라 미꾸라지 몇 마리가 두부 속으로 파고들어간다.

적당히 삶아지면 미리 꺼내 두부와 미꾸라지 몇 마리를 숙회(熟鱠)로 잘라먹으면 별미 중 별미다. 미꾸라지가 두부와 섞여 별미를 선사한다. 최고의 요리다. 여기서 1차 복분자 술(곰딸기로 담근 술)을 한잔하면 어떨까?

푹 삶아 살이 야들야들 부드러워지고 뼈마저 으깨질 정도가 되면 본격적으로 양념을 하고 끓이면 된다. 재료를 솥 근처에 준비해뒀다가 고추 간 물, 들깨 물을 붓고 시래기와 호박 대를 넣는다. 시래기는 숨이 한 번 더 죽으면 양이 줄어들게 되므로 아낄 필요 없이 듬뿍 넣는다.

이어 마늘과 생강 다진 걸 넣고 삶는다. 처음에는 센 불로 끓이다가 푸성귀가 얼마쯤 익었다 싶으면 불을 약하게 하여 지속적으로 끓이면 좋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지그시 끓이는 그 정성과 인내가 여타의 재료를 넣지 않아도 걸쭉한 맛을 낸다.

들깨를 갈아 체에 바쳐 껍질은 걸러내니 쌀뜨물에 비견할 수 없다. 추어탕 국물맛이 좋은 것은 이 들깨 물 때문이다.
들깨를 갈아 체에 바쳐 껍질은 걸러내니 쌀뜨물에 비견할 수 없다. 추어탕 국물맛이 좋은 것은 이 들깨 물 때문이다.김규환
전라도 방식인 남원 식(式)은 대개 미꾸라지가 삶아지면 꺼내서 뼈째 갈아서 넣었다. 원주 식(式)은 갈지 않고 통째 미꾸라지를 씹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요즘은 지역을 떠나 통추어탕을 맛 볼 수 있다. 통추어탕이든 갈아만든 추어탕이든 두 가지를 다 맛볼 수 있으니 기호에 따라 선택해 먹으면 된다.

시장에서 사다가 끓이면 10인 이내라면 미꾸라지는 식구 수에 따라 1kg 정도가 적당하다. 자연산을 직접 잡으면 중국산(中國産) 양식 미꾸라지보다 육질이 야들야들하고 푸석푸석하지 않아 씹는 맛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추억 반, 맛 절반 집어넣어 보면 어떨까?

사실 이렇게 끓이면 무엇인들 맛이 없을까. 텁텁한 고춧가루 대신 고추를 갈아넣으니 매콤하면서도 국물 맛 시원하다. 밀가루, 쌀가루 대신 들깨 국물 넣었으니 진하기 이를 데 없다. 생강과 마늘 듬뿍 곁들였으니 비린내 싹 가셨다. 여기에 초피 껍질 넣으니 혀마저 얼얼하다. 시래기를 듬뿍 넣으니 소화는 걱정할 일 아니다. 매운 풋고추로 얼큰한 맛 추가하니 이 맛 잊을 수 없다.

미꾸라지가 익으면 몇 마리 꺼내 한잔 하는 것도 지치지 않는 한가지 방법이다.
미꾸라지가 익으면 몇 마리 꺼내 한잔 하는 것도 지치지 않는 한가지 방법이다.김규환
2. 초피 넣느냐 안넣느냐에 따라 맛은 천양지차(天壤之差)

추어탕 끓이는 비결이 있다. 비결은 초피라는 나무에 있다. 아직은 때가 일러 씨가 익지 않았지만 산초와 비슷하다. 풋내와 노린내가 있는 산초와 달리 초피는 톡 쏘는 맛이 후추 못지 않다.

후추가루를 쓰지 말도록 권하고 싶다. 후추는 추어탕의 본래 맛까지 앗아가는 못된 성질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대신 초피 열매의 껍질을 사용한다. 이마저 구하기 힘들면 잎사귀를 한 줌 따서 넣으면 된다. 씨는 까만데 깨지지도 않고 빻기도 힘들다. 기름 짜는 데나 쓰니 버리는 게 낫다.

잘 익은 껍질 10개 정도면 15인분 정도를 입안이 아르르하면서도 비린내도 전혀 나지 않고 깔끔하기 이를 데 없다. 알싸한 맛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이 한 가지를 넣느냐 마느냐에 따라 맛의 천국으로 가느냐, 지옥에서 허우적 대느냐가 결정된다. 깔끔하고 확실한 맛으로의 초대.

그렇다면 초피는 무엇인가? 가시 달린 사람 키 정도의 나무다. 경상도에서는 '좀피', 전라도에서는 '잼피', 다른 곳에서는 '조피'라 하기도 한다. 독특한 맛으로 추어탕을 끓일 때 넣으면 비린내를 제거해주니 추어탕과 염소탕 등 탕 종류에 두루 쓰지만 추어탕에는 빠트려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산에 나가봐야 산초와 구분하기 힘듦으로 재래시장 골목 리어카나 후추 파는 곳에 가면 빻아둔 초피가루를 구할 수 있다.

지금 쯤은 알맹이가 잘 익을 때다. 지난 휴가 때는 껍질이 잘 까지지 않았다. 알맹이를 넣는게 아니라 열매 껍질을 넣는다는 걸 명심하자. 여기에 있는 잎사귀를 넣어도 된다.
지금 쯤은 알맹이가 잘 익을 때다. 지난 휴가 때는 껍질이 잘 까지지 않았다. 알맹이를 넣는게 아니라 열매 껍질을 넣는다는 걸 명심하자. 여기에 있는 잎사귀를 넣어도 된다.김규환

부글부글 잘도 끓는다. 비오는 날에 벌초하러 갔다가 추어탕만 끓여 먹고 왔다. 혼자서 벌초를 다해야 하는 형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막판까지 오래 잔불로 끓이면 최고의 맛이 된다. 솥 씻고 불 때는 건 내가 서둘러 했으니 몇 그릇 먹어도 되는 것 아닌가? 오랜만에 친구도 불러 같이 먹었다. 최후까지 소금을 쓰지 않는 게 좋다. 맛뵈기로 조금만 넣자.
부글부글 잘도 끓는다. 비오는 날에 벌초하러 갔다가 추어탕만 끓여 먹고 왔다. 혼자서 벌초를 다해야 하는 형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막판까지 오래 잔불로 끓이면 최고의 맛이 된다. 솥 씻고 불 때는 건 내가 서둘러 했으니 몇 그릇 먹어도 되는 것 아닌가? 오랜만에 친구도 불러 같이 먹었다. 최후까지 소금을 쓰지 않는 게 좋다. 맛뵈기로 조금만 넣자.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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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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