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뙤약볕에 말리는 태양초오창석
한여름 들일 갔다 돌아오신 어머니가 한 웅쿰 따 온 풋고추를 숟가락 채 푹 떠온 된장에 찍어, 한 입 베어 먹는 그 상큼하고 알싸한 맛은 볼품 사나운 시커먼 꽁보리밥을 천하에 없는 꿀맛으로 만들었다.
말린 고추, 젓갈, 마늘 따위를 확독에 대충 갈아 만든 양념으로 묻혀낸 열무김치나 배추 겉절이의 얼큰하고 시원한 맛 또한 비길 데 없는 별미였다. 추수가 시작되는 시기엔 따뜻하고도 날카로운 가을 햇볕 아래 마당과 길섶에는 고추 말리기가 한창이었다. 농사일을 거들 수 없어 집에 남은 할머니는 닭들이 먹이를 찾는답시고 멍석에 널어진 고추를 온통 헤집어 대고, 똥까지 싸대는 소갈머리 없는 행동을 제지하느라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17세기 이전에는 후추나 산초가 매운 맛을 내는 양념이었으나 워낙 비싸고 귀한 것이 되어 대중화되지 못하였고 고추가 들어와 일상화되면서 매운 맛을 내는 양념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나 ‘고초 당초 맵다지만 시집살이 더 맵더라’라는 경상도 지방의 민요에서처럼 고단한 삶이거나 매운 자극에 대한 비유는 고추의 차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