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과 칩 속의 나날들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107> 공장일기(7)

등록 2003.09.04 17:29수정 2003.09.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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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80년 오월, 밀링선반부  전원은 장복산에 야유회를 갔었다

1980년 오월, 밀링선반부 전원은 장복산에 야유회를 갔었다 ⓒ 이종찬


"너 무슨 과 나왔어?"


"화학과 나왔습니다."

"화학과? 내 참 기가 막혀서. 그래. 자격증은 있어?"

"네. 화학분석 2급 기능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런! 이 친구 이거, 이래 가지고 우째 밀링하고 선반을 만지겠나. 생산부장님도 차암."

내가 세 번째 소속된 부서는 밀링과 선반을 동시에 다루는 부서였다. 밀링기는 쉴새없이 쏟아지는 기름 속에 톱날 같이 생긴 동그란 카트기가 날쌔게 돌아가면서 제품을 자르는 그런 기계였다. 또한 그런 까닭에 밀링기 주변은 온통 기름범벅이었다. 밀링기 앞에서 작업을 하는 노동자의 작업복 역시 기름과 쇳가루에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밀링기에서 잘려진 제품은 드리클린으로 깨끗하게 세척을 끝낸 뒤, 탁상선반으로 옮겨졌다. 탁상선반은 밀링기에서 잘라낸 제품을 바이트(금속제품을 가공하는 날카로운 도구)로 세밀하게 가공하는 기계였다. 또한 탁상선반 옆에는 볼반기(제품에 구멍을 뚫는 기계)가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밀링기와 탁상선반은 주로 남성 노동자들이 맡아 작업을 했고, 볼반기는 주로 여성 노동자들이 맡아 작업을 했다. 하지만 밀링기와 탁상선반, 볼반기에서도 프레스실 이상으로 안전사고가 자주 났었다. 그중 밀링기는 무서운 흉기였다. 그래서 작업반장은 아침마다 밀링기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에게 안전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밀링기에서 장갑 끼고 작업하다가 내한테 걸리는 넘은 그 순간부터 째까닥(해고) 하는 줄 알아라."

"장갑도 안 끼고 하루종일 제품을 끼우다가는 열 손가락이 오데 남아 나겠능교?"

"손가락에 흠집이 쪼매 나는 기 낫나? 아예 팔뚝이 잘리는 기 낫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밀링기를 맡은 노동자들은 하루종일 팔뚝까지 기름에 담그고 작업을 해야만 했다. 또한 밀링기에서 하루종일 작업을 하다 보면 작업복이 기름에 절어 손으로 짜면 기름이 마치 땀방울처럼 뚝뚝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밀링기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은 늘 피부병을 달고 살았다.

a 야유회를 간 현장 노동자들은 바이트처럼 악을 쓰며 노래를 불렀다. 오른쪽 갈색 점퍼를 입고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이 송태신이다

야유회를 간 현장 노동자들은 바이트처럼 악을 쓰며 노래를 불렀다. 오른쪽 갈색 점퍼를 입고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이 송태신이다 ⓒ 이종찬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시를 써야 하는 기 아인교?"

"내게 주어진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꼭 그런 현실만 주제로 시를 써야 한다는 법은 없지."

나는 지금도 기름과 칩에 범벅이 된 채 밀링기를 돌리던 '송태신'이란 친구를 잊을 수 없다. 당시 송태신이란 친구는 내가 문학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자기도 문학을 공부하겠다며, 내게 <남천문학동인회>에 가입시켜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기름에 절은 종이에 쓴 시를 들고 와서 내게 시를 좀 봐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송태신이란 친구에게 큰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또한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추구하는 문학은 참여 반, 순수 반이었다. 하지만 참여보다는 순수시 쪽으로 훨씬 더 기울어져 있을 때였다.

그렇게 <남천문학동인회>에 가입한 송태신은 일주일에 한번씩 우리 동인들이 모여 시를 토론할 때마다 삶의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우리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노동현실을 주제로 시를 창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쳤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것만이 문학의 전부는 아니다, 라며 그 친구의 주장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나는 지금도 그때가 떠오르면 송태신이란 이름을 가진 그 친구가 입고 있었던, 기름방울 뚝뚝 떨어지던 그 진청색 작업복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미안하다, 는 말이 한숨처럼 비집고 나온다.

그래. 송태신이란 친구는 그때 이미 자신이 처한 현실을 뼈속 깊이 깨닫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참혹한 노동현실에 대한 극복을 글쓰기에서 찾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만 하더라도 노조란 단어는 꿈조차 꾸기가 어려웠던 때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현장노동자들의 의식도 우선 의식주에 목을 매달고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태신아! 너가 만약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내게 메일 한번 보내주라."

송태신이 있었던 그 부서로 옮긴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밀링과 탁상선반을 오가며 고된 작업을 해야 했다. 특히 탁상선반에서는 밀링에서 절단한 제품을 가공하다 보니, 칩(쇳가루)이 엄청나게 많이 튀었다. 어떤 노동자는 벌겋게 달아오른 칩이 눈동자에 튀어 실명을 하는 바람에 공장을 그만 두는 일까지 생기기도 했다.

그때, 탁상선반에서 작업하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팔뚝에 토시를 끼고 제품을 깎았다. 하지만 벌겋게 달아오른 칩은 토시와 작업복까지 태우고 들어가 팔뚝까지 태우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탁상선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팔뚝은 늘 곰보 같이 흉터가 져 있었다.

어두움 아프도록
어두움 가슴 아파
먼지 낀 창가에 검은 눈물 줄줄 흘려도
이 땅의 새벽은 오지 않을 것 같은
참으로 캄캄한 나라에 사는 공돌이 공순이

스윗치만 넣으면 잘도 움직이는
일본산 산업 로봇 같은 우리도
제 살을 찌르는 바이트 같은 분노를
모르는 것 아니다
따순 눈물과 불타는 사랑도 안다
그러나 산다는 것이 별것이더냐
거꾸로 산다는 것이 별것이더냐

팔목까지 기름에 열두 시간 이상 담그며
벌써 칠 년째 맞는 봄날 아침
공단로에 떼지어 피어난
개나리 꽃 속에 잠겨
실컷 취하여 비틀거리고 싶지만
돈이 어딨노

하지만
이 개나리가 다 지고
우리들 그리움 같은 시퍼런 싹이 트면
가슴에 묻어둔 분노들 모두 모아
노동의 칼춤을 추리라

최루탄 가린 대학정문을 울면서 지나
연탄불 꺼진 달셋방에서
웃으며 번개탄을 태운다
밤샘한 육신에 녹아드는 피로를
화알활 태운다
저 착취의 검은 음모가
하얗게 탈색될 때까지

(이소리 '봄날 아침' 모두)


내가 세 번째로 옮긴 그 부서에는 나이 든 노동자들이 많았다. 또한 나이 든 노동자들은 이 공장이 창원공단에 입주하기 전, 그러니까 이 회사의 이리공장에서부터 근무했던 노동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근무경력 또한 대부분 7~8년이 넘었다. 하지만 임금은 나와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기름과 칩 속에 묻혀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그해 오월, 그러니까 내가 속했던 부서가 모처럼 봄날 야유회를 마치고 돌아온 그 다음 주부터 공장 안에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내가 근무하는 부서에는 광주가 고향인 노동자들도 제법 많았다. 그런데 그 노동자들이 점심시간만 되면 저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상한 이야기를 낮게 주고 받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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