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슬을 닮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아침이슬과 함께 하는 자연들

등록 2003.09.05 10:46수정 2003.09.0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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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실잠자리

실잠자리 ⓒ 김민수

새벽에 일어나 어둑한 숲길을 걷노라면 유난히 이슬이 많이 내린 날이 있습니다. 아직 동터오기 직전, 바짓가랑이를 적시는 이슬방울의 차가움이 발끝에서부터 온 몸으로 밀려옵니다. 이렇게 풀잎마다 맺힌 이슬이 많은 날에 이슬방울 속에 해를 담아보는 재미도 좋지만 영롱한 이슬방울마다 담고 있는 세계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자연이 주는 소리를 듣다보면 마음 속에 들어 있던 나쁜 찌꺼기들이 씻겨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풀잎마다 무성하게 맺혀있던 이슬도 아침햇살이 비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취를 감춰 버립니다. 그래서 아침이슬을 보면서 오래 명상하려면 산책길도 서둘러야 합니다.

a 오이풀

오이풀 ⓒ 김민수


이슬은 깨끗합니다. 순수합니다.
작은 이슬방울 하나마다에 하늘도 담고 있고, 꽃도 담고 있고, 나무도 담고 있습니다. 원의 형상은 모난 법이 없습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습니다. 무한입니다. 모나지 않으니 온 세상을 담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으니 영원이겠지요. 무한이겠지요.

새벽이슬의 삶의 여정은 짧습니다.
그러나 온 자연을 싱그럽게 하고, 그들에게 생명의 근원을 제공하고 다시금 자신들이 왔던 하늘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땅으로 스며들어 낮은 곳으로 향하다 자신들의 근원지인 바다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삶의 여정까지 생각하면 무한합니다.

이슬은 각자가 질 수 있는 무게만큼만 짐을 지워줍니다.
그 이상이 되면 땅으로 떨어져 이슬의 무게를 줄여주고, 작은 이슬을 감당할 만큼이면 작은 것을 큰 이슬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이면 큰 이슬을 맺히게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이슬이라도 물방울 하나의 크기를 넘어가지 않습니다.

a 비짜루국화

비짜루국화 ⓒ 김민수


작은 물방울이 모이고 모여 이슬방울이 완성되지만 늘 하나이기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하나가 될 듯 될 듯 하면서 서로의 모습을 지켜줌으로 영롱한 이슬방울들의 행렬을 지켜가고 있으니 그것 또한 질서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각자의 모습을 아름답게 피워내며 서로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일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슬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소외시키는 법이 없이 하늘을 향해 열려져 있기만 하면 어느 곳에나 촉촉하게 내려줍니다. 소낙비처럼 마구 내려서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그 본래의 아름다움에 영롱한 보석을 달아주는 듯하여 본래의 아름다움을 더 아름답게 함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줄 아는 것이 이슬입니다.


하얀 꽃잎 위에서는 하얀 색으로, 푸른 이파리에서는 푸른색으로, 붉게 물든 단풍잎에는 붉은 색으로 다가갑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지키면서도 말입니다.

a 누리장나무

누리장나무 ⓒ 김민수


이슬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싱그러운 아침을 맞이하질 못했을 것입니다. 아침 햇살이 비치면 이내 사라질 것임에도 항상 그렇게 그들을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삶이 짧은 것을 한탄하지 않고 말입니다.

자신이 머물렀던 그 자리에 연연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하늘로 넓은 바다로 긴 여정의 여행을 할 수 있는 이슬, 어제 머물렀던 자리가 아니라 늘 새로운 곳에 새로운 모습으로 피어나는 꽃과도 같은 이슬의 삶이 멋져 보입니다.

a 애기달맞이

애기달맞이 ⓒ 김민수


이제 막 아침햇살이 비춰오기 시작합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별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애기달맞이꽃이 점점 작아져만 가는 이슬방울을 붙잡으려고 눈물을 흘리는 것 같습니다.

'이제 막 정들려고 했는데 어디로 가니? 그 가는 곳을 알려 줄 수 있겠니?'
'나도 몰라.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지. 너도 기다려 줄 수 있겠니? 언젠가 다시 너를 찾아올게.'

a 금불초

금불초 ⓒ 김민수


지난 밤 바람이 잔잔해서 여느 때보다도 이슬이 풍성하던 산책길을 뒤로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하루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해 봅니다.

'이슬처럼 살자.
이슬처럼 순수하고, 이슬처럼 다른 이들의 아름다움을 빛나게 하고, 이슬처럼 주변의 것들을 품고 살아가자. 비록 아침이슬처럼 짧은 삶을 살더라도 그렇게 살자.'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어느 것 하나라도 우리들에게 무익한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주는 소리를 마음 깊이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면 우리의 삶의 깊이도, 내면의 깊이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도 내일은 더 깊어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깊어가다 보면 어느 날 우리의 삶을 마감해야 하는 그 순간도 아름답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침이슬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입에서는 학창시절 친구들과 마음을 모아 부르던 '아침이슬'이라는 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띄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 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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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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