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22

빙화 구연혜 (5)

등록 2003.09.05 12:50수정 2003.09.0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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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뭇거리던 부당주는 뇌군명의 시신을 치우고는 무천의방으로 향하였다. 성능 좋은 금창약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가 떠난 자리에선 지린내가 풍기고 있었다. 겁에 질려 소변을 지렸던 것이다.

부당주가 떠난 직후 누군가가 뇌옥 앞에 나타났다. 흑의 장포를 걸친 데다 복면까지 하여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은 이회옥에게 다가가 그의 입에 단환 하나를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그의 인후를 쳐 단환이 목구멍 속으로 넘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타날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으으으으! 으으으으!"

혼절해 있던 이회옥의 입에 신음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은 단환을 복용하고 대략 일 각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거의 비슷한 순간 부당주와 무천의방 소속 의원 하나가 다가왔다.

부당주는 신음하는 이회옥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이놈이 그놈이오. 어떻소? 금방 치료가 되겠소? 우리 당주께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놈이니 최대한 빨리…"


"흠! 심하긴 정말 심하군. 하지만 본방의 금창약이면 충분할 듯 싶소이다. 이 정도면 앞으로 이틀 정도면 깨끗해질 것이오."
"오! 그렇소? 하하! 그렇게만 된다면야…. 하하! 고맙소."

부당주가 걱정되던 일이 해소되었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늙은 의원은 준비해온 천으로 상처를 닦아낸 후 약향(藥香) 그윽한 금창약을 상처에 바른 뒤 능숙한 솜씨로 붕대를 감았다.


"흠흠! 약을 발라 낫기는 하겠으나 상처가 제법 깊으니 침상에 눕혀 놓는 것이 좋을 듯 하오이다."
"흠! 알겠소이다."

부당주는 이회옥이 신주단지라도 된다는 듯 조심스럽게 침상에 눕혀놓고는 이내 늙은 의원과 함께 사라졌다.

부당주는 가기 전에 불촉(不觸)이라는 팻말을 내걸었다. 이것은 전염병을 옮길 것이 예상되는 죄수나, 아주 중요한 사건에 연루되어 절대 죽으면 안 될 죄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으으으! 으으으으!"

나직이 신음만 토하던 이회옥의 눈이 떠진 것은 부당주가 사라지고 다시 일 각이 지난 뒤였다.

잠시 신음을 토하던 이회옥은 자신이 침상에 눕혀져 있다는 것과 손이나 발에 전혀 제약이 가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혼절하기 전에는 무릎 아래가 떨어져나갈 것만 같은 통증에 목이 쉬도록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지금은 아프기는커녕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어 다리를 보니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붕대를 감아두기까지 하였다.

아직은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입안에 약향이 감돌고 있자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왜 이러지…?'

다음 날, 뇌옥에 온 늙은 의원은 이회옥의 다리가 정상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무런 말도 없어 사라졌다.

규환동에 하옥된 죄수들에게는 하루에 단 한끼밖에 배식이 되지 않는다. 그것도 굶어죽지 않을 만큼 극소량만 배급된다. 죄수들 대부분이 조사가 끝나면 극형에 처해질 중죄인들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을 놈들이니 죽지 않을 만큼만 배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회옥은 예외였다. 그가 있는 뇌옥에는 배가 터져 죽을 만큼 많은 양의 음식이 배식되었던 것이다.

배식하던 옥졸은 언제 형당에서 전갈이 올지 모르므로 빨리 먹으라고 성화를 받쳤다. 그렇지 않아도 허기져 있던 이회옥은 허겁지겁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그렇게 음식을 먹어치웠다.

자고로 사람이란 등 따습고 배가 부르면 졸린 법이다. 팔베개를 하고 침상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던 이회옥은 문득 예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 피식 실소를 베어 물었다.

무림지옥갱을 탈출하기 위하여 냉혈살마와 비접나한과 함께 밤이면 밤마다 모의를 하던 일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곳과 이곳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철광을 개조해 만든 뇌옥이라는 것이 그랬고, 옥졸들이 가까이 있지 않다는 것도 그랬다. 무림지옥갱에서 쓰던 곡괭이만 있으면 또 한번 탈출해 볼까 어쩔까 생각하던 이회옥은 스르르 잠들었다.

그가 깊은 잠에 빠져 코를 골 즈음 흑의복면인 하나가 나타났다. 그는 이회옥의 혼혈을 제압한 후 그의 몸 여기 저기를 주물럭거리는가 싶더니 올 때처럼 그렇게 사라졌다.

"아함! 잘 잤다. 끄으으으응!"

잠자리에서 일어나 게으른 송아지처럼 기지개를 켠 이회옥은 슬그머니 창살밖을 살펴보았다. 대략 이십 보에 하나씩 밝혀놓은 횃불 덕분에 희미하기는 하지만 밖을 살필 수 있던 그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는 태극일기공을 운기하기 시작하였다. 혹시 고문으로 인하여 기혈의 움직임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 점검해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헉! 이건 대체 뭐지…?'

운기를 시작한 직후 이회옥은 단전에서 느껴지는 괴이한 느낌에 대경실색하여 하마터면 주화입마에 들 뻔하였다. 철마당에 있을 때와 선무곡에 있을 때 틈만 나면 나한기공을 운기하였기에 단전에 내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운기조식을 했다면 모르되 태극일기공을 창안한 이후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하여 운기조식을 하지 않았기에 내공이래 봤자 얼마 되지 않았다.

따라서 단전이 비어있다시피 하여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전이 묵직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그것이 대략 반 갑자 정도 되는 내공이라는 것을 확인하였기에 놀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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