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말로 구루마라 했던 소달구지 타보셨습니까? 바퀴 두 개 달린 달구지 위에 앉아 다리 요리조리 움직이며 졸아도 소는 집에까지 잘 끌고 옵니다. 그립습니다.허호행
"시장에서 살 목록 또박또박 큰 글씨로 써라"
형은 저녁밥을 먹고 옆방으로 사라졌다. 여동생과 나는 자리를 뜨지 않고 남아서 어른들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심부름 해드릴 것 있는가 보는 척 하지만 실은 내일 장에 가시는 부모님 눈에 들고자 한 때문이다.
이 때 부탁을 드리면 효과만점이란 걸 알았으니 그냥 밥만 먹고 갈 턱이 없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얼렁 가서 공부 안하고 뭐혀?"
“거시기…. 심부름시킬 것 없능그라우?"
"없응께 후딱 가서 자든지 공부혀.”
“….”
“가만 있어봐라. 아야~."
"예."
"거시기 뭐시냐 골펜(볼펜을 어른들은 그렇게 불렀다.) 좀 갖고 오니라."
"공책도 갖고 올끄라우?"
그렇게 쓰임새가 있길 간절히 기다렸다. 무릎을 꿇고 한 말씀이 떨어지길 기다린다.
"받아 적어라. 또박또박 크게. 싸인펜으로 적어야 보여. 콱 가락으로 쑤셔부러야 쓰겄어. 숫제 보여야 말이지."
"예."
“유과(한과), 닭, 호박, 가지, 외(오이), 콩질금(콩나물), 고사리, 배추, 토란, 취나물, 수리취, 달걀….”
“적어요?”
“시방 한 것은 집에 있응께 놔둬라.”
“예.”
“뚜부(두부), 엿기름, 돼지고기는 가까운 데서 사면된다.”
“애 아버지 실고치(실고추)는 집에서 썰면 돼요.”
한참을 생각하시다가 없는 것, 사올 것만을 골라 부르셨다.
"대추, 밤, 배, 곶감, 사과, 대구포, 쓰리미, 북어포, 탕감, 김, 조구(조기, 굴비), 전어, 준어, 상어포, 병어(병치), 홍애(홍어), 낙지, 쇠고기, 파, 마늘, 양파, 생강, 미나리, 당면, 밀가리(밀가루), 사카리(사카린), 정종(청주)….”
“됐는가요?”
“글고 뭐시냐 성냥, 라이타 돌, 장화, 니 엄니 머리 염색약….”
“또 없어라우?”
“됐다. 찬찬히 니 엄마한테 한 번 불러봐라.”
“예.”
차근차근 불러나갔다.
“꼬막 빠졌구만!”
“빠진 것 없제?”
“대충 된 것 같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