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장 볼라믄 서둘러야 헌디...”

달구지 타고 대목장가는 시골 이야기-화순 이서면 ‘방석굴장’

등록 2003.09.06 00:46수정 2003.09.0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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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말로 구루마라 했던 소달구지 타보셨습니까? 바퀴 두 개 달린 달구지 위에 앉아 다리 요리조리 움직이며 졸아도 소는 집에까지 잘 끌고 옵니다. 그립습니다.
일본말로 구루마라 했던 소달구지 타보셨습니까? 바퀴 두 개 달린 달구지 위에 앉아 다리 요리조리 움직이며 졸아도 소는 집에까지 잘 끌고 옵니다. 그립습니다.허호행
"시장에서 살 목록 또박또박 큰 글씨로 써라"


형은 저녁밥을 먹고 옆방으로 사라졌다. 여동생과 나는 자리를 뜨지 않고 남아서 어른들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심부름 해드릴 것 있는가 보는 척 하지만 실은 내일 장에 가시는 부모님 눈에 들고자 한 때문이다.

이 때 부탁을 드리면 효과만점이란 걸 알았으니 그냥 밥만 먹고 갈 턱이 없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얼렁 가서 공부 안하고 뭐혀?"
“거시기…. 심부름시킬 것 없능그라우?"
"없응께 후딱 가서 자든지 공부혀.”
“….”
“가만 있어봐라. 아야~."
"예."
"거시기 뭐시냐 골펜(볼펜을 어른들은 그렇게 불렀다.) 좀 갖고 오니라."
"공책도 갖고 올끄라우?"

그렇게 쓰임새가 있길 간절히 기다렸다. 무릎을 꿇고 한 말씀이 떨어지길 기다린다.

"받아 적어라. 또박또박 크게. 싸인펜으로 적어야 보여. 콱 가락으로 쑤셔부러야 쓰겄어. 숫제 보여야 말이지."
"예."
“유과(한과), 닭, 호박, 가지, 외(오이), 콩질금(콩나물), 고사리, 배추, 토란, 취나물, 수리취, 달걀….”
“적어요?”
“시방 한 것은 집에 있응께 놔둬라.”
“예.”
“뚜부(두부), 엿기름, 돼지고기는 가까운 데서 사면된다.”
“애 아버지 실고치(실고추)는 집에서 썰면 돼요.”


한참을 생각하시다가 없는 것, 사올 것만을 골라 부르셨다.

"대추, 밤, 배, 곶감, 사과, 대구포, 쓰리미, 북어포, 탕감, 김, 조구(조기, 굴비), 전어, 준어, 상어포, 병어(병치), 홍애(홍어), 낙지, 쇠고기, 파, 마늘, 양파, 생강, 미나리, 당면, 밀가리(밀가루), 사카리(사카린), 정종(청주)….”
“됐는가요?”
“글고 뭐시냐 성냥, 라이타 돌, 장화, 니 엄니 머리 염색약….”
“또 없어라우?”
“됐다. 찬찬히 니 엄마한테 한 번 불러봐라.”
“예.”


차근차근 불러나갔다.

“꼬막 빠졌구만!”
“빠진 것 없제?”
“대충 된 것 같으요.”

화순군 동복면. 옛날에는 화순군 동복면, 이서면, 북면이 동복현 이었지요. 춘향전에도 나오니 찾아 보시죠.
화순군 동복면. 옛날에는 화순군 동복면, 이서면, 북면이 동복현 이었지요. 춘향전에도 나오니 찾아 보시죠.화순군
없는 살림에 어린 자식들 것 빼 먹지 않으셨다

어린 내가 봐도 특별히 빠진 건 없어 보였다. 깜박하여 잊으면 모레 옥과장으로 가면 되니 큰 걱정은 없었다.

“엄마, 그건 그렇구라우?”
“뭐 빠진 것 있냐?”
“그게 아니구라우….”
“뭣이여? 말해봐. 낼 사야 되제 안글면 못 산당께.”

머뭇머뭇도 잠시였다.

"제 것은 뭐 사다주실라요?"
"니꺼?"
“운동화 한나 사다주면 좋겠구만…."
"사오마. 운동화뿐이냐. 새 옷도 한 벌 사와야제."
“기왕 사오시는 거 맞는 것 좀 사다줘요.”

날아갈 듯 기뻤다. 곧 일곱 살 연순이가 나선다.

"아부지, 연순이는?"
"우리 막내딸한테는 ‘뾰쪽구두’하고 ‘살양말'(애들이 신고다닌 촌스럽고 파란 스타킹) 사다줄 것이여."
"글고 아부지 머리띠도 한나 사다주실거제?"
"오냐. 빨강 걸로 사면 되냐?"
"그래라우."

동생은 엄마 젖가슴에 묻혀 꼬무락거리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도 내일이면 새 옷과 운동화를 신을 수 있다는 마음에 들떠서 몸이 화끈거렸다. ‘형들과 누나 몇 시에 올까?’ ‘얼마나 멋진 걸 사다 주실까?’ 추석 때 온 가족이 모여 즐겁게 놀 일을 떠올리며 뒤척거리니 ‘내일 학교 가야헐텡께 얼른 자그라~’고 말씀하셨다.

더디게 은하수 다리를 건너 별똥이 쭈루룩 내리는 밤이었다. 맑은 이슬을 한껏 머금고 날이 샜다. 귀뚜라미 실솔(蟋蟀)은 “솔솔솔” “쏠쏠” “실실” 노래를 불러 댔다.

화순군 북면 소재지 전경. 예나 지금이나 나아진 건 없습니다. 자장면 집 하나 없었고 여관 하나 없었답니다. 식당은 제일 많을 때 3개였습니다. 한 때 다방이 3개 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한군데도 없어요.
화순군 북면 소재지 전경. 예나 지금이나 나아진 건 없습니다. 자장면 집 하나 없었고 여관 하나 없었답니다. 식당은 제일 많을 때 3개였습니다. 한 때 다방이 3개 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한군데도 없어요.화순군
아침 한술 안 뜨고 집을 나서는 꼭두새벽

새벽에 일어나신 두 분은 바빴다. 아침진지도 뜨지 않으시고 장에 갈 준비로 바쁘다. 평소 없던 일이다. 30리 길을 떠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명절을 쇠려면 모든 일 팽개치고 대목장에 나가봐야 한다. 이날은 세상 온갖 잡동사니에 없는 것 없이 다 나오는 날이니 빼 먹으면 안 되는 것이다. 값은 다소 비싸지만 물건은 최고다.

"이보시랑께요. 지기 아부지? 얼른 서두르지 않고 뭐 하신다요?"
"시방 나가구만. 핑~(먼저) 가고 있으란 말이시. 칙간에 있응께. 후딱 따라 갈 것이여."
"구루마 놓치면 중앙여객 타고 가야할 것인디~. 차비 아낄라믄 얼른 오싯쇼잉?"
"알았다마시."

아버지는 평소 뒤(항문)가 좋지 않아 탈장을 거듭하니 지푸라기로 거기를 밀어 넣느라 좀 시간이 걸리실 모양이다. 같은 시각. 이씨 아저씨는 더 바쁘다. 아저씨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마음씨도 고와 동네 대소사를 도맡아서 한다.

온순한 암소도 멀리 떠나려면 첫닭이 울자마자 여물을 두 동이는 비워야 힘을 낼 수 있다. 주인은 보리를 실어 나르고 헛간에 잘 보관해뒀던 달구지를 꺼내느라 온 집안 식구를 깨웠다. 바퀴가 이상이 없는가 확인하고 멍에를 꺼내고 소죽을 한 양동이 퍼서 싣는다.

마구간에서 꼬뺑이(고삐)는 한 손에 코뚜레는 다른 손에 잡아 소가 요동치지 않게 꼭 잡고 “넘어서. 넘어섯!” 하니 아무 일 없이 문턱을 넘어선다. 논갈이와 보리다발 실어 나르기까지 힘든 일을 했지만 오랜만에 먼 길을 떠나는 터에 몸이 무거워 보인다. 그래도 원체 온순한 동물이라 대문 앞으로 잘 따라 나왔다.

멍에를 올리고 양 겨드랑이에 줄을 매달아 단단히 죄고 고삐로 한 줄을 연결하여 채찍으로 살며시 후려치며 "이랴!"한번 소리치니 잘 닦인 골목을 미끄러지듯 빠져 나온다. 구루마 달구지도 처음 몇 번만 “삐거덕 삐그덕” 거릴 뿐 잘 굴러간다.

동네 입구에 나가보니 함께 가기로 한 소달구지가 기다리고 있다. 벌써 다섯 명이나 달구지 위에 올라 타 있다. 잘 마른 대마(大麻) 껍질도 가득 실려있다. 어머니께서 올라타자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마치 가을 풀벌레 소리 같다. 젖은 아침에 잘 마른 삼 껍질 소리는 맑고 경쾌하다.

"김샌 아직 안 나오쇼?"
"글게라우. 나오실 것이요."
"시방 뭐 하신다요? 대목장 볼라믄 서둘러야 쓰건는디…."
“지도 모르겄소.”

짐짓 모를 체 하시며 말머리를 다른 데로 돌린다.

"진지들은 드셨는게라우?"
"한 술 뜰 시간이 있다요."
"글면 이따가 국밥이나 한 그릇 씩 드시면 되겄구만요.”

다들 마음이 바쁘다. 대목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다. 밥도 안 먹고, 쇠죽 쒀서 주는 것도 뒤로하고 장이 먼저 일 때가 많았다. 허구한 날 굶고 살아도 조상들께 올릴 제상(祭床)은 조기 한 두름에 2천원이 넘어도 마다 않고 사기도 한다. 정성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어이 용시비 얼른 가잔말이시.”
"일찍 들 나왔구만이라우?"

손을 바깥으로 휘저으며 달려오시는 아버지께서 마지막 승차를 했다.

화순군 북면 방리 우리 마을에 있는 아름다운 풍경. 원래 세그루 였는데 이젠 두 그루만 남아 있습니다. 자연사로 보는 게 나을 듯 합니다.
화순군 북면 방리 우리 마을에 있는 아름다운 풍경. 원래 세그루 였는데 이젠 두 그루만 남아 있습니다. 자연사로 보는 게 나을 듯 합니다.화순군
달구지 타고 대목장 가는 길

"이랴!" 한마디에 30리가 넘는 먼 길을 향해 떠났다.

달구지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바퀴 나사가 풀려나올 성싶지만 아무 일 없이 잘도 간다. 한 마장을 남기고 아침해가 찬이슬을 깨우고 있었다. 놀란 귀뚜라미는 아침녘이 되자 다소 잦아진 듯 조용하다.

"자네는 살 것이라도 좀 있는가?"
"올해는 추석이 빨라서 내다 팔 것이 아무 것도 없네그려."
"글씨 말이시. 우리도 애들이 서울서 보내온 돈 쬐까 갖고 가는 길이구만."
"글도 김샌은 낫제."
"아따 이 사람아. 몇 푼 안 된다마시. 올해는 경기가 좋지 않아 애들도 내려 올랑가 모르겄어. 자네는 그래도 삼이라도 갖고 간께 다행이구만."
“아따 다 알면서 왜 그래싼데? 요즘 삼베가 나가야 값을 받지 않겄소. 나도 이 짓거리 내년부터는 안 할라요.”

사람들은 옛날 아이들이 듣기에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를 말씀을 하셨다. 늘 거꾸로 말을 하시니 알 턱이 없다.

내 곡식이나 물건을 장에 갖고 나가 파는 걸 ‘산다’고 한다. 당장 내가 필요한 걸 사려면 내 물건을 내놓고 돈으로 바꿔서 장사치에게 돈을 주고 사오니 하는 말일 게다. 반대로 내가 사는 것은 딱 부러지게 ‘판다’고 한다. 팔아주는 것이 아닌 파는 것이다. 품을 팔면 돈이 생기는 이치다.

"수산댁은 살 것이 많겄네?"
"뭐 있간디. 그냥 가보는 것이제."
“글도 글체, 아그들이 한두 명인가?”
“500원 짜리로 사다 줘야제 별 수 있어?”

달구지가 가는 길은 험하다. 비가 내릴 만큼 내려 먼지 풀풀 날리던 평평한 길도 울퉁불퉁 하다. “자우뚱”, “기우뚱” 아침을 먹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배불리 먹었어도 배가 이미 꺼졌다 싶게 요동을 친다. 자잘한 언덕빼기 밭엔 옥수숫대가 말라비틀어지고 누렇게 익어 가는 벼가 고개를 숙이고 오가는 객들을 맞이하는 듯 하다.

한 때 걸어서 다슬기 무던히도 잡았던 냇가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너무나 외진 곳이라 오일장(五日場) 하나 없는 면(面), 산골 촌구석에서 살다보니 이런 일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도리어 나들이 겸 바람이나 쐬러 가는 즐거운 길인 것이다. 매가 닭을 채가지 않으면 걱정스러울 게 없다.

일정(日政) 때 금광(金鑛) 하면서 괴롭혀도 끄덕 없었다. 뿐인가? 1945년 해방 후 토지조사와 무상분배 한다 길래 한때 들뜨기도 했다. 인공(人共)과 국방군(國防軍)의 등살에 낮에는 대한민국(大韓民國) 국민(國民), 밤에는 공화국(共和國) 인민(人民) 생활을 감내하며 살아 남아 여기 까지 온 그들이다. 아직 뼈가 삭지 않은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를 기리기 위해 장을 보러 가는 것이니 앙금 숨기고 전어 한 마리 큼지막한 것 올리면 된다.

화순군 북면과 이서면은 퇴적암층이 발달한 바위가 많습니다. 물염정, 물염적벽도 아름답지만 진짜 적벽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화순이서적벽은 이제 볼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화순군 북면과 이서면은 퇴적암층이 발달한 바위가 많습니다. 물염정, 물염적벽도 아름답지만 진짜 적벽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화순이서적벽은 이제 볼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화순군
‘김삿갓’이 말년 보낸 ‘화순적벽’근처‘방석굴장’은 아늑

왼쪽 저 멀리 김삿갓 김병연이 말년을 보냈던 ‘화순적벽’이 보인다. 이제 한 마장 안 가도 ‘방석굴장’이다. 달구지가 요동이 심하여 잠시도 가만 두질 않지만 도란도란 얘길 나누며 대목장 보러 가는 길은 세상구경, 사람 구경하는 재미를 맘껏 누릴 수 있어 어른들도 들떠있다. 사는 마을과 면(面)은 다르지만 젊을 적 동무를 만나 시장국밥에 막걸리 한잔 기울였던 사이도 여럿이고 미장원, 이발소, 쇠전에서 만난 이도 한둘이 아니다.

병풍이 양쪽으로 쳐지듯 퇴적층이 드러나 보이는 암석이 왼쪽으로 늘어져 있고 입구에서부터 초가집 상점들이 즐비하다. 큰길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이지만 곧게 뻗은 시장으로 가는 길은 멀리서도 환하다.

앞에 사진관이 들어서 있고 방아실(방앗간)과 기름집, 떡집이 차례대로 눈에 들어온다. 벌써 싸전, 어물전, 건어물전, 성냥간(대장간), 과일전, 채소 파는 가게가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나 있는 사진관 옆 이발관엔 남자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발도 이발이지만 정보센터 소장의 구수한 입담을 들을라치면 한 번씩 들르지 않고는 좀이 쑤셔 못 배긴다.

“어이? 나 이따가 올라네.”
“일보고 오싰쇼.”
“글면 내 순서 맡아놨응께 까먹지 말더라고.”
“아따 성님도 걱정도 팔자요잉. 후딱 댕겨오시랑께요.”

짧게 머리를 자르고 빨랫비누로 시원하게 감겨주고 면도칼을 쓱싹쓱싹 쇠가죽에 문질러 거품을 가득 묻혀 면도를 해주니 깔끔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맛에 남자들은 이발소에 간다. 변발을 하지 않은지가 얼마나 된다고 조상 대할 때 정갈한 모습으로 나서려는 마음은 한결같다.

인두로 지져가며 고대를 하고 동백기름 바르면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거기다 얼굴에 ‘구루모’(크림)를 바르면 백구두를 신지 않아도 멋쟁이가 따로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분담하여 각자 잘 알고 자신 있는 곳으로 가서 장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화순군 능주 5일장. 새마을 운동에 살아 남은 건 별로 없습니다. 초가집이 다 헐리고 슬라브나 시멘트 기와로 바뀌었죠. 2~30년 후를 내다보는 안목은 언제나 길러 지려는지...
화순군 능주 5일장. 새마을 운동에 살아 남은 건 별로 없습니다. 초가집이 다 헐리고 슬라브나 시멘트 기와로 바뀌었죠. 2~30년 후를 내다보는 안목은 언제나 길러 지려는지...화순군
장보느라, 친구 만나랴, 이발하고 분주한 하루

“쩌거 얼마요?”
“800원이라우.”
“아짐, 나랑 한두 번 장사하쇼?”
“아제, 많이 올라부렀어라우.”
“좋시다. 내 아짐 이문 남겨야 추석이 뽀땃한(따뜻한) 거 안께 제대로 쳐드릴께라우. 근디 옥괴장(옥과장)에 가본께 500원이던디.”
“아제 오셨응께 솔직히 말씀 드릴라요. 아제한테만 1원 남기고 드릴라요. 600원만 줏쇼.”
“바쁜 사람 각고 그러믄 쓰간디? 지난 장에 300원 외상있지라우. 여깄소.”
“고맙구만이라우. 추석 잘 쇠싰쇼.”

초장(初場)부터 실랑이가 벌어지면 기분이 잡친다. 그래도 아무 일 없었던 건 명절 밑이라 서로 참은 건지도 모른다. 들러야 할 곳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은 방석굴장(전남 화순군 북면 우리 집에서 13km 거리에 있던 오일장으로 이서면 도석리 소재. 85년쯤 광주지역 상수원인 동복댐 확장공사로 저수량이 열배 늘어나 수몰되어 없어진 옛 정취 그득한 곳)이지만 내일은 곡성 옥과장, 석곡장이다.

산 몰랭이(꼭대기) 넘어 석곡장(곡성군 석곡면 소재의 재래시장으로 이 지역은 안동포(安東袍)와 자웅을 겨루는 ‘돌실나이’의 고장이다) 가는 건 2년 전부터 포기한 상태다. 백아산에서 지리산 방향 국사봉으로 넘는 길은 워낙 산 길이 험해 가다가 개호랑이(삵쾡이)라도 만나면 예전 같지 않는 몸으로 이겨낼 수가 없다. 여럿이 동무를 하여 집채만한 삼을 지고 넘었던 어른들도 이젠 당해낼 재간이 없을 만큼 약해진 것이다.

저기 보이죠? 절벽이 보이고 물이 찬 곳이 이서면 도석리 '방석굴장'이 있었습니다. 여긴 적벽이 아닙니다. 장마당을 더 잘 그렸어야 하는데 나중에 기회를 보렵니다.
저기 보이죠? 절벽이 보이고 물이 찬 곳이 이서면 도석리 '방석굴장'이 있었습니다. 여긴 적벽이 아닙니다. 장마당을 더 잘 그렸어야 하는데 나중에 기회를 보렵니다.김규환
국밥집에서 친구 만나 세상사는 이야기하며 탁주 한잔 마시는 재미도 쏠쏠

바리바리 보따리에 싸서 우시장 쇠전 옆 버드나무에 묶여 있는 달구지 옆으로 몇 번을 오갔을까. 이젠 어머니는 염색약과 비녀 하나 사시고 아버지는 이발소에 들렀다 오시면 되었다.

“끝나는대로 오싰쇼.”
“알았소. 국밥집 앞에서 봄세.”

말끔해진 아버지가 먼저 국밥집에 오셨다. 어머니는 다른 분을 먼저 국밥집으로 보내고 달구지에 실린 짐을 지키고 계셨다.

양동이에 가득 퍼 온 쇠죽을 먹고 쉬고 있는 암소를 뜯어먹는 놈이 있었다. 다름 아닌 쉬파리다. 꼬리 채를 살랑살랑 흔들다가 휙 한번 감싸듯 후려치면 잠시 뿐이다. 엉덩이와 허벅지 부근에 착 달라붙은 세 마리가 번갈아 가며 피를 쪽쪽 빨아 대고 있다.

지켜보시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어머니는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휘휘 소리를 질러가며 쉬파리를 쫓는다. 그래도 이미 깊숙이 빨판으로 길을 내놓았는지라 날았다 붙었다를 반복하며 엉겨붙어 빨아대니 붉은 피가 쭈루룩 콧물 흐르듯 한다. 쇠전이 가까이 있기도 하지만 오늘 온 마리만 해도 100여 마리니 도리가 없다.

국밥집엔 방금 나간 한 테이블 빼고 차 있다. 창랑리(滄浪里) 친구 얼굴을 찾은 아버지.

“어이~ 먼저 와 있었구만.”
“어여와.”
“아짐, 막걸리 한 잔 줏쇼.”

술안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열무김치와 어린 배추로 담은 김치에 예닐곱 가지는 차려 있으니 충분하지만 먼 길을 떠나야 하니 국밥을 시켜서 입맛 없어도 배를 든든히 해 놓아야 한다.

“여기보싯쇼 국밥도 두 그릇 말아주쇼.”
“자네 농사는 어떤가?”
“말도 말게. 글도 자네 같은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은 좀 나을 걸세. 태풍이 싹 쓸고 갔단 말이시.”
“우리 마을도 마찬가지네.”
“그건 그렇고 자네 자식들이 맨날 돈 보낸다더만 다 어디다 쓴가?”
“누가 그려? 지기들도 먹고살기 힘든디 얼마 되가니. 작년 올해 해서 8마지기 샀네.”
“대단한 놈들이구만.”
“자 한 잔 들더라고.”

화순이서 적벽입니다. 적벽강. 중국 적벽이 이렇게 아름다울까요? 초, 중학교 때 소풍다녔던 곳이라 잘 압니다. 금강산, 묘향산은 몰라도 이보다 좋을 순 없었습니다. 건너편 절벽에 한산사라는 자그마한 절이 있었습니다.
화순이서 적벽입니다. 적벽강. 중국 적벽이 이렇게 아름다울까요? 초, 중학교 때 소풍다녔던 곳이라 잘 압니다. 금강산, 묘향산은 몰라도 이보다 좋을 순 없었습니다. 건너편 절벽에 한산사라는 자그마한 절이 있었습니다.화순군
오르막길만 있는 길에 냇물을 세 번 건너는 달구지 끄는 소

뒤늦게 허기진 상태에서 먹은 국밥이 들어갈 리 만무했다. 어머니는 국물에 몇 숟가락 뜨시고 이내 돌아오셨다. 시골장이라지만 한 마을에 달구지를 두세 집은 끌고 나오니 500여 미터 입구에서부터 장사진을 치고 있다. 이렇게 입구를 빠져나가다가는 가장 먼 거리에서 온 우리 마을 사람들은 해지기 전까지 도착하기는 틀렸다.

낌새를 보고 오시는 이씨 아저씨는 마을 뒤쪽으로 달구지를 몰았다. 조금 멀긴 해도 그게 한 시간을 절약할 방법이다.

30리 길은 장에 올 때는 가끔 오르는 고갯길말고는 마냥 내려오기만 하는 편한 길이다. 돌아가는 길은 어쩌다 내려갈 뿐 거의 오르막길이다. 거기다 온갖 짐을 다 싣고 떠나니 무게가 1톤이 훨씬 넘는다. 사람도 두 명 더 탔으니 팍팍하기만 할 것이다.

“딸랑딸랑” 풍경을 울리며 힘겹게 오르는 달구지 끄는 소의 수고로움을 누가 알까? 작은 시냇물을 세 번 건너는 동안 물을 축이지 않고는 사람마저 목이 타 가기 힘겹다. “쑤욱~” 벌컥벌컥 단번에 빨아 마시고 가던 길을 간다. 고개를 들어보니 양지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뉘엿뉘엿 붉게 물든 노을을 뒤로하고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마중 나와 끙끙거리며 보따리를 들춰 메고 가도 한번은 더 와야 될 듯 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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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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