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23

빙화 구연혜 (6)

등록 2003.09.08 14:07수정 2003.09.0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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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하수오(萬年何首烏)나 공청석유(空淸石乳), 그리고 태양금구(太陽金龜) 같은 영물의 내단이나 소림사의 대환단(大丸丹) 같은 영단을 복용하기 전에는 내공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런 것을 복용하기는커녕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니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휴우, 하마터면…!"

막 주화입마로 접어들려던 순간 재빨리 냉정을 되찾아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이회옥은 삼 주천을 마치고 나서야 긴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눈은 아까와는 달리 형형한 안광이 빛나고 있었다. 전형적인 내가 고수의 모습이었다.

"으음! 이게 왜 이런 거지?"

이회옥은 자신의 몸에 생긴 변화의 근원을 더듬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빚어질 이유가 전혀 없어 몹시 곤혹스러웠다. 원인 없는 결과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상념에 잠겨 있던 이회옥은 또 다시 잠에 빠져들었고 예의 흑의복면인이 또 나타났다. 그는 이회옥의 혼혈을 짚은 후 또 다시 그의 전신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고는 사라졌다.


다음 날, 늙은 의원이 상처가 아무는 정도를 확인하려 왔다간 것과 음식을 가져온 옥졸 이외에는 아무도 뇌옥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옥졸은 당주에게 급한 용무가 있는지 데려오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면서 몸이나 잘 추스르라는 말을 하였다.


하옥된 죄수 알기를 개똥만도 못하게 여기기에 지나다가 패기가 일쑤이고 하다 못해 침이라도 뱉고 가는 게 옥졸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호적이었다.

잘못 걸리면 뇌군명처럼 목이 날아갈지 모른다 생각하였기에 그렇다는 것을 이회옥은 모르고 있었다. 하긴 뇌군명이 죽었다는 것조차 모르니 그럴 만도 하였다.

* * *


"아아아악! 그, 그만…! 마, 말할게. 그러니 이제 그만 아아악!"
"흥! 아직 멀었어. 계속하세요."

"존명! 무엇 하느냐? 계속해서 주리를 틀어라."
"예으이!"
"아아악! 아아아아악! 말한다구, 말할게. 아아아아악!"

산해관 밖 관(官)의 힘도 미치지 못하는 울창한 수림 속에 일단의 무리들이 원을 그리며 운집해 있었다. 그들의 수효는 대략 일만여 명. 하나같이 한 송이 매화가 수놓아진 청삼을 걸친 그들은 산해관 양민들이 협도당이라 부르는 정의문 휘하 제자들이다.

원래의 수효보다 인원이 늘어난 것은 스스로 협도당, 아니 정의문에 몸담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평범한 양민 출신이지만 고된 훈련을 거듭하면 언젠가는 협행(俠行)을 할만한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작전에서 음모로 전임 무천장주인 사면호협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오른 혈면귀수를 생포하느라 목숨을 잃은 인원만 거의 백여 명에 달했다.

나름대로 면밀한 계획 하에 무천장을 급습하였건만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상을 입은 제자가 오백여 명이었고, 경상도 삼백여 명이나 당했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산해관 무천장에서는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후원은 물론 장원 좌우에 위치한 전각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화재가 발생된 것이 소란의 시초였다.

화재 발생을 알리는 경종(警鐘)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오는 가운데 일단의 무리들이 전후좌우에서 요란한 징 소리와 함성 소리를 내며 물밀듯이 쇄도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깊은 밤 곤한 잠에 취해 있다 깨어난 정의수호대원들은 대오를 정비하여 조직적으로 대응하기는커녕 도주하기에도 바빴다. 일인당 두 개씩 들고 들어간 허수아비 덕분이었다. 동시 다발적으로 들이닥친 이들을 보고 엄청난 수효의 대군이 급습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우왕좌왕하였던 것이다.

애초의 계획은 소란이 벌어져 주의가 흐트러진 틈을 타 혈면귀수를 납치하는 것이었다. 하여 일지매 여옥혜 등은 혼란을 틈타 그의 거처로 난입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혈면귀수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 그를 납치하는 것뿐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과 조우하고 말았다.

교토삼굴이라는 말이 있다.

사기(史記) 맹상군(孟賞君) 열전(列傳)에서 연유한 이 말은 꾀 많은 토끼가 굴을 세 개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뜻으로, 교묘한 지혜로 위기를 피하거나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한다는 말이다.

풍환(馮驩)은 제(齊)나라의 재상(宰相)인 맹상군의 식객(食客)이었다. 맹상군은 왕족인 정곽군(靖郭君) 전영(田拏)의 아들로 그의 이름은 전문(田文)이고, 맹상군은 그의 호이다.

풍환은 본디 거지였는데 맹상군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가 식객으로 받아 주기를 원했다. 맹상군은 그의 몰골이 우스웠으며 별 재주도 없어 보였지만 먼길을 오느라 지친 듯 싶어 가장 허름한 숙소에서 쉬라 하였다.

숙소에 당도한 풍환은 재상인 맹상군이 받아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여야 할 판에 고기 반찬이 없다고 투덜댔다. 이 소리를 들은 맹상군은 그를 조금 더 나은 숙소로 옮겨 주면서 이번엔 무슨 소리를 하는가 알아 보라 하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수레가 없다면서 불평한다 하였다.

내심 괘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를 가장 좋은 숙소로 옮겨 주면 이번엔 무슨 소리를 하나 두고 볼 요량으로 그곳으로 옮기라 하였다. 그랬더니 이번엔 그럴 듯한 집이 없다며 투덜댔다. 이 소리를 들은 맹상군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를 식객으로 인정하였다.

당시 맹상군은 설(薛 :현재 산동성 동남지방)에 일만 호에 달하는 식읍(食邑)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삼천 명의 식객을 부양하기 위해 식읍 주민들을 상대로 대금업(貸金業)을 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골치가 아파진 맹상군은 누구를 보내 독촉할까 궁리하고 있었다. 이때 일년간이나 무위도식(無爲徒食)으로 일관하던 풍환이 나서 자신을 보내달라 하였기에 그렇게 하도록 하였다.

출발할 때 풍환은 빚을 받으면 무엇을 사올 것인가를 물었다. 이에 무엇이든 좋으니 부족하다 싶은 것을 사오라고 하였다.

설에 당도한 풍환은 빚진 사람들을 불러모은 뒤 차용증을 하나하나 점검한 결과 이자만 십만 전을 받을 수 있었다. 예상외로 좋은 결과였다. 이자 징수가 끝나자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재상께서 여러분의 상환 노력을 어여삐 여겨 모든 채무를 면제하라고 나에게 분부하셨소이다."

말을 마친 풍환은 모아 놓았던 차용증 더미에 불을 질렀다. 이에 사람들은 맹상군의 처사에 감격해 마지않았다.

풍환이 설에서 돌아오자 맹상군이 물었다.
"무엇을 사왔는가?”

이에 풍환은 이렇게 말하였다.

"승상께 지금 부족한 것은 은혜와 의리이오이다. 차용증서를 불살라 돈주고도 사기 힘든 은혜와 의리를 사 가지고 왔소이다."
[차시풍환왈 군지부족즉은의야 이소차서위군매은의래(此時馮驩曰 軍之不足則恩義也 以燒借書爲君賣恩義來)]

맹상군은 마땅치 않은 기색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모든 차용증서가 불에 탔으니 풍환을 닦달해 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기에 그냥 물러나란 소리밖에 할 수 없었다.

일년 후 맹상군은 제나라의 새로 즉위한 민왕(泯王)에게 미움을 사서 재상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에 삼천에 달하던 식객들은 혹여 자신에게 화라도 미칠까 싶어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이때 풍환은 졸지에 외톨이가 된 맹상군에게 설 땅에 가자고 권유하였다. 모든 기반을 잃은 맹상군으로서는 할 수 없이 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시름에 찬 얼굴로 설 땅에 당도했을 때 주민들이 나서서 환호하며 맞이하자 맹상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전에 은혜와 의리를 샀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깨달았네."
"하하! 교활한 토끼는 구멍을 세 개나 뚫지요[狡兎三窟]. 지금 경(卿)께서는 한 개의 굴을 뚫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아직 고침무우(高枕無憂 :베개를 높이 베고 근심 없이 잠)를 즐길 수는 없지요. 경을 위해 나머지 두 개의 굴도 마저 뚫어드리지요.”

이후 풍환은 위(魏)나라의 혜왕(惠王)을 찾아가 맹상군을 등용하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실현할 것이며 동시에 제나라를 견제하는 힘도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마음이 동한 위의 혜왕이 세 번이나 맹상군을 불렀지만 그 때마다 풍환은 응하지 말 것을 은밀히 권했다. 이 사실이 제나라에 알려지자 아차 싶었던 민왕은 그제야 맹상군의 진가(眞價)를 알아차리고 사신을 보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 재상의 직위를 복직시켜 주었다.

두 번째의 굴이 완성된 셈이다. 이후 풍환은 세 번째 굴을 파기 위해 민왕을 설득하여 설 땅에 제나라 선대의 종묘를 세우게 만들었고, 선왕(先王) 때부터 전승되어 온 제기(祭器)를 종묘에 비치하도록 했다.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영지에 있는 한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이일이 이루어지자 풍환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으로 세 개의 구멍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주인님은 고침안면(高枕安眠) 하십시오."

이리하여 맹상군은 재상에 재임한 수십 년 동안 별다른 화를 입지 아니했는데 이것은 모두 풍환이 맹상군을 위해 세 가지 보금자리를 마련한 덕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풍환은 전국책(戰國策) 제책편(齊策扁)에도 언급되는데 거기엔 풍훤(馮芋)으로 언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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