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백아산 근처 저수지에 핀 오이풀김규환
차라리 떠나고 말지 남아서 배웅하지 못하겠다. 망자(亡者)를 떠나보낸 세 번의 슬픔 - 중2때 어머니, 대학때 큰형, 4년전 아버지를 보냈던 슬픔을 잊지 못한다. 여기에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낸 일마저 있었다. 내 마음에는 이제 누구도 먼저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리잡았다.
늘 함께 할 것 같지만 회자정리(會者定離) 마땅하며 떠난 자 언젠가 품에 안길 거자필반(去者必反)이 인생의 법칙이거늘, 왜 이다지 내 몸 염통을 후벼파고 가는걸까? 300g도 안 되는 심장을 멍들게 하고 애간장을 녹이는 헤어짐. 명절을 쇠고 남아 있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의 마음엔 정반대의 피가 흐르는 걸까?
부모님의 사랑, 고향의 그리움과 추억을 가득 안고 바리바리 싸주신 꾸러미를 가슴 가득 채워 떠나는 사람이야 "엄마, 들어가세요" "나오지 마시라니깐요" "아버지 올라가면 연락 드리겠습니다"하고 떠나오면 그만이다. 일상에 몰입하면 그걸로 끝이다.
남아 있는 사람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오냐, 알았응께 핑(서둘러) 가거라와~" "끼니 잘 챙겨먹고…" "집안 일은 걱정하지 말고, 니기(늬네)들이나 잘 살아라" "언제 한 번 올라가마"하고 먼발치에서 자식들, 형제들 멀어져 떠나가는 뒷모습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눈에 쏙 박아둬도 세상 모든 걸 잃어버린 듯 마음 갈피를 잡기 어렵다.
조그만 차에 내려올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챙겨 실어주지만, 영 반기지 않는 아이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도 해야할 일이라 밤잠을 설쳐가며 큰아들, 둘째 아들, 딸네, 셋째 아들, 막내아들, 막내 딸 식구 숫자 손으로 꼽아가며 나눠 싣는다.
애호박에 늙은 호박, 가지, 늙은 오이(노각), 배추 대여섯 포기, 무 서너 뿌리, 상추, 가지 몇 개, '돼지고기는 시골 것이 맛있다'며 서너 근, 된장, 김치, 고춧가루, 참깨, 참기름, 들기름에 떡과 남은 전(煎)을 봉지에 싸서 서울 올라가면서 먹으라고 챙겨주신다.
"뭘 이렇게 자꾸 싸주신대요?"하시면 "너희들이 잘 살면 이런 걸 주지 않겠다"며 한사코 넣어 주시는 어머니, 장모님. 다 커버린 아들 딸은 며느리와 사위에게 넘긴지 오래라 마치 치외법권 구역에 든 것처럼 제대로 한 번 안아보지 못하고 손자 손녀들만 어루만져 주시고 작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