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커서 또 그만큼의 상처를 서로 주고받는 것일까. 가족 간에 오고 가는 정이 그 어떤 정보다 깊은가 하면, 또 그 골 사이로는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찬바람이 불어 온몸을 시리게 만들기도 한다.
한 번 틀어지면 화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 사는 일의 이치인데, 하물며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화해라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영화 〈영매 -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는 끊임없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만남, 소통, 화해를 이야기한다.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큰 일이 있을 때, 또는 세상 떠난 사람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할 때 굿으로 그 일을 맡아 해 주기에 함부로 가까이 하기 어려운 존재로 여김을 받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는 나이 어린 사람들로부터 내림말을 들으며 천대를 받아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무당이다.
진도의 채정례 할머니는 친정 어머니에게서 이어받은 세습 무당 집안의 막내딸이다. 위로 세 언니 모두 무당이었는데, 두 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뇌졸중으로 몸이 자유롭지 못한 둘째 언니가 근처에 혼자 살고 있다.
할머니는 자신이 무당일 하는 것을 보면 자녀들 마음이 신산스러울까봐 8남매 모두 일찌감치 뭍으로 보내고, 자녀 누구에게도 고달픈 무업을 물려주지 않았다. 진도 씻김굿이 유명해지고 찬탄을 받는 좋은 세상이 되고 보니 한 명이라도 가르칠 걸 그랬다며 웃으신다.
다시 태어난다면 예쁘게 태어나서 국악 가수를 하고 싶다는 할머니의 얼굴은 주름 가득 순박하고, 자신의 몸 가누기도 힘든 언니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또 그렇게 깊이 아플 수가 없다.
같은 진도에 사는 무당 박영자는 어느 날 신이 내린 강신무이다. 진도에서는 씻김굿을 해야 되지만 글을 몰라 배울 수 없어, 그냥 보통 굿을 하며 농사일과 갯벌 일을 같이 하는 고된 생활을 하고 있다.
굿을 하는 중에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의 영이 몸에 들어와 딸의 고생을 아파하며 사위를 야단치는 데, 그 이야기가 어찌나 절절한지 굿 구경하느라 둘러앉은 동네 할머니와 아낙들이 주름지고 투박한 손으로 자꾸 눈가를 훔친다.
인천에서 황해도 굿을 하는 강신무 박미정은 젊은 무당이다. 어머니 몸에 들어온 신과 자신의 몸신이 사이가 나빠 고생을 했는데, 어머니가 세상 떠나신 후에 화해하는 것보다 살아 계실 때 화해하는 것이 더 쉽다며 자기 경험을 털어놓는다.
아예 굿판에 이불을 갖다 놓고 밤을 새가며 구경하시는 할머니들이 계신 동해안 풍어제 준비 과정을 보는 것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또 다른 맛이다. 상여를 앞뒤로 따라가며 곡을 하다가는 어느 새 어깨를 흔드는 그 신명 또한 있는 그대로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스물 둘 젊은 나이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영이 무당의 몸에 들어와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도저히 편안하게 등을 붙이고 앉아 볼 수 없다. 젊은 나이에 자신이 혼이 된 것을 기막혀 하는 영의 목소리, 피를 나누고 살을 나눈 혈육과의 이별이 너무 애통해 쏟는 눈물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별이 없다.
사람 한 평생에 인연을 맺고 풀고 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영원히 끊지 못하는 가족의 인연은 그 어디에서 시작됐기에 죽음으로도 잘라내지 못해 이리도 가슴 아프게 하는지.
객사한 젊은 아들의 영이 실린 무당의 손을 잡고 무당의 목소리로 아들의 마지막 인사를 듣는 어머니에게 그 이상의 위안이 또 어디 있을까. 다시는 볼 수 없고,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아들의 모습과 아들의 목소리를 온몸으로 받아 전해주는 무당은 그 어머니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맙고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채정례 할머니의 언니 채둔굴 할머니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동생 무당은 언니가 세상 떠난 지 100일 되는 날에 맞춰 씻김굿을 준비한다. 생선을 낚시로 직접 잡아 말려서 찌고, 정성을 다해 필요한 준비를 해나간다. 평생의 업으로 익힌 씻김굿의 모든 순서를 해나가면서 동생 무당은 혼신의 힘을 다한다.
객사한 청년의 영혼을 달래는 굿에서도, 언니를 위한 씻김굿에서도 흰 천을 길게 펼쳐놓고 길 닦음을 한다. 죽은 영혼에게 갈 길을 내어주고 죽은 사람을 전송하는 것이다. 이승의 삶과 저승의 삶이 갈라지는 것이다.
이웃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면서도 평생 하대를 받으며 살아온 채둔굴 할머니의 가슴에는 그 얼굴의 주름살만큼 많은 씁쓸함과 쓸쓸함의 골이 패였겠다. 중풍으로 인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피워 물던 담배 한 대, 이제 그것마저 다 내려놓고 가신 자리에는 영정 사진이 남아 당신의 씻김굿을 구경하고 계신다.
영화는 무당 자신들의 상처와 다른 사람들이 무당을 통해 풀고자 하는 상처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기억의 상처가 가족에게서 비롯되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상처를 씻고 화해하는 일이 또 참으로 어려운데, 그래도 죽어 화해하기보다 살아 화해하기가 쉽다면 마음을 바꾸어 볼 일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곧 주저앉아 버릴까 두렵기도 하다.
우리는 정말 영화의 해설에서처럼 '사랑하는 것도, 상처를 주는 것도 다 가족에게서 배운다.' 사람 관계의 가장 기초 단위이며 원형인 가족은 그래서 우리에게 늘 힘이며 짐이 되고, 울타리이며 또한 거추장스러운 올가미이기도 하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연결을 위해 자신을 내놓는 사람들의 운명은 또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도 결국 이 땅의 목숨이기에 늙고 병들어 세상을 떠난다. 늙음과 죽음은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과 영매(靈媒)를 가리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어쩜 가장 공평한 인간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영매 靈媒 -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2002 / 감독 박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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