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마지막처럼 살기를 소망합니다

잠자리의 죽음을 애도하며

등록 2003.09.20 20:38수정 2003.09.2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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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 거미줄에 걸려있는 잠자리의 형체가 뚜렸하다.
오전 6시 - 거미줄에 걸려있는 잠자리의 형체가 뚜렸하다.김민수
이른 새벽 마당에 나서면 간혹 거미줄이 나를 잡겠다고 호기를 부리다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거미줄이 끊어지면 거미는 남은 줄을 타고 얼른 은신처로 피난을 하죠.


텃밭에 가기 위해 나가는 길이나 산책을 하기 위해서 나가는 길에 거미줄이 걸리는 것은 그냥 '쓰윽!' 치우면 되지만 급한 일로 뛰어나가는데 갑자기 거미줄이 안경에 달라붙고, 머리에 달라붙거나, 하필이면 검은 양복에 지난 밤 걸려들었던 먹이들과 같이 덕지덕지 붙으면 거미 덕분에 모기의 공격을 다소라도 피했다는 고마움은 사라져 버립니다.

텃밭이며 마당에 농약을 치지 않으니 곤충들이 조금 살만 한지 반딧불이도 놀러오고, 거미도 지천에 있습니다. 간혹은 산호랑나비와 제비나비도 놀러 오고 잠자리도 고추잠자리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의 이름 모를 잠자리들이 몰려오니 심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텃밭에 나가기 위해 마당에 나섰다가 거미줄에 걸려있는 잠자리를 보았습니다. 이미 머리는 포식가 거미에게 잘려나갔습니다. 전에도 한번 잠자리가 거미줄에 걸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순식간에 거미줄로 꽁꽁 묶어 버리는데 불과 5초도 안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푸른 창공을 비상하던 나비.
그러나 순식간에 푸른 창공을 날아다니던 자유를 잃어버리고, 거미의 먹이가 됨으로써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그것이 자연의 질서이기에 그냥 순리대로 놔두는 것이 좋겠지요.


오후 1시 - 잠자리의 날개만 남아 적막하다.
오후 1시 - 잠자리의 날개만 남아 적막하다.김민수
그리고 대략 7시간쯤 지나 다시 거미줄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 곳에는 날개만 남아있습니다.

그냥 그렇게 잠자리의 죽음에 대해서 초연하게 지나가고 싶었는데 잠자리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서 가는 존재. 그리고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사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이 아닌지요. 그러면서도 항상 '죽음'이라는 것이 자신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기도 하는 망각의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 자화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젊다는 40대 초반. 그 동안 많은 친구들과 후배들을 먼저 보냈습니다. 고교 졸업 후 꼭 한번은 만나고 싶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친구였고, 대학에서도 문학을 전공했던 친구였는데 오랫동안 만나질 못했습니다.

30대 후반을 살던 어느 날 동문주소록이 담긴 우편물이 왔지요.
얼마나 반갑던지 친구들의 소개들을 보며 '아, 이 친구 공부 잘하더니 ○○이 되었네. 이 친구는 공부는 못했어도 의리 하나 끝내 주더니 역시 잘 됐어.' 이런 저런 학창시절의 추억을 더듬으며 동문주소록이 담긴 수첩을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있었습니다.

간혹 <근조>라고 쓰인 동문들의 사진이 나왔습니다.
'벌써?'
그리고 내가 찾고 싶어하던 친구를 찾았을 때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조>라고 쓰여진 글자 위에 그 친구는 앨범사진을 찍을 때의 그 모습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슬펐습니다.
가장 친하게 지냈던 고교동창도 얼마 전에 심장마비로 이 세상을 등졌는데 내가 찾던 그 친구도 그렇게 세상과 작별을 했다니 믿어지질 않았죠.

잠자리의 초라한 모습은 이런 생각들을 끌어 올렸고, 주변에서 얘기치 않게 세상을 등진 이들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그 종착점은 '나도' 그 속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훨훨 푸른 하늘을 향해 비상하며 온 하늘과 땅이 다 내 것일 것 같은 그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오늘의 삶을 마지막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됩니다.

늘 내일이 있다고 자위하면서 오늘의 일들을 미뤄오고, 또 다시 기회가 있으려니 하고 지금의 일들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면 아이들에게, 아내에게, 부모님에게, 친지들과 친한 친구들에게, 나를 아는 지인들에게 어떤 말을 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해집니다.
'느릿느릿', '천천히'살자던 마음이 흔들립니다.
왜 그렇게 정리해야 할 것이 많은지, 왜 그리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두런두런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사랑하며 살기도 바쁜 세상이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그 동안 나의 하는 일로 인해서 젊은 나이에도 장례식을 여러 번 집례를 했습니다. 가장 슬펐던 장례식은 20대 젊은 나이로 객사를 했던 이였는데 살아 생전에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차갑게 식어진 그의 몸에서 세상살이가 얼마나 그에게 고단했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열하는 그의 누님은 가난했지만 참으로 마음이 따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누이를 닮았다면 그 역시도 참으로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을텐데 어느 날 주검으로 가족의 품에 안겼고 한 줌의 재가되어 어디에선가 훌훌 뿌려졌지요.

나에게 주어진 이 땅의 시간이 있을 것이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나는 모릅니다. 살아온 날들보다 짧을 수도 있고, 아니면 살아온 날들 보다 길 수도 있고,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할 때 그 시간이 다할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이 가을에 매 순간 마지막처럼 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다시금 '죽음'이라는 화두룰 붙들게 해준 잠자리에게 애도를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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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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