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탄 남자라도 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까탈이의 세계여행] 라오스 여행기 ⑥ - 팍세, 참파삭

등록 2003.09.23 01:10수정 2003.09.2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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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트럭을 싣고 강을 건너는 배. 세 대의 조각배를 이어 붙인후 위에 나무판자를 깔았다.
픽업트럭을 싣고 강을 건너는 배. 세 대의 조각배를 이어 붙인후 위에 나무판자를 깔았다.김남희
여기는 라오스 남부 도시 사반나켓, 그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사야멍쿤 게스트 하우스 105호. 중국과의 국경도시 보텐에서 여행을 시작한 이후 북부도시들과 루앙프라방, 방비엥, 그리고 수도 비엔티엔, 락사오를 거쳤으니 라오스 국토를 종단하며 남부로 내려온 셈이다. 사반나켓은 지금까지 거쳐온 곳들과는 많이 다르다.

베트남, 태국과의 무역으로 번성한 곳이라더니 도시 곳곳에 돈이 흐르는 흔적들이 보인다. 가게마다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수도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이고, 식당들마다 현지인 손님으로 가득 찼다.


마을에는 성당도 있고, 중국어 간판을 단 가게, 베트남식 이름의 건물들이 꽤 많다. 이곳에서 만난 여자들은 무능력하고 게으른 라오 남자들보다는 생활력 강한 중국이나 베트남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이 도시의 규모와 소비수준에 어긋나는 단 한 가지는 이 도시에 피시방이라고는 한 곳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라오스 최악의 시설이다. 속도는 느려터진데다, 한글이 지원되는 건 두 대 뿐이고, 그나마 잦은 다운으로 속을 썩인다. 편지 몇 통 읽고, 답장 한 통 보내면 한 시간이 그냥 간다. 라오스 인터넷의 '인'은 '참을 인'자라고 중얼거리며 피시방 문을 들어서면 선방이 따로 없다. 모니터 화면 앞에서 저절로 참선으로 들어서게 되니….

사반나켓에서 이틀을 쉰 후 팍세로 떠난다. 늦은 아침을 먹고 짐을 꾸려 터미널로 가니 12시 버스가 그새 시간표가 바뀌었는지 1시 출발이란다. 1시간을 넘게 기다리니 다시 출발이 30분 지연된다.

한 시 반에서야 버스가 움직인다 싶었더니 정비소로 이동, 타이어 두 개 가는 데 다시 한 시간 반을 소모한다. 결국 3시가 넘어 출발한 버스는 길 모퉁이마다 서며 시간을 보낸다. 버스가 설 때마다 온갖 꼬치구이, 과일, 음료 등을 들고 와 파는 사람들로 버스안팎은 그야말로 사람의 산, 사람의 바다를 이룬다.

라오스에서는 버스가 설 때마다 이렇게 먹거리를 들고 달려오는 '이동식 휴게소'로 인해 굶거나 목말라 죽는 일은 없다. 고객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오는 밀착형 서비스다. 버스를 타고 라오스 곳곳을 다니다 보면 종종 "OO 국가의 도움으로 이 건물을 세움"이라고 쓰인 간판을 자주 보게 된다.


이끼가 가득 낀 돌계단.
이끼가 가득 낀 돌계단.김남희

건물 뿐 아니라 다리나 학교, 병원, 문화재 보수 등 다방면에 걸쳐 국제사회의 손길이 뻗어 있는데 가장 자주 보이는 입간판의 주인공은 일본이다. 이곳에서도 국제사회의 원조에 인색한 한국의 모습은 예외가 아니다. 단순한 예를 들자면 라오스에 파견된 국제협력단원만 해도 우리 나라는 11명, 일본은 600명이라고 한다.

언제쯤 우리도 받았던 기억을 잊지 않고 되갚으며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버스는 7시가 넘어 캄캄해진 후에야 팍세에 도착했다. 론니플래닛 가이드북에 나온 폰사반 호텔을 찾아가니 이건 완전히 귀곡산장이다. 창문도 없는 네모난 방-방이라기보다는 상자의 개념에 가깝다-에 가구는 달랑 침대 하나, 화장실은 공용.


방바닥과 침구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데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 도시에 숙소라고는 이곳 하나뿐이라면 모를까, 도저히 이곳에서 자고 싶지 않다. 길 건너 란캄 호텔에 가니 1$ 차이인데 방의 격이 다르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거리를 둘러보니 한 눈에 보기에도 이 도시는 매력 없는 도시다. 보기 흉한 콘크리트 건물들과 베트남, 중국, 태국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국적불명의 문화. 마음에 들지 않는다.

피시방에 들르니 반가운 메일이 와 있다. 에이미가 돌아왔단다. 지난 한 달간 라오스를 함께 여행한 이 영국친구는 돈이 떨어지는 바람에 태국으로 돈을 찾으러 넘어갔는데-라오스에는 현금지급기가 없다- 오늘 돌아왔다는 편지가 온거다.

귀곡산장 201호 문을 두드리니 에이미가 문을 열며 나를 꼭 끌어안는다.
"너무도 보고 싶었어. 이렇게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워."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국수로 아침을 먹고 방에서 수다를 떨며 쉰다.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지만 마음에 맞는 동행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에이미는 바로 내 수첩 "최고의 여행 친구" 목록에 상위로 오를 만한 친구이다. 올해 우리나이 스물 한 살인 에이미는 6개월의 아시아 여행을 위해 대학 입학도 미룬 채 지난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힌두사원으로 출발한 왓 푸는 곳곳에 힌두신화의 주인공들이 조각이나 부조로 남아있다.
힌두사원으로 출발한 왓 푸는 곳곳에 힌두신화의 주인공들이 조각이나 부조로 남아있다.김남희

당연히 지독한 짠순이여서 늘 가장 싼 숙소에서 머물고, 대부분의 끼니를 거리의 노점에서 해결하며 여행을 한다. 그래서 가끔은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루앙 프라방에서의 일이다. 한때 '빵순이'로 불렸을 정도로 빵을 좋아하는 나에게 라오스 최고의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는 루앙 프라방은 천국이나 다름 없었다.

문제는 가격. 거리의 노점에서 국수나 볶음밥을 먹으면 한 끼에 우리돈 300-500원이면 되는데 반해, 바게트 샌드위치는 최소 800-1000원은 줘야 먹을 수 있다. 짠순이 에이미는 바게트 샌드위치가 비싸다며 하루 두 끼는 꼭 시장의 노점에서 해결을 하고는 했다.

같이 다니는 처지에 혼자만 비싼 음식 먹으러 갈 수도 없어 에이미를 따라 노점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내 머릿속은 늘 두고 온 바게트 샌드위치 생각으로 어지러웠다. 나중에는 바게트 샌드위치가 꿈에도 나타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때 내 소망은 세 끼 연속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는 거였다.

결국 나중에는 "은행 갔다 올게." "피시방 갔다 올게." 따위의 핑계를 대고 혼자 빠져나와 바게트 샌드위치를 시켜먹는 배반행위를 연출하고야 말았다. 요란하지 않고, 감정의 기복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에이미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남다르고 생각이 깊어 가끔씩 나를 감동시키거나 부끄럽게 만들곤 한다.

역시 루앙 프라방에서의 일이다. 친구가 보낸 책을 기다리느라 나는 하루 이틀 더 그곳에 남고, 에이미 혼자 방비엥으로 먼저 떠나게 되었다. 그날 밤 내 침대 위에는 오리온 초코파이 한 상자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언젠가 가게에 진열된 초코파이를 가리키며 "나, 저 과자 참 좋아해. 근데 여행다니면서는 비싸서 못 사먹었어"라고 말한 걸 기억한 에이미가 우리가 잠시 헤어지게 되자 선물로 사다놓은 거였다.

약간의 과장이 허용된다면, 그날 밤 나는 눈물 젖은 초코파이에 목이 메어 밤을 세웠다.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에이미는 수다의 봇물이 터졌다. 그동안 태국에서 있었던 일이며 만났던 사람들 얘기를 신나게 늘어놓는다. 에이미에게 묻는다.

"너, 지난 번에 약속한 백만장자 남자친구 찾았어?"
한숨을 내쉬며 대답하는 에이미.
"미안해. 이번에도 실패야.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면 꼭 성공할게."

사원에서 불공 드리는 여인들.
사원에서 불공 드리는 여인들.김남희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는다. 늘 우리 덩치만 한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싸구려 숙소와 싸구려 식당을 전전하며 여행하는 우리들 신세를 한탄하던 어느날. 에이미가 그러는 거였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해변에서 백만장자를 낚을 테니 우리 그때는 폼 나게, 스타일 있게 여행하자."
"그래, 우리도 한 번 배낭족이 아니라 수트케이스 끌면서 우아하게 다니는 '수트케이스족'이 되보자구."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자립심 강하고, 생각이 곧은 에이미는 왕자의 키스를 기다리며 유리관에 누워있는 공주가 결코 되지 못한다.
나? 나야, 백마 아니라 당나귀 탄 남자라 해도 온다는 보장만 있으면 바로 관 짜서 드러눕는다.

다음날 아침, 6시 반에 눈을 뜨니 또 비가 내린다. 결국 오토바이를 빌려 참파삭에 다녀오기로 한 계획을 취소한다. 방비엥에서 에이미가 운전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 마을들을 돌아다니던 '폭주족'의 기억이 생생한 우리로서는 아쉽지만 '빗속 운전'의 부담으로 포기하고 만다.

숙소 1층 식당에서 고춧가루를 듬뿍 친 국수로 아침을 먹고 방에서 쉬다가 11시에 툭툭을 타고 버스터미널로 간다. 참파삭행 툭툭은 중간에 짐을 실으며 믿을 수 없는 수준의 기술을 보여준다.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짐이 이 작은 픽업트럭에 실릴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여그 이건 쩌 웃마을 김서방네."
"요거 쪼매 실어서 배서방네 갖다달랑께."

수 많은 짐들이 사람 없이도 잘도 오간다. 하지만 짐을 싣고 내리느라 트럭은 엄청난 시간을 소모한다. 오늘 안에 참파삭에 도착하기나 하는 건지, 돌아올 때는 또 어떻게 와야하는지 걱정이 앞선다.

짐 싣느라 시간 다 보낸 트럭이 이번에는 배를 기다리느라 강변에서 또 장시간 대기다. 말도 안 통하는 트럭 아저씨께 "도대체 언제 가는 거예요?" 답답해하며 소리치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에이미가 이런다.

"남희야, 이 나라 국명인 'LAO PDR'의 PDR이 뭐의 약자인지 알아?"
웬 뜬금 없는 소리?
"그거야,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의 약자 아니야?"
"아니, 'Please, Don't Rush'의 약자래."

그녀와 나는 함께 웃지만 내 얼굴은 발갛게 달아오른다. 트럭은 3시 반에 참파삭 왓푸 앞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팍세에서 30km 떨어진 이곳까지 오는 데 꼭 4시간 걸렸다! 왓 푸로 들어서니 가이드북에 650킵(우리돈 700원)이라고 나온 입장료가 그새 3$로 올랐다.

게다가 5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한 시간 밖에 못 보니 둘이서 3$만 내면 안 되겠느냐고 사정을 해보지만 꿈쩍 않는다. '전시관'이라고 새로 지은 건물 앞에는 또 일본 정부의 원조로 세웠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다.

결국 입장료 다 내고 들어선다. 가는 비가 내리는 데다가 날도 저물어 가는 늦은 오후라 사원 안에는 아무도 없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며 바라보는 폐허는 비에 젖어 더 쓸쓸하게 보인다.

비에 젖은 참파삭 왓 푸.
비에 젖은 참파삭 왓 푸.김남희

캄보디아 뿐 아니라 태국과 미얀마, 베트남까지 세력을 뻗으며 번성했던 크메르왕국의 자취가 생생한 이 사원은 초기에는 힌두사원으로 쓰이다가 불교사원으로 변한 곳이다. 그래서 사원 곳곳에는 여전히 비슈누나 시바, 가네사, 칼리 같은 힌두신화의 인물들이 불상과 나란히 서 있다.

"여기 참 좋다. 오기를 잘 했네."
"그렇지? 나도 이곳이 정말 마음에 들어."
"생각보다 별로야"라는 배낭족들의 평이 많아 올까말까 잠시 갈등했던 우리는 오기를 잘했다며 행복해 한다.

고즈넉한 그곳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돌아갈 일이 걱정되어 5시쯤 우리는 사원을 나선다.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8km 떨어진 선착장까지 걸어가기에는 시간도 늦고,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

우리는 아무 집에나 들어가 오토바이로 선착장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한다. 한 총각이 가격도 묻지 않고 오토바이를 끌고 나온다. 뒤에 올라타니 오토바이는 바로 빗속을 질주한다. 선착장에 도착해 배에 오르니 배는 손님을 기다리느라 다시 30분 넘게 지체한다.

이제는 강을 건너 어떻게 팍세로 돌아가느냐의 문제가 남았다. 가격 흥정이나 섭외를 전담하는 내가 다시 배 안을 둘러보며 마음 좋게 생긴 운전사를 찾는다. 팍세까지 태워다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좌석은 이미 찼고, 트럭 뒤 짐칸만 가능한데 괜찮겠느냐고 되묻는다.

"괜찮고 말고요! 감사합니다."
짐칸에 올라타니 거위 두 마리가 묶여 있다. 강을 건너 비포장 도로에 내려서니 트럭은 속도를 올리며 달린다. 거위 두 마리와 우리는 서로 번갈아가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지며 비명을 내지른다.

"으악!" "꽤꽥!" "악!" " 꽤꽥!"
그 사이 비가 멈추고 산 사이로 구름을 헤치고 손톱달이 떠올랐다. 별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공기는 맑고 깨끗하다. 도로 양쪽으로는 반딧불이들이 반짝거리며 날아오른다. 에이미와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함께 노래를 부른다.

그녀는 영어로, 나는 한국어로 제각기 다른 노래를. 우리들 노랫소리가 조용한 밤의 거리를 흔들고 있다.

팍세로 돌아오는 트럭을 같이 타고 온 승객 거위 두 마리./불상 앞에 놓인 작은 꽃다발.
팍세로 돌아오는 트럭을 같이 타고 온 승객 거위 두 마리./불상 앞에 놓인 작은 꽃다발.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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