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에서 불공 드리는 여인들.김남희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는다. 늘 우리 덩치만 한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싸구려 숙소와 싸구려 식당을 전전하며 여행하는 우리들 신세를 한탄하던 어느날. 에이미가 그러는 거였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해변에서 백만장자를 낚을 테니 우리 그때는 폼 나게, 스타일 있게 여행하자."
"그래, 우리도 한 번 배낭족이 아니라 수트케이스 끌면서 우아하게 다니는 '수트케이스족'이 되보자구."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자립심 강하고, 생각이 곧은 에이미는 왕자의 키스를 기다리며 유리관에 누워있는 공주가 결코 되지 못한다.
나? 나야, 백마 아니라 당나귀 탄 남자라 해도 온다는 보장만 있으면 바로 관 짜서 드러눕는다.
다음날 아침, 6시 반에 눈을 뜨니 또 비가 내린다. 결국 오토바이를 빌려 참파삭에 다녀오기로 한 계획을 취소한다. 방비엥에서 에이미가 운전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 마을들을 돌아다니던 '폭주족'의 기억이 생생한 우리로서는 아쉽지만 '빗속 운전'의 부담으로 포기하고 만다.
숙소 1층 식당에서 고춧가루를 듬뿍 친 국수로 아침을 먹고 방에서 쉬다가 11시에 툭툭을 타고 버스터미널로 간다. 참파삭행 툭툭은 중간에 짐을 실으며 믿을 수 없는 수준의 기술을 보여준다.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짐이 이 작은 픽업트럭에 실릴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여그 이건 쩌 웃마을 김서방네."
"요거 쪼매 실어서 배서방네 갖다달랑께."
수 많은 짐들이 사람 없이도 잘도 오간다. 하지만 짐을 싣고 내리느라 트럭은 엄청난 시간을 소모한다. 오늘 안에 참파삭에 도착하기나 하는 건지, 돌아올 때는 또 어떻게 와야하는지 걱정이 앞선다.
짐 싣느라 시간 다 보낸 트럭이 이번에는 배를 기다리느라 강변에서 또 장시간 대기다. 말도 안 통하는 트럭 아저씨께 "도대체 언제 가는 거예요?" 답답해하며 소리치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에이미가 이런다.
"남희야, 이 나라 국명인 'LAO PDR'의 PDR이 뭐의 약자인지 알아?"
웬 뜬금 없는 소리?
"그거야,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의 약자 아니야?"
"아니, 'Please, Don't Rush'의 약자래."
그녀와 나는 함께 웃지만 내 얼굴은 발갛게 달아오른다. 트럭은 3시 반에 참파삭 왓푸 앞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팍세에서 30km 떨어진 이곳까지 오는 데 꼭 4시간 걸렸다! 왓 푸로 들어서니 가이드북에 650킵(우리돈 700원)이라고 나온 입장료가 그새 3$로 올랐다.
게다가 5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한 시간 밖에 못 보니 둘이서 3$만 내면 안 되겠느냐고 사정을 해보지만 꿈쩍 않는다. '전시관'이라고 새로 지은 건물 앞에는 또 일본 정부의 원조로 세웠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다.
결국 입장료 다 내고 들어선다. 가는 비가 내리는 데다가 날도 저물어 가는 늦은 오후라 사원 안에는 아무도 없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며 바라보는 폐허는 비에 젖어 더 쓸쓸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