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한 번 먹으려다 사람 죽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죠? 배터리로 이젠 그만 잡읍시다.김규환
미꾸라지, 망둥이는 보이지 않고 붕어만 둥둥
우리도 얼마 전까지는 고향에서 '밧데리'로 고기를 잡았다. 면사무소에서 멀어 경찰이나 면 서기들이 단속하기 힘든 먼 거리다. 더군다나 비포장도로니 누가 신고를 해도 금방 두어 그릇 잡아 집으로 돌아와 버리니 걸릴 일도 거의 없었다.
11년 전 여름이었다. 하늘아래 가장 높고 먼 끝 마을에 살았던 완전 곱슬머리 병천이가 친구 2명을 데리고 휴가를 얻어 시골에 왔다. 우리 집으로 오던 길에 학교 점방에 들러 막걸리 세 병을 사오라고 주문을 했다. 대낮이라지만 분위기를 맹숭맹숭 밋밋하게 지나칠 수 없었다.
고향에서 보내는 일이란 대개 물고기 잡아 매운탕이나 어죽(魚粥) 끓여 밤새 술 잔 기울이는 게 정형화된 프로그램이었으니 우리 마을로 내려오라고 해서 미리 충전해뒀던 '밧데리'를 지고 마을 앞 냇가로 나갔다.
병천이가 먼저 '밧데리'를 어깨에 지고 물에 들어갔다. 나머지 두 친구는 고기 채에서 양동이(이하 바케스)에 털어 넣기도 하고 '바케스'를 번갈아 들고 다녔다.
“지이익~”
“찌이익~”
깊지 않은 물에 '밧데리'를 담그고 스위치를 누르자 고기가 하얗게 뜬다. 큰 놈 작은 놈 가리지 않고 배를 위로 드러내 뒤집어 지며 둥둥 뜨는데 한 번 작업에 수십 마리가 채에 걸려든다. 워낙 고기가 많아 미처 다 건지지 못하매 손으로 잡아넣느라 네 명은 쉴 틈이 없었다.
30여 분 만에 소죽 퍼주던 '바케스'로 절반이나 잡았다. 하지만 붕어가 대부분이었고 망둥이, 미꾸라지 몇 마리 들어 있을 뿐이다. 큰 저수지를 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급속도로 오염이 진행된 탓인지 우리가 원하던 고기는 잡히지 않는다. 평소에는 참붕어가 잡히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그날은 모두 주워 담았다.
한 녀석은 완도, 한 놈은 순천 출신이었는데 '밧데리'로는 처음이라며 이렇게 수월하게 고기를 잡는다는 사실을 알고 마냥 신기해했다.
“병천아, 이 골짜기에서 이제 그만 잡고 니네 골짜기로 가자.”
“왜?”
“물이 더러워서 고기 맛이 없을 것 같다야. 미꾸라지가 많아야 되는데 맨 붕어뿐이니 원….”
“알았어.”
흙탕물에 바짓가랑이가 죄다 젖은 채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마저 10여 분 더 잡고 들판을 가로질러 다른 계곡에 접어들었다.
애초 내가 살던 양지마을과 병천이네 평지 마을은 계곡 줄기가 다르다. 오염원이 거의 없는 그 쪽 냇가는 너비 폭도 훨씬 좁다. 수위도 낮아 보(湺)가 막아진 곳을 빼곤 발목을 덮을 뿐이다. 수초(水草)도 별로 자라지 않아 불법 어로행위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소쟁이’, ‘참난쟁이’를 지나 고기를 잡으며 물길을 따라 500여 미터 오르다가 ‘검덕굴’ 입구 ‘감난쟁이’에 이르러 주위를 샅샅이 뒤지듯 '밧데리'로 지져 나갔다. 고기는 양지 골짜기만큼 없었고 크기도 작다. 그래도 민물고기는 크기와 맛이 반비례 하니 작은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잡아넣었다.
다리 하나가 있고 보 주위에 둥지 틀 듯 자리를 잡았다. 본격적으로 잡아나가기로 한 것이다. 새비(토하 土蝦)가 후두둑 튀고 징거미가 쭉 뻗는다. 메기 작은 것 쏘가리 몇 마리도 눈을 즐겁게 한다. 지름장어는 관심 밖이다.
고기 담긴 '바케스'를 들여다보니 아까 잡은 것까지 합쳐 2/3나 차 있다.
“막걸리나 한 잔하며 쉬었다 하자.”
“그래, 아까 초고추장 갖고 왔지?”
“뭐냐 거시기 이쪽에서 잡은 걸로 망둥이 몇 마리 꺼내봐라~. 난 돌미나리 좀 뜯어 올게.”
잿빛 얼룩이 망둥이는 삼식이 삼순이를 닮았다. 대가리가 절반을 차지하고 몸통은 작다. 고기비늘도 없어 비린내도 덜하다. 아가미와 지느러미도 여느 고기와 비교가 안 되게 무척 크다. 가분수형의 망둥이는 횟감으로 최고다.
양쪽 아가미에 손을 넣고 쭉 잡아채듯 당겨 훑으면 빨간 심장이 벌렁벌렁 움직이고 노란 알이 보인다. 부레와 창자, 쓸개만 떼어 내고 물에 살살 흔들어 올려놓아도 마지막 숨이 오래도록 끊어지지 않고 살아있다.
이가 좋을 때는 한 마리를 통째 초고추장에 푹 찍어 냇가에 자라는 미나리를 뿌리째 한 줌 싸서 넣어 씹으며 술 한 잔 마시면 쫄깃쫄깃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완도, 순천 '촌놈'들과 함께 한 자리라 휴대용 칼로 서너 토막 내서 잘라 줬다. 술 한 잔 나누니 반말도 쉽게 나온다.
“야! 촌놈들 니들 이거 처음 먹어보지?”
“응, 우리 동네에선 이렇게는 잘 안 먹어.”
“니기들 정말 가짜 촌놈들이구나. 야! 병천아, 얘들 교육 좀 제대로 시켜라. 이것들이 무늬만 촌닭이지 고기 잡는 것도 모르고 쳐 묵을 줄도 모른단 말이다.”
“허허. 규환이 말이 맞다. 할 줄 아는 게 없어. 삼겹살이나 먹을 줄 알지 서울서 같이 놀면 얼마나 재미없는 줄 아냐.”
“성님 많이 가르쳐 주십쇼.”
“오냐, 니기들 여기 5일 동안 머무른다 했지? 날마다 소주 대병 하나만 들고 내려오면 내가 병천이랑 니들을 순수 촌놈으로 길들여 주마.”
홈그라운드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기를 팍팍 죽여 나갔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