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잡다 끌려가고, 기절했다 깨어난 사연

배터리로 물고기 잡다 기절한 '가짜 촌놈들' 이야기

등록 2003.09.29 17:46수정 2003.09.29 19:4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망둥인지, 메기인지 모르겠습니다. 고기 잡는 방법을 선사시대 때 부터 한 번 훑어 볼 작정입니다. 기대바랍니다.
망둥인지, 메기인지 모르겠습니다. 고기 잡는 방법을 선사시대 때 부터 한 번 훑어 볼 작정입니다. 기대바랍니다.
아버지를 신고한 못된 자식 놈


10년 전 경기도 가평에서 일어난 일이다. 고기 잡다가 경찰서에 붙들려간 사건인데 당시 신문 사회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사건의 개요는 대강 이렇다. 배터리(이하 밧데리)를 짊어지고 냇가를 지져 한 참 물고기를 건지던 중 느닷없이 경찰이 나타나 다짜고짜 잡아서 가둔다. 자식 놈 몸이 허하여 보신시켜 주려다 붙들려 간 것이다. 두 손 싹싹 빌고 선처를 호소했지만 허사였다.

문제는 고기 잡은 아버지의 부정(父情)에 대한 자식 놈의 정면 부정(不定)에 있었다. 철저한 민주시민 정신의 발로가 빚은 비극이었다.

평소 신고정신이 투철한 젊은이가 면사무소에 일을 보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냇가에 '밧데리'로 불법 어로(漁撈)를 하고 있어 누구인지도 확인도 않고 곧바로 지서(支署)에 신고를 한다.

'밧데리'로 지지면 고기 씨가 마르고 기형마저 생긴다는 걸 잘 아는 고발인은 지서(파출소)에 신고하면 보상금까지 준다하니 곧장 집으로 돌아와 전화로 위치 설명과 인상착의를 낱낱이 보고해 올렸다. 오토바이를 탄 순경이 출동하여 현행범으로 체포해 실어가 버리고 만다.


청년은 저녁때가 되어도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자 부랴부랴 수소문을 해본다. 약주를 드시러 가셨는지 궁금해 주막을 들러보기도 하고 마을 방송을 해보았지만 감감 무소식이었다. 나중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와 받고 보니 아버지는 가평경찰서에 잡혀가 있었다.

이것 한 번 먹으려다 사람 죽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죠? 배터리로 이젠 그만 잡읍시다.
이것 한 번 먹으려다 사람 죽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죠? 배터리로 이젠 그만 잡읍시다.김규환
미꾸라지, 망둥이는 보이지 않고 붕어만 둥둥

우리도 얼마 전까지는 고향에서 '밧데리'로 고기를 잡았다. 면사무소에서 멀어 경찰이나 면 서기들이 단속하기 힘든 먼 거리다. 더군다나 비포장도로니 누가 신고를 해도 금방 두어 그릇 잡아 집으로 돌아와 버리니 걸릴 일도 거의 없었다.


11년 전 여름이었다. 하늘아래 가장 높고 먼 끝 마을에 살았던 완전 곱슬머리 병천이가 친구 2명을 데리고 휴가를 얻어 시골에 왔다. 우리 집으로 오던 길에 학교 점방에 들러 막걸리 세 병을 사오라고 주문을 했다. 대낮이라지만 분위기를 맹숭맹숭 밋밋하게 지나칠 수 없었다.

고향에서 보내는 일이란 대개 물고기 잡아 매운탕이나 어죽(魚粥) 끓여 밤새 술 잔 기울이는 게 정형화된 프로그램이었으니 우리 마을로 내려오라고 해서 미리 충전해뒀던 '밧데리'를 지고 마을 앞 냇가로 나갔다.

병천이가 먼저 '밧데리'를 어깨에 지고 물에 들어갔다. 나머지 두 친구는 고기 채에서 양동이(이하 바케스)에 털어 넣기도 하고 '바케스'를 번갈아 들고 다녔다.

“지이익~”
“찌이익~”

깊지 않은 물에 '밧데리'를 담그고 스위치를 누르자 고기가 하얗게 뜬다. 큰 놈 작은 놈 가리지 않고 배를 위로 드러내 뒤집어 지며 둥둥 뜨는데 한 번 작업에 수십 마리가 채에 걸려든다. 워낙 고기가 많아 미처 다 건지지 못하매 손으로 잡아넣느라 네 명은 쉴 틈이 없었다.

30여 분 만에 소죽 퍼주던 '바케스'로 절반이나 잡았다. 하지만 붕어가 대부분이었고 망둥이, 미꾸라지 몇 마리 들어 있을 뿐이다. 큰 저수지를 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급속도로 오염이 진행된 탓인지 우리가 원하던 고기는 잡히지 않는다. 평소에는 참붕어가 잡히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그날은 모두 주워 담았다.

한 녀석은 완도, 한 놈은 순천 출신이었는데 '밧데리'로는 처음이라며 이렇게 수월하게 고기를 잡는다는 사실을 알고 마냥 신기해했다.

“병천아, 이 골짜기에서 이제 그만 잡고 니네 골짜기로 가자.”
“왜?”
“물이 더러워서 고기 맛이 없을 것 같다야. 미꾸라지가 많아야 되는데 맨 붕어뿐이니 원….”
“알았어.”

흙탕물에 바짓가랑이가 죄다 젖은 채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마저 10여 분 더 잡고 들판을 가로질러 다른 계곡에 접어들었다.

애초 내가 살던 양지마을과 병천이네 평지 마을은 계곡 줄기가 다르다. 오염원이 거의 없는 그 쪽 냇가는 너비 폭도 훨씬 좁다. 수위도 낮아 보(湺)가 막아진 곳을 빼곤 발목을 덮을 뿐이다. 수초(水草)도 별로 자라지 않아 불법 어로행위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소쟁이’, ‘참난쟁이’를 지나 고기를 잡으며 물길을 따라 500여 미터 오르다가 ‘검덕굴’ 입구 ‘감난쟁이’에 이르러 주위를 샅샅이 뒤지듯 '밧데리'로 지져 나갔다. 고기는 양지 골짜기만큼 없었고 크기도 작다. 그래도 민물고기는 크기와 맛이 반비례 하니 작은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잡아넣었다.

다리 하나가 있고 보 주위에 둥지 틀 듯 자리를 잡았다. 본격적으로 잡아나가기로 한 것이다. 새비(토하 土蝦)가 후두둑 튀고 징거미가 쭉 뻗는다. 메기 작은 것 쏘가리 몇 마리도 눈을 즐겁게 한다. 지름장어는 관심 밖이다.

고기 담긴 '바케스'를 들여다보니 아까 잡은 것까지 합쳐 2/3나 차 있다.

“막걸리나 한 잔하며 쉬었다 하자.”
“그래, 아까 초고추장 갖고 왔지?”
“뭐냐 거시기 이쪽에서 잡은 걸로 망둥이 몇 마리 꺼내봐라~. 난 돌미나리 좀 뜯어 올게.”

잿빛 얼룩이 망둥이는 삼식이 삼순이를 닮았다. 대가리가 절반을 차지하고 몸통은 작다. 고기비늘도 없어 비린내도 덜하다. 아가미와 지느러미도 여느 고기와 비교가 안 되게 무척 크다. 가분수형의 망둥이는 횟감으로 최고다.

양쪽 아가미에 손을 넣고 쭉 잡아채듯 당겨 훑으면 빨간 심장이 벌렁벌렁 움직이고 노란 알이 보인다. 부레와 창자, 쓸개만 떼어 내고 물에 살살 흔들어 올려놓아도 마지막 숨이 오래도록 끊어지지 않고 살아있다.

이가 좋을 때는 한 마리를 통째 초고추장에 푹 찍어 냇가에 자라는 미나리를 뿌리째 한 줌 싸서 넣어 씹으며 술 한 잔 마시면 쫄깃쫄깃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완도, 순천 '촌놈'들과 함께 한 자리라 휴대용 칼로 서너 토막 내서 잘라 줬다. 술 한 잔 나누니 반말도 쉽게 나온다.

“야! 촌놈들 니들 이거 처음 먹어보지?”
“응, 우리 동네에선 이렇게는 잘 안 먹어.”
“니기들 정말 가짜 촌놈들이구나. 야! 병천아, 얘들 교육 좀 제대로 시켜라. 이것들이 무늬만 촌닭이지 고기 잡는 것도 모르고 쳐 묵을 줄도 모른단 말이다.”
“허허. 규환이 말이 맞다. 할 줄 아는 게 없어. 삼겹살이나 먹을 줄 알지 서울서 같이 놀면 얼마나 재미없는 줄 아냐.”
“성님 많이 가르쳐 주십쇼.”
“오냐, 니기들 여기 5일 동안 머무른다 했지? 날마다 소주 대병 하나만 들고 내려오면 내가 병천이랑 니들을 순수 촌놈으로 길들여 주마.”

홈그라운드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기를 팍팍 죽여 나갔다.

“휴-.”

큰 일 날 수 있습니다. 특히 물 속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그 촌놈들을 못 본 지 꽤 됐습니다. 병천이도 그 뒤로 한 번 보고 말았군요. 이번 추석이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냥 왔군요.
큰 일 날 수 있습니다. 특히 물 속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그 촌놈들을 못 본 지 꽤 됐습니다. 병천이도 그 뒤로 한 번 보고 말았군요. 이번 추석이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냥 왔군요.
'무늬만 촌놈들' 전기에 감전되어 기절하다

낮술이 거나해지자 담배를 한 대씩 꼬나 물고 다리에 걸터앉아 다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곱슬머리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한 번 해볼게.”
“어어~ 그거 아무나 하는 것 아닌데….”
“괜찮아 아까 하는 것 봤잖아.”
“그럼 조심히 해라. '밧데리'로 지질 때는 가까이 가지 말고 손 조심해.”
“알았어.”

완도 놈이 들쳐 메고 순천 촌놈이 '바케스'를 들고 따른다. 물에 담가 스위치를 누르니 “지익~직” 소리를 낸다.

“한 마리 잡았다!”

피라미를 잡은 모양이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가. 멀리서 지켜보니 자세가 갖춰져 가고 있었다. 친구와 못다 한 이야기를 더 이어갔다.

그런데 “악!” 하는 외마디 비명이 들리고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촌놈들이 장난치는 줄 알고 “야 너희들 장난치지 마”하고는 태연한 척 했다.

“얼른 와 봐. 애가 죽은 것 같아.”
“뭐?”

다가가서 보니 좀전까지 밧데리를 지고 있던 완도 놈이 물 위에 뻗어 있다. 사람이 바뀐 것이다. 숨도 쉬지 않는다. 흔들어 깨워도 의식불명 상태다.

“야, 기절했다.”
“얼른 그늘 밑으로 들고 가자.”

옷을 벗어 깔고 편하게 뉘였다.

“얌마 일어나봐. 일어나라니까.”

흔들고 주물러 주자 7~8분 여 만에 깨어나서 대뜸 하는 말이 가관이다.

“막걸리 다 묵었냐?”
“한 잔 남았거든. 마저 마실래?”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무늬만 촌놈'인 두 녀석이 고기를 잡다가 맨 처음 밧데리를 지고 있던 완도 친구가 한 번 해보겠다고 빡빡 우기는 순천 친구의 성화에 바꿔서 하게 되었단다. 대신 '바케스'를 들고 다니며 고기 채에서 털어내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망을 손으로 잡고 막 털어 넣으려는 순간 스위치를 눌렀으니 어쩔 것인가. 찌릿찌릿 감전(感電)을 당해서 뒤로 떨어져 뇌진탕의 짜릿한 맛을 보고 만 것이었다.

동시에 '바케스'는 내동댕이쳐져 고기는 둥둥 아래 보로 떠내려갔다. 나중에 건져보니 2/3 중 나머지는 죄다 살아가고 1/3 정도만 건졌다.

다슬기 몇 마리 더 잡아 병천이네 집으로 가서 어죽을 끓여 밤새 소주 대병을 세 병이나 마셨다.

무릇 촌놈은 따로 있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몰랐으니 그 아이들은 확실히 촌놈이었다. 된통 당하고 난 뒤에야 그걸 아는 것이 촌놈이니, 물정 모르는 사람을 두고 우린 촌놈이라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 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