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싸리 빗자루를 만들어야 겠다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등록 2003.10.11 09:52수정 2003.10.1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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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노란 은행나무 이파리가 신작로를 수북이 덮었다. 낙엽을 빗자루로 긁어모아 태우면 그 냄새가 참 좋다. 낙엽이 다 탈 때까지 기다리며 아무 생각없이 서있는 시간도 좋다.


예전 중고등학교 시절 겨울 방학 과제물로 빗자루를 서너 개 만들어오라고 했다. 요즘 빗자루를 만들어 오라고 하면 애들이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하다.

빗자루를 만들려면 우선 낫을 들고 산에 올라야 한다. 낫은 아버지가 숫돌에 문질러서 날이 시퍼렇다. 여름내 자란 싸리가 내 키만하다. 싸리를 밑동부터 낫을 대고 댕긴다.

그렇게 두어 시간 산 속을 헤매면 싸리가 제법 한 아름이 된다. 이 놈을 낫으로 잘 다듬어 땅바닥에 방아 찧듯이 길이를 가지런히 하여 칡넝쿨로 묶는다. 지게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 시절 우리 집은 농사짓는 집안이 아니었기에 지게가 있을 리 만무하다. 한 아름되는 싸리를 어깨에 지고 집으로 내려온다.

다시 싸리가지를 잘 다듬어 싸리 일곱 여덟 가지를 철사로 단단히 묶고, 철사로 묶은 싸리가지 두 단을 반대로 한다음 철사를 묶고, 다시 어슷하게 비끌어 메어 빗자루 모양을 낸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싸리가지만 고르고 가지런히 하여 만들면 잘 생긴 게 보기도 좋고 마당 쓸기도 좋다.

빗자루 숱이 많으면 낙엽 쓸기에 안성맞춤이다. 빗자루 숱이 달아 몽땅해 질 때까지 제법 오래 쓴다. 잘 만들 줄도 모르는데 용을 쓰며 빗자루 서너 개를 만들고 나면 손바닥에 물집이 생긴다.


예전에는 플라스틱 빗자루보다 싸리 빗자루를 많이 사용했다. 그 시절 강원도에 눈이 많이 왔다. 눈가래로 치우기도 하지만, 애들이 일렬로 쭉 서서 싸리비를 하나씩 들고 단체로 눈을 쓸었다. 요즘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싸리 빗자루에 대한 추억도 많다. 수업시간 공부는 안 하고 딴 짓을 하는 녀석이 있으면 선생님은 빗자루에서 제일 굵은 가지를 뽑아 종아리를 때리셨다. 때리다 부러지면 또 다른 가지를 뽑아 때리셨다. 그러면 나중에는 빗자루가 꽁지 빠진 수탁모양 헐렁헐렁해져서 빗자루로 쓸 수 없게 된다.


옛날에는 포장도로가 없었다. 집 마당도 골목길도 흙바닥이었다. 어머니는 이른 아침 아침밥을 하기 전에 마당을 쓰셨다. 가끔 내가 그 일을 거들기도 했다. 지저분한 마당을 다 쓸고 나면 기분이 개운하다.

지금이야 콘크리트로 다 발라놓아 먼지나 부산물이 거의 없지만, 옛날에는 지저분한 게 많았다. 부지런한 집의 골목은 깨끗하다. 아침마다 빗자루로 골목청소를 하기 때문이다.

요즘도 환경미화원들이 거리 청소를 한다. 옛날의 싸리 빗자루가 아니라 플라스틱 빗자루다.

낙엽은 한번에 다 떨어지지 않는다. 단풍이 들어 색이 바래고 찬바람이 불어 올 때까지 떨어진다. 하루만 지나도 수북이 쌓인다. 노란 조끼를 입은 환경미화원들이 큰 신작로를 쓴다. 그 광경이 낯설지 않다. 마당을 쓸어본지 오래되었다.

직접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면 깨끗해진 마당은 자신에게 상쾌함을 가져다준다. 결국 마당과 나는 나뉠 수 없는 하나이다. 마당이 더러워지면 결국 그 안에 있는 나도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올 가을, 싸리 빗자루를 몇 개 만들어야겠다.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낙엽을 쓸면서 구수한 낙엽 타는 냄새를 맡으며 지나간 그리운 풍경과 옛 동무들을 추억하고자 한다. 커피도 한 잔 있었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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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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