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남
시인이자 철학자인 노겸 김지하(63)의 궤적을 좇는다는 것은 해방 이후 한국의 현대사를 반추하는 것인 동시에 남한 사상사(思想史)의 변화과정을 탐구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김지하. 그가 걸어온 길 위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폐결핵에 걸린 심약한 몸으로 한일협정 반대시위와 반유신 민주화투쟁에 매진한 20대 초반을 거쳐 '오적(五賊)'과 '비어' '타는 목마름으로'와 '황톳길' 등의 절창을 내놓으며 문학을 통한 인간해방에 기여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이후 동아일보에 발표한 옥중수기 '고행 1974...'로 재수감되기까지 김지하는 박정희 유신과 대적할 몇 안 되는 상징적 대항마로 역할했다. 이때까지의 김지하는 파괴를 통한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꿈꾸던 청년 혁명가였다.
하지만 1980년. 6년여의 영어생활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온 김지하는 달라져있었다. 이후 그의 행적은 이전과는 달리 진보진영에서조차 지탄을 받기도 했다. 1991년 이른바 분신정국에서 조선일보 지상에 발표한 칼럼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원제는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였다)'를 둘러싼 논란은 그 극단적인 예다.
20~30대 김지하와 40대 이후 김지하를 변별할 수 있는 잣대는 '혁명'과 '생명'. 무엇이 피 뜨거운 혁명가 김지하를 삶을 관조하는 생명사상가로 바꾼 것일까?
'생명사상이란 무엇인가'와 '21세기와 생명사회론'으로 각각 이름 붙여진 김지하의 최근작 <생명학>(전2권·화남)은 누구나 궁금해할 위의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읽힌다.
책은 김지하가 새로운 세기의 화두로 파악하고 있는 '생명' '평화' '상생'에 대한 깊이 있는 담론은 물론, 동서양의 생명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여기서 김지하는 유럽의 생태학과는 그 기반과 실천방식에서 대별되는 한국적 생명학을 설파한다.
겨울날 칼바람 같은 공포와 폭압의 독재에도 불구하고 봄은 1979년에도 왔다. 차가운 감옥바닥에서 맞이하는 봄. 극심한 고문후유증과 밀실공포증을 앓고있던 김지하에게 그 봄은 더 이상 희망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처참한 상황에서도 콘크리트 벽에 뿌리를 내리는 개가죽나무. 김지하는 바로 거기서 '생명'을 봤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4년.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들. 혁명이 아닌 생명을 매개로 김지하는 또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까?
방현석, 후일담 문학의 극복을 위하여
- <2003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