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순간은 왜 그리도 짧은 것일까?

자연은 아무리 아름다운 순간이라도 머물지 않는다.

등록 2003.10.20 10:36수정 2003.10.2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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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미봉에서 바라본 일몰의 모습- 가장 뒤에 있는 산이 한라산입니다.

지미봉에서 바라본 일몰의 모습- 가장 뒤에 있는 산이 한라산입니다. ⓒ 김민수


해가 짧아진 요즘은 오후 6시만 되어도 어둠이 찾아올 정도로 낮의 길이가 짧아졌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식물도 잠을 잔다고 하는데 고난의 계절인 겨울을 맞이하기 전에 충분한 수면을 하라고 배려를 해 준 것만 같습니다.


30여 분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오름의 끝자락에 해가 걸려 있습니다. 조금만 빨리 걸어가면 저 해가 오름 뒤로 떨어지기 전에 숲길을 벗어날 것 같아서 부지런히 걸어봅니다. 그러나 해는 기다려주지 않고 아직도 오름의 뒤편에 자신이 있음을 붉은 빛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 예쁘다.'

이런 평온한 아름다움이 좀더 길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준다면 얼른 집에 가서 아이들도 데리고 나오고, 아내도 데리고 나와 함께 이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을 텐데 아쉽습니다.

'자연은 아무리 아름다운 순간이라도 머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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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개인적으로 일출과 일몰의 때가 하루의 모든 시간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때는 자신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빛을 맞이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어가기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처음 보는 색다른 모습, 그러나 언젠가 보았음직한 고향 같은 모습으로 다가와 발걸음을 붙잡곤 합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는 계절의 변화를 실감나게 합니다.

어쩌면 아름다움, 행복, 희망 이런 단어들은 지속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속적이지 않으면서도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습니다. 늘 아름답지 않지만, 늘 행복하지 않지만, 절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길이라는 여정에서 순간순간 그것을 발견하고 만들어가면서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은 아닌지요?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면서도 슬퍼하지 않는 것은 저것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기나긴 고난의 계절 겨울이 지나면 또 다른 모습으로 연하디 연한 연녹색의 새싹을 낼 것을 미리 보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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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억새가 가을 바람에 흔들리며 먼 하늘을 향해 손짓하는 듯 합니다.
하늘을 향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아름다운 석양이여, 안녕.'

우리들에게도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아름다운 순간이 추해지기도 하는데 그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 두려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아름다움이 퇴색되는 것은 아닐런지요. 그리고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통해서 다른 이들도 아름답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그 아름다움은 빛을 잃어 가는 것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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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밤이 오기 전 새들은 집으로 날아들고 이파리를 모두 놓아버린 나무는 겨울을 날 꽃눈을 살포시 뜨고 지는 노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출과 일몰 사이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일출처럼, 일몰처럼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들은 주목받지 못하는 시간들에 대해서 두려워합니다.
오히려 주목받지 않기에 더욱더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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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고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파리가 머물던 자리에도 꽃눈이 생기겠지요.

'다음에는 깊은 가을 날 붉게 타듯이 물들 때까지 온전한 이파리를 간직하길 바래.'

아름다운 순간은 짧습니다.
아름답다고 머물지 않으므로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는 자연의 모습은 왜 아름다운 순간은 그리도 짧은 것인지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시골에 살다보면 자연의 오묘한 아름다움을 바라보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 산책을 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되는 것 같고, 지천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될 것만 같습니다.

새벽에 마당에 서면 지저귀는 새소리, 밤새 안녕하셨냐며 밥 달라고 짖어대는 멍멍이들, 하얀 안개에 둘러 쌓여 신비감을 더하고 있는 오름들, 바닷가로 발걸음을 옮기면 밤새 고기잡이를 마친 어선들이 아침햇살을 맞으며 돌아오는 풍경, 재잘거리며 버스정류장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 트럭 뒤에 옹기종기 모자와 수건을 두르고 일터로 나가는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

그들을 만나는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모두가 아름답게 마음속 한켠에 남아 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기에 오래오래 그 아름다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왜 그리도 아름다운 순간이 짧은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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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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