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40

백악루에 나타난 광견자 (2)

등록 2003.10.20 12:42수정 2003.10.2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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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이번에 철마당 당주가 되신 대인이 아니십니까? 하핫! 선무곡에서 뵙고 이곳에서 또 뵙는군요."

"누구…?"


"하핫! 소생을 모르시겠습니까? 선무분타에 건초를 납품하던 노삼입니다요."

"아아! 그렇지. 노삼, 오랜만이네. 헌데 여긴 어쩐 일인가?"

"하하! 소생이 무림천자성 구경을 왔습니다요."

"아! 그런가?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우선 자리에 앉게."

"하하! 고맙습니다요."


누가 보아도 아주 자연스러운 만남이었다. 둘은 선무분타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를 화제로 삼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보아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렇기에 주객들의 쏠렸던 시선은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특별히 관심을 끌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둘은 입만 벙긋거리며 웃음만 지을 뿐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있었다.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단주님의 부르심을 받잡삽니다. 속하, 금면십호입니다.'

전음을 보낸 청년은 장난이라도 하듯 찻물을 찍어 탁자 위에 선을 그었다. 그것을 본 이회옥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이회옥과 금면십호의 행위는 제세활빈단의 비밀 암호였다. 백악루에 들기 전 이회옥은 잠시 머뭇거리는 척하며 바닥에 태극 문양을 그려놓은 바 있다.

그것 역시 제세활빈단원을 부르는 비밀신호였다. 그것은 누가 확인하나 싶어 창가 자리를 부탁했던 것이다.

'어르신께 초특급으로 전할 말이 있네. 무림천자성에서는…'

이회옥은 당주급 회의에서 알게 된 비밀을 화담 홍지함에게 전하라 하였다. 무림천자성이 조만간 주석교를 초토화시키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만일 무림천자성의 공격이 개시되면 주석교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새로 개발하였다는 천뢰탄이라도 사용하게 되면 선무곡으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우려도 있다. 그렇기에 피해를 최소할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라는 것이었다.

'알겠는가?'

'존명! 단주님의 명을 전하겠습니다. 그나저나 큰일이군요. 주석교에서 천뢰탄을 사용하기라도 하면… 아니? 저자는…?'

'왜?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들어왔는가?'

차를 마시는 척하면서 알아들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던 금면십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이회옥의 뒤쪽에 자리를 잡으려는 인물 때문이었다.

'단주님! 악인록을 기억하십니까?'

'악인록? 기억하고 말고…'

'그렇다면 속하에게 명을 내려주십시오'

'무슨 명(命)…?'

밑도 끝도 없는 말에 대체 왜 그러나 싶어 고개를 돌리려던 이회옥은 귓가로 들리는 전음에 흠칫거렸다.

'단주님! 광견자(狂犬子) 금대준(禽大 )이 왔습니다.'

'무어라…? 광견자 금대준…?'

'예! 사람 같지 않은 놈이 왔습니다.'

광견자라는 향기롭지 못한 외호를 지닌 금대준은 선무곡주 선출이 끝난 직후 무림천자성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던 인물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면 무림천자성이 있는 무한을 향해 절을 하던 인물이며, 무림천자성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옳다는 생각에 젖어 있는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무림천자성의 이익에 반한다면 선무곡은 어찌되어도 괜찮다는 상념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무 죄도 없는 두 소녀가 마차에 치어 죽었을 때에도 무림천자성 편을 들어 많은 사람들의 공분(公憤)을 사기도 하였다.

그래서 제세활빈단의 젊은 단원들은 악인록을 작성할 때 삼의를 비롯하여 광견자와 변견자, 그리고 취견자와 맹도를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결정한 바 있다.

'단주님! 명만 내려주시면 저 더러운 놈의 기름진 배때기를 쑤셔버리겠습니다. 그래서 놈이 다시는 냄새 나는 아가리를 놀리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명을 내려주십시오.'

금면십호는 살기를 감추려하지 않았다.

'안 되네. 지금은 저자를 처단하는 것보다 어르신께 소식을 전하는 일이 더 급선무이네. 그러니 자네는 이만 가보게.'

'단주님…! 저 놈을 살려두면…'

'걱정 말게. 저 놈은 본좌가 알아서 하겠네.'

'……!'

'일이란 선후(先後)가 있고 경중(輕重)이 있네. 자네의 심정은 이해하나 지금은 어르신께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네. 그러니 이만 살기를 누그러뜨리게. 이건 단주로서 내리는 명이네.'

금면십호의 굳은 얼굴을 본 이회옥은 짐짓 쾌활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여기서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술이나 한잔하세. 이보게 점소이! 여기 술 좀 가져오게."

"헤헷! 알겠습니다요."

굽신거리던 점소이는 향 좋은 여아홍을 가져왔고, 금면십호는 두 개의 주호(酒壺)가 비워진 뒤에야 물러났다.

그는 술을 마시는 내내 반드시 광견자의 명줄을 끊어 놓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물론 전음이었다.

'흐음! 광견자라고…?'

금면십호가 물러간 뒤 이회옥은 그가 한 말을 반추하고 있었다.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광견자는 선무곡 사람이 아니라 무림천자성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이구, 여기까지 행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흠! 자네가 보자고 했다고? 그나저나 여기는 웬일인가?"

"헤헤! 소인이야 어르신을 뵈려는 일념에 사는 놈이 아닙니까? 그저 대인을 만나 뵙고 문후나 여쭤보려고…"

"뭐라? 문후나 여쭤? 본좌가 할 일 없는 자네의 문후나 받는 그런 한가한 인물로 보였는가?"

이회옥은 등 뒤에서 들리는 음성으로 미루어 누군가 광견자와 동석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음성이 어디선가 들어본 음성인 듯하여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대체 어떤 대화를 나누려는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헉! 아, 아닙니다. 소인이 어찌 대인을… 사실 오늘 대인을 뵙자고 한 것은 요즘 선무곡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드리기 위함입니다요."

"흠! 그런가? 좋네, 그럼 이야기나 해 보게."

"여기서요?"

"왜? 여기서 하면 안 되는 이야기인가? 선무곡 이야기라면 딱히 알고 싶은 것도 없고…"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요즘 선무곡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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