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논 벼 베고 미꾸라지 잡아 내려온 오후

[시골마을 가을걷이 풍경 7] 70년대 이른 새벽부터 벼 베는 산골 가족<2>

등록 2003.11.06 18:57수정 2003.11.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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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평도 안되는 다락논이 아직 있습니다. 여기는 전남 장성군 북일면 금곡영화마을 입니다.
4평도 안되는 다락논이 아직 있습니다. 여기는 전남 장성군 북일면 금곡영화마을 입니다.김규환



나른한 오후 일이 시작되었다. 두 배미를 마치고 세 배미 째로 옮겨갔다. 첫 줄은 논두렁 콩 심어 농은 곳에서 엉떡(언덕의 사투리) 쪽으로 베어 들어가 논두렁에 벼이삭이 걸쳐지게 하고 그 다음부터는 반대로 돌려 차례대로 놓아 나간다.

"애고, 허리야."
"아따, 허리 아픈 거."
"젊은것들이 그런 소리 허면 못써. 니기들이 무신 허리가 있다고 그냐?"
"아푼디 어쩐다요."
"사람 죽어 나갈 때나 '애고' 하는 것잉께 함부로 쓰덜 말어."

마지막 한 다랭이는 못자리 용도로 합 배미를 하지 않아 금방 벨 수 있다. 일곱 명이 채 한 시간도 안되어 일이 거의 마무리되었다. 짙은 갈색으로 변한 메뚜기와 풀무치가 후두둑 몰려 뛰논다. 한 해 벼를 못살게 굴었던 작은 벌레 벼멸구도 바닥에 좌악 깔려 퍼득퍼득 튀어 오른다.

"여기는 아부지가 빌랑께 다들 서둘러 떠나라."
"아부지 왜라우?"
"거시기 헝께."

거시기 하다는 것은 '마지막 부분 끝맺음을 하면 아침잠이 많아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한창 공부하고 일해야 할 나이에 아침잠이 많은 건 사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므로 부지런히 살라는 어른들의 배려가 이런 일에도 적용이 되었다.

그 사이 집이 가까워 누나는 일하다 말고 국솥에 고구마를 삶아왔다. 김치 국물을 마셔가며 뜨끈뜨끈한 물고구마를 두세 개 씩 나눠먹고 떠났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아직 만날 수 있게 해준 마을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곳 한마지기를 평야지대 열마지기와 바꾸지 마십시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아직 만날 수 있게 해준 마을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곳 한마지기를 평야지대 열마지기와 바꾸지 마십시오.김규환


'비까리'와 '소로골' 논은 20년 전 대형 저수지(만화가 김용철 씨는 댐이라 불렀다)에 잠겨 지금은 어디쯤인가 만을 짐작할 뿐이다. 다시 그 기억을 되살려서 수렁논 현장으로 나락 베는 모습을 찾아가 보자.


청초로 남아 있는 벼. 익지 않고 말겠군요.
청초로 남아 있는 벼. 익지 않고 말겠군요.김규환


서울에 돈벌러 갔던 두 형과 누나마저 사장님께 사정사정 해서 집으로 내려와 일손을 도우러 내려왔다. 형제들 간에 도시 친구들, 서울이라는 곳에 대한 장황한 서울이야기와 학교 공부 얘기를 늘어놓느라 그리 힘겨운 줄 몰랐다.

'비까리'로 향하는 길은 마을로 다시 들어와 옛 주막거리가 있는 '소로골' 초입 삼거리에서 '평까끔'을 비켜 가면 '비까리'에 논이 3마지기가 있다. 말이 논이지 산과 산이 코앞에 있다. 계속 가다보면 그곳이 '긍내기'(극락)이라 부르는 곳인데 고개 너머는 곡성군이요, 문중 산(山)과 논, 밭이 있다.

산골짜기로 접어들자 싸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 우리까지 몇 날이고 논물을 빼본다고 했지만 논 곳곳에서 물이 솔솔 솟는 샘을 갖고 있는 수렁 논 벼 베기는 몸 버릴 각오로 덤벼야 한다.

깨끗한 척하거나 옷에 흙탕물 튀는 걸 두려워했다가는 외려 손해다. 일찌감치 웃옷과 바지를 벗어 돌 위에 올려놓고 '흐레'(질컥질컥 물렁물렁 썩은 흙내음 가득한 미꾸라지 많이 사는 논과 방죽의 흙)와 즐길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싸한 기운이 돌더니 닭살이 오돌오돌 돋았다.

"성(형)! 성이 먼저 들어가."
"니기들이 먼저 들어가라."

황금들녁과 억새의 조화
황금들녁과 억새의 조화김규환


셋째형이 용기를 내서 먼저 들어갔다.

"엄메, 차가운거~"

이윽고 한 사람도 빼지 않고 논으로 들어갔다. 한 발짝 옮길 때마다 발이 무릎까지 빠지더니 곧 하얀 빤스(팬티)를 적시고 사타구니까지 푹푹 빠져 들어갔다. 몇 번을 베던 나는 베는 걸 포기하고 그나마 꽝꽝하고 갯산 쳐놓은 곳에 올려진 볏단을 높은 논두렁 언덕으로 끌어내는 작업을 했다.

사실 볏가리를 옮기는 사람은 더 추한 몰골이 되어간다. 위아래 할 것 없이 온 몸이 흙탕물 범벅이 되니 말이다. 얼굴도 머드팩 한 거나 마찬가지의 딴 세상 사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 쪽 높은 산꼭대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다섯 배미 중 한 매미만 끝내면 오늘 일은 대강 마무리 할 수 있다.

"직아부지, 쌀 많이 나겄소?"
"글렀구만. 볏단 나오는 것 보면 몰르겄는가?"
"여그서 많이 나야 아그들 부쳐 줄 것인디…."
"밥맛은 좋겠구만."

얼른 끝내고 미꾸라지 잡는데 관심이 가 있던 우리들과는 달리 어른들은 양을 걱정하신다. 한 때는 시골에서 자수성가했다던 우리 집이었기에 어머니는 과거의 향수가, 아버지에게는 자신이 한 때 방탕하게 술과 놀음에 빠져 지냈던 과거가 떠오르는 지도 모른다.

"아부지 다 끝냈어라우~."
"깔 한 깍지씩 벼서 서둘러 집으로 가자."
"아부지 큰 성이 근디 미꾸라지 좀 잡자그요."
"알았다. 쬐끄만 잡고 바로 오니라."

가지런히 베어 놓은 벼를 내일이나 모레 뒤집어 주러 가야 합니다.
가지런히 베어 놓은 벼를 내일이나 모레 뒤집어 주러 가야 합니다.김규환


'소로골' 쪽은 벌써 해가 떨어졌다. 간혹 서사면(西斜面) 산꼭대기만 붉은 해가 부분 비출 뿐이다.

일도 끝마쳤겠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미꾸라지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남자 형제 네 명이 달려들어 수렁 흙을 뒤집는다. 두 손을 푹 찔러 차례대로 까뒤집자 흙 썩은 냄새와 함께 뽀글뽀글 거품이 피어오른다.

"야, 한 마리 잡았다."

제일 먼저 잡은 사람은 셋째형이었다.

"규환아! 바가치(바가지) 갖고 와."
"응 알았어."

세 형이 뒤집어 잡은 것은 소죽바가지로 절반에 가까웠다. 시간만 되면 무척 많은 양을 잡을 수 있었지만 어둑어둑해져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 또랑(도랑)에 대강 씻고 집으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아버지는 소죽을 쒀주고 누나와 어머니는 고추를 갈아 무 씰가리(시레기) 넣고 국을 끓이고 있었다. 이제 미꾸라지만 넣으면 살이 살살 녹는 추어탕에 배불리 먹고 잠을 청하면 된다.

"다들 애썼다. 일찍 자고 낼 나락 뒤집으러 가야한다."는 말씀도 잊고 밤새 호롱불을 끄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행복한 밤엔 별도 반짝반짝 빛났고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은하수 강을 건너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가마솥에 미꾸라지. 사실은 지금이 제일 맛있는 철입니다. 또 고향에 가고 싶네요.
가마솥에 미꾸라지. 사실은 지금이 제일 맛있는 철입니다. 또 고향에 가고 싶네요.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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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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