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평도 안되는 다락논이 아직 있습니다. 여기는 전남 장성군 북일면 금곡영화마을 입니다.김규환
나른한 오후 일이 시작되었다. 두 배미를 마치고 세 배미 째로 옮겨갔다. 첫 줄은 논두렁 콩 심어 농은 곳에서 엉떡(언덕의 사투리) 쪽으로 베어 들어가 논두렁에 벼이삭이 걸쳐지게 하고 그 다음부터는 반대로 돌려 차례대로 놓아 나간다.
"애고, 허리야."
"아따, 허리 아픈 거."
"젊은것들이 그런 소리 허면 못써. 니기들이 무신 허리가 있다고 그냐?"
"아푼디 어쩐다요."
"사람 죽어 나갈 때나 '애고' 하는 것잉께 함부로 쓰덜 말어."
마지막 한 다랭이는 못자리 용도로 합 배미를 하지 않아 금방 벨 수 있다. 일곱 명이 채 한 시간도 안되어 일이 거의 마무리되었다. 짙은 갈색으로 변한 메뚜기와 풀무치가 후두둑 몰려 뛰논다. 한 해 벼를 못살게 굴었던 작은 벌레 벼멸구도 바닥에 좌악 깔려 퍼득퍼득 튀어 오른다.
"여기는 아부지가 빌랑께 다들 서둘러 떠나라."
"아부지 왜라우?"
"거시기 헝께."
거시기 하다는 것은 '마지막 부분 끝맺음을 하면 아침잠이 많아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한창 공부하고 일해야 할 나이에 아침잠이 많은 건 사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므로 부지런히 살라는 어른들의 배려가 이런 일에도 적용이 되었다.
그 사이 집이 가까워 누나는 일하다 말고 국솥에 고구마를 삶아왔다. 김치 국물을 마셔가며 뜨끈뜨끈한 물고구마를 두세 개 씩 나눠먹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