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사꾼' 전희식의 농사짓는 이야기

[책소개]<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다>

등록 2003.11.21 11:14수정 2003.11.24 10:42
0
원고료로 응원
혹시 최초의 인간 아담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그렇다. 그는 땅을 일궈 먹고사는 농사꾼이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가진 숱한 직업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근본이 되는 것은 뭐니 뭐니해도 농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서 농사꾼은 가장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오죽하면 농사꾼들이 대거 서울 한복판에 몰려들어 당국에 대책을 내놓으라고 그토록 격렬한 시위를 벌였을까. 그러나, WTO 농산물 전면개방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한 농촌에서 더 이상 내일의 희망을 발견하기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고 속단하지는 말자.

a

ⓒ 정병진

아주 드물긴 하지만, 모두들 떠나는 농촌으로 오히려 귀농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는 생계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대안의 삶을 일구고자 자발적으로 귀농하는 사람들도 일부 존재한다. 저자 전희식씨는 후자의 경우다. 그는 영성(명상), 생태, 대안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고향도 아닌 전북 완주의 두메산골에 들어가 심신의 수련을 쌓으며 농사를 짓고 있다. 이력을 보니 15년 간이나 서울, 인천 등지에서 노동운동에 몸담았던 사람이다. 그랬다가 "땅과 자연에 가까이 가는 생활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귀농의 어려운 선택을 한 것 같다.


그냥 농사짓기도 힘든 일이지만, 유기농 농사꾼으로 살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에 대해서는 변산 공동체 윤구병 선생의 <잡초는 없다>에서도 생생하게 읽은 적 있다. 그런데, 저자는 생계자립을 위한 팽팽한 긴장은 잘 내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각박한 현실을 이겨내는 낙천적 기질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이는 그가 안 사 입고 덜 먹고 아껴 쓰는 생활 습관이 몸에 잘 배어 있는 데다, 가족들도 거기에 군말없이 잘 호응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를테면 그는 이발관에 가지 않고 혼자 머리를 깎는가 하면, 옷도 안 사 입은 지 5~6년이 넘었고, 양말도 기워 신을 정도다.

스스로를 농주(農主)라 칭하는 저자는 귀농을 "관행과 남의 시선을 위한 삶을 더 이상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삶의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여 그가 생각하는 귀농은 돈이나 벌자고 직업을 농업으로 바꾸는 것과는 상관없다. 바른 농사짓기는 그 자체가 땅을 살리는 거룩한 행위며, 우주와의 소통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약이나 비료를 들이부어 겉보기만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내는 사람은 더 이상 농사꾼이 아니라 땅 공기 물에 대한 침략자라는 어찌 보면 극단적 규정까지 내리고 있다. 아마 바른 농사꾼으로 서겠다는 본인의 굳은 다짐에서 나온 말이리라.

그러나 현실은 반드시 마음먹은 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책에 자세히 나와 있진 않지만, 저자는 귀농하고서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별 수 없이 트럭운전, 무역, 책 장사도 해야했고, 지금은 인터넷 사업도 하고 있다고 머리말에 썼다. 내가 아쉬운 부분은 이 점이다. 귀농하여 힘겨웠던 이야기, 그러니까 좌절하고 현장을 떠나고 싶었던 순간들에 대한 어두운 기록들이 내용 중에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귀농이 단지 선언적인 차원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살림살이의 고충에 대한 좀 더 솔직한 고백이 들어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는 아직 자신을 초보 농사꾼이라고 한다. 가족형 자급농을 이상으로 유기농을 고집하는 그의 농사짓는 모습이 이웃 노인들에게 아직 서툴고 불안하게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워낙 부지런히 배우고 힘쓰는 그이기에 실상은 농사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의 고추농사는 동네의 다른 어떤 집의 것보다 싱싱한 수확을 얻어 태양초라고 자랑한다. 감자나 밀농사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 같다. 근데 농사의 기본이 되는 벼농사 이야기는 빠져 있어 정말 잘 짓고 있는지는 궁금하다. 하긴 젊은 농사꾼답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실험정신을 잃지 않는 그이기에 잘 해내고 있겠지만.


열댓 가구 사는 작은 마을에 들어와 귀농한 지 벌써 9년째. 저자는 그동안 자식농사도 게을리하지 않은 것 같다. 농사짓는다고 해서 딸과 아들의 교육문제에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겪는 일상의 문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대화하고, 함께 풀기 위해 고투한 흔적이 엿보인다.

못된 담임 선생에게 구박받던 아들, 대안학교에 보낸 딸에 대한 이야기는 그대로 우리 학교교육이 처한 위기의 현실과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을 것인지를 잘 이야기해 주고 있다.


평소 명상훈련이 잘 되어 있는 사람답게, 자잘한 일상을 놓치지 않고 날렵하게 그 속에서 알짬을 찾아내어 삶의 교훈으로 삼고 나누는 저자의 솜씨는 대단하다. '뫔'(몸과 마음)을 하나로 일치시키기 위하여 항상 성찰의 끈을 놓지 않는 그의 치열한 모습을 통하여 많은 이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 먹다 - 전희식의 귀농일기

전희식 지음,
역사넷, 2003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서울대 역사교육과 경쟁률이 1:1, 이게 실화입니다 서울대 역사교육과 경쟁률이 1:1, 이게 실화입니다
  2. 2 "600억 허화평 재산, 전두환 미납 추징금으로 환수해야" "600억 허화평 재산, 전두환 미납 추징금으로 환수해야"
  3. 3 아무 말 없이 기괴한 소리만... 대남확성기에 강화 주민들 섬뜩 아무 말 없이 기괴한 소리만... 대남확성기에 강화 주민들 섬뜩
  4. 4 아내가 점심때마다 올리는 사진, 이건 정말 부러웠다 아내가 점심때마다 올리는 사진, 이건 정말 부러웠다
  5. 5 벌점을 줄 수 없는 이상한 도시락집 벌점을 줄 수 없는 이상한 도시락집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