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월척이우다!"

해안가에서 텔레비전, 세탁기를 주웠습니다

등록 2003.11.24 07:35수정 2003.11.2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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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수빈이와 용휘-"영차!영차!"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수빈이와 용휘-"영차!영차!"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 김민수

어제 아침에는 겨울로 성큼성큼 다가서는 것만 같더니 오후가 되면서부터 화창한 봄날처럼 화사한 날씨가 되었습니다. 다행입니다. 해안가에 나가서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기로 한 날인데 날씨가 궂거나 바람이 심하면 청소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거든요.


점심을 먹고 교인들과 아이들이 동네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행사입니다. 갈 때마다 쓰레기가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치우는 만큼은 깨끗해지는 것이라고 늘 격려를 합니다. 앉아서 백 번 "아멘!"하는 것보다 한 번 나가서 직접 쓰레기를 줍는 일이 더 신앙적인 일이라는 데 교인들도 공감을 하고 신명나게 봉사를 합니다.

꼬마 둘이서 모래사장에서 비닐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크기가 보통 큰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힘만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영차! 영차!"를 연발합니다.

재미있는 풍경입니다. 원래 둘이 별로 친하지 않은데 어쩐 일인지 이번 주에는 오빠, 동생하며 사이좋게 지내고 뽀뽀도 했답니다. 그러더니 해안가에 청소하러 나와서도 둘이 붙어 다닙니다. 둘이 사귀나 봅니다.

a 이렇게 많은 어른들이 10여분간 씨름을 해야 가까스로 모래에 파묻힌 비닐을 꺼낸다.

이렇게 많은 어른들이 10여분간 씨름을 해야 가까스로 모래에 파묻힌 비닐을 꺼낸다. ⓒ 김민수

아이들의 힘만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아 어른들이 달라붙었습니다. 어른들이 이만큼 달라붙어서 10여분간 힘을 쓰니 겨우 모래사장에 박혀있는 비닐을 빼낼 수 있었습니다. 자그마치 그런 비닐과 차양막을 5개나 모래사장에서 빼냈습니다.

버리는 쓰레기들은 왜 그렇게도 보이지도 않게 꼭꼭 숨겨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어쩌면 그리도 대담하게 버리는지, 왜 바닷가에 텔레비전도 있고, 세탁기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월척이우다."


"예, 오늘은 자잘한 것 말고 큰 것을 잡았습니다. 그래도 지난 번 나왔을 때보다는 조금 깨끗하죠? 저 아이들에게 깨끗한 자연을 물려주는 것도 우리들의 일인데 큰일입니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망가져 가는 자연을 보노라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당장의 돈벌이에만 급급해서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대가를 치뤄도 복구하지 못할 자연을 일순간에 파괴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순간의 쾌락을 위해서, 편리함을 위해서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합니다. 당장 오늘만 즐거우면 그만입니다.


a 두어시간 동안 주운 쓰레기의 극히 일부, 대략 5%정도의 양이다.

두어시간 동안 주운 쓰레기의 극히 일부, 대략 5%정도의 양이다. ⓒ 김민수

이렇게 두어 시간 해안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주운 쓰레기의 일부입니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이렇게 주워서 길가에 내어 놓으면 환경 미화원들이 수거를 해간다는 것입니다. 아마 주운 것을 우리가 별도로 처리를 해야 한다면 해안가 청소는 엄두를 내지도 못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다 간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들입니다. 잠시 머물다 갈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자연을 더럽히고, 파괴하고, 소유하려는 발상자체가 여행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저는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지금도 저는 그 당시 저희 동네 어른들의 무지함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보상금에 눈이 어두워 아이들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산야를 흔적도 없이 파헤쳐 버려 저의 고향은 고층 아파트에 묻혀버렸습니다. 아주 간간이 남아있는 흔적들에나마 감사를 해야하는 현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어른으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아름다울 때는 그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합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면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죠. 곁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다가 사라졌을 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지만, 그 순간 이미 늦어버린 것이죠.

다랑쉬오름에 올랐을 때 한 촌로를 만났습니다. 동쪽편으로 세화송당지구 온천 개발을 하느라 온통 파헤쳐진 산하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 노인도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미친 놈들…."

그 한 마디에 담긴 의미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a 그래도 아직은 깨끗하다. 아직은......

그래도 아직은 깨끗하다. 아직은...... ⓒ 김민수

그래도 아직은 깨끗합니다.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지는 햇살을 받으며 한 가족이 썰물로 모래사장을 드러낸 바다를 걸으며 행복해 하는 웃음소리가 은은하게 퍼지니 말입니다.

아직은 깨끗할 때, 아직 늦지 않았을 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장의 이익만 강조하는 개발 논리, 경제 논리로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있어서 늘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달에도 그 다음 달에도 교인들과 함께 이 곳을 찾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목사님, 월척이우다!"하는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소리 대신에 "목사님, 몇 시간을 다녀도 쓰레기 봉투 하나를 채우기가 힘드네요"하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쓰레기 주으러 왔다가 모래사장에서 교인들과 한바탕 신나게 뛰어 놀기도 하고, 조개도 캐고, 여름에는 물싸움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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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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