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박철
나는 아침밥을 안 먹은 지 거의 10년쯤 된 것 같다.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 꼬박 매끼를 챙겨 먹는 것도 그렇고, 대신 아침에 과일 한 쪽에 녹차를 한 잔 마신다. 속이 편하고 좋다. 아침 식사를 건너뛰고 오전 11시 30분경, 제대로 된 식사를 한다.
나는 채식, 육식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다. 아내가 아침부터 바빠 토요일이라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아딧줄이 대신 밥을 차려 주었다. 김치찌개를 만들어 주어서 맛있게 잘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 신문을 읽고 어느 잡지사에 보낼 글 한 꼭지를 썼다. 12월 초 출간될 내 산문집 원고 교정도 보았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쯤 된 것 같다. 그런데 내 서재 안으로 고소한 냄새가 문틈 사이로 들어온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아딧줄이 끓인 라면을 아내와 아딧줄, 넝쿨이 셋이 머리를 맞대고 냄비째 밥상 위에 놓고 라면 건더기를 건져 먹고 있었다. 라면을 건져 먹는 폼이 사뭇 전투적(?)이다. 오후 2시가 넘어서 이제 점심밥을 대신해서 라면을 먹는 것이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아내와 애들은 먹어보란 말도 하지 않는다.
세 모자(母子)가 라면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딧줄에게 물었다.
"야, 라면 몇 개 삶았니?"
"3개요."
고작 라면 3개를 삶아 놓고 먹으니 전투적으로 먹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대여섯 개 삶았다면 한 젓가락 얻어먹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얻어먹긴 틀렸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다.
"라면을 3개를 삶았다니 한 젓가락도 못 얻어 먹겠네. 많이 먹어라."
그랬더니 아내가 그러지 말고 그럼 한 젓가락만 먹어 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못 이기는 척 하고 끼어들었다.
"실은 내가 라면 국물이 먹고 싶어서 그래, 건더기는 안 먹고 국물 한 국자만 먹을게."
그런데 냄비를 보니 돼지고기 비계도 둥둥 떠 있고 계란도 풀어 놓았는지 완전 잡탕이 아닌가?
"야! 라면에 돼지고기를 넣고 삶는 사람이 어디 있냐?"
그러자 아내가 거들고 나선다.
"돼지고기를 넣으면 맛이 어떻게 될까 다 궁리하고 넣은 것이니 타박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