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여는 꽃, 동백

내게로 다가온 꽃들(1)

등록 2003.11.26 12:36수정 2003.11.2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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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詩)가 연재 '꽃을 떠난 여행'을 마감한 이후 줄곧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꽃 여행의 마지막 제목을 <그 꽃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라고 한 탓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 여행을 하면서 꽃보다 아름다운 분들을 많이 만났지만 4년째 들꽃을 색연필로 그리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 이선희 선생을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는 순간, 다시 꽃 여행을 시작해야겠다는 욕심이 스멀스멀 깊은 폐부에서부터 끓어올랐습니다.

12월초부터 시작하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일주일이나 앞당겨 조심스럽게 <내게로 다가온 꽃들>이라는 제목의 연재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김민수
서화(序花)로 겨울을 열어 가는 꽃 동백(冬柏)을 소개해 드립니다. 동백은 아주 오랜 준비에 준비를 거듭한 후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 계절인 겨울에 피는 꽃, 겨울을 열어 가는 꽃입니다.

1936년 5월 <조광>지에 발표된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이 있습니다.

동백꽃이 핀 농촌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한 점순이의 애정공세를 주인공은 전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성간의 애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적극적인 성격의 '점순이'와 그것을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소년을 대립구도로 설정함으로써 해학적인 싸움을 벌이게 한다.


소녀는 소년을 구운 감자로 유혹하기도 하고, 소년의 닭에게 해코지를 하기도 한다. 또 '바보', '배냇병신'이라는 원망 섞인 욕설로 그의 관심을 유도해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소년은 눈치없이 점순이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하고 화만 낸다. 마침내 소녀는 소년을 끌어안은 채 동백꽃 속에 파묻히고, 소년은 그제서야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김민수
김민수
동백은 동양의 꽃이지만 그 아름다운 자태는 서양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서양에 소개되어 많은 인기를 모았고 정열의 붉은 색으로 많은 노래와 시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뒤마의 소설 <춘희>요, 이를 변형하여 베르디가 창작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eviata)>입니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eviata)>의 무대는 1840년대, 파리입니다. 베르디는 당시 파리 사교계에서 길을 잘못 들어 도미 몽드(고급 매춘부)의 세계로 들어온 비올레타와 그녀를 사랑하는 알프레도 그리고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고 자기 자식밖에 생각하지 않는 조르지오와 쾌락주의에 몸을 맡기고 사는 파리 사교계의 신사 숙녀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며, '삶이란,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일본에서는 동백나무를 두고 춘(椿)자를 쓴답니다. 그래서 이 오페라의 제목을 <춘희>라고 불렀으니, 우리말로 번역하면 '동백나무 아가씨' 정도가 되겠죠?

쌀쌀한 날씨를 뒤로하고 동백의 유혹에 빠져버린 꽃등에를 보니 마치 뒤마의 소설 <춘희>,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eviata)>에 나오는 알프레도를 보는 듯 합니다.

김민수
동백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낙화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진 꽃입니다. 그래서 땅에 떨어진 이후에도 한참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흙내음을 맡기도 하며 자신의 생을 마감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이 왔던 땅에 잠시 기대어 흙내음을 맡으며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모든 때를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소리를 온 몸으로 들려주고 있는 것만 같아 숙연합니다.

김민수
동백꽃은 꽃의 아름다움과 이파리의 아름다움, 그리고 꽃이 지고 난 후 열매까지도 아름다운 팔방미인의 꽃입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동백기름으로 쪽을 지고 비녀를 꽂은 정갈한 여인네의 머리는 이미 사라진 풍경이지만 아싸하게 뇌리를 파고듭니다.

한 겨울의 추위도 마다하지 않고 피는 꽃, 사시사철 푸른 잎,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미련없이 모든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꽃, 동백을 여러분 마음 한켠에도 활짝 피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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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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