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련에서 날아든 연하엽서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23>공장일기(16)

등록 2003.12.18 12:33수정 2003.12.1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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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80년 당시 나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외상값 때문에 선술집에도 가지 못하고 소주나 막걸리를 사들고 인근 야산에 가서 마셨다

80년 당시 나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외상값 때문에 선술집에도 가지 못하고 소주나 막걸리를 사들고 인근 야산에 가서 마셨다 ⓒ 이종찬

그해 겨울, 그러니까 1980년의 겨울은 창원공단에서 일하는 현장 노동자들에게 그 어느 해보다 추웠다. 공장에 나가더라도 아무런 할 일이 없었다. 그나마 공장 빈터에 각 부서별로 가꾸던 무, 배추를 비롯한 먹거리들도 기를 수가 없었다. 밀린 월급은 점점 개월 수를 더해가기 시작했다.


돈 가뭄도 돈 가뭄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이 더 추웠다. 나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방세와 연탄값 때문에 전전긍긍하거나 월세가 더 싸고 허름한 셋방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절약을 하려고 몸부림을 쳐도 그게 생각처럼 그리 쉽지가 않았다.

바람 찬 날이었다.
외동은 사글세가 삼만원이지만
공장에 가까워 좋고
내동은 만팔천 원이지만
외동보다 십오 분이 더 걸리는 거리다
십오 분이라면 죽도록 피곤한 새벽잠
한숨 더 잘 수 있지만
외동에 비해 연탄 값이 절약된다
그래서 잔업을 사정사정하여 빼고
밤 늦게 추운 마음으로
설레설레 뒤돌아보면서
이사를 한다
다 긁어모아도 리어카 하나 못 채우는
배고픈 같은 허전함에
혼자 얇게 웃었지만
아내는 울고 있는 것 같다
진눈깨비가 쏟아지고 있어
남의 나라 같은 아스팔트가 몹시 미끄럽다
왜 이리 살아야 하나
못 살겠다
임금 인상하라
피 흘린 친구들은
감옥에서 맨 땅을 치며 떨고 있을 건데
남은 우리는 맨날 이리 쫓기고만 있나
겨울이 낳은 것은 빚뿐
그래도 만팔천 원짜리 셋방 뒤
오백 년 묵은 미류나무 한 그루가
어서 오라는 듯
양팔을 크게 벌리고 서 있다

(이소리 '이사하는 날' 모두)


현장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겨울은 여름보다 훨씬 가혹했다. 무엇보다도 연탄값이 더 문제였다. 특히 연탄은 선금을 주지 않으면 아예 배달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총무과에 가서 월급을 내놓으라고 마구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따지다가는 그렇지 않아도 유휴노동자들 때문에 고민하는 그들에게 퇴직을 시키는 빌미가 될 뿐이었다.

그해, 현장노동자들에게 겨울이 보태준 것은 빚뿐이었다. 매일 두 장씩 드는 연탄을 하루에 한 장씩 때고, 그것도 저녁 때마다 이웃집에 사정사정하여 연탄 불씨를 빌려서 때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외상값은 날이 갈수록 부엌 한켠에 채곡 채곡 쌓이는 연탄재처럼 불어나기만 했다.


눈물을 감추며 살아가자
문디 같은 세월이라도 기어이 살아가자
시퍼렇게 눈뜬 넋으로 살아가자
맑디맑은 내 얼굴에
기름 때 부옇게 끼어도
공단에 내려서는 그늘 먹으며
울음 거둔 노동자들 가슴 깊숙이
따스한 사랑으로 살아가자
방이 싸늘히 식어가는 땡겨울
이 세상 공단 주변에
한 치 입김으로 훠어이훠어이 날리며
내 살로 녹이는 노동자들 거친 손
따스하고 다정스러이 비비자
팔목 잘리는 세월이라도 살아가자
한 올 두 올 착취의 세월 먹으며
기어이 살아가자

(이소리 '사랑의 햇살' 모두)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몹시도 춥고 서러웠던 그해 12월, 시내 곳곳에서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으라~'라는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귀가 따갑게 울려퍼지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공장에서는 연말이 다가오기 전에 밀린 월급 일부라도 청산할 것이라는 믿을만한 소식이 마악 들리기 시작할 그런 때였다

"접니더. 저 오늘 바빠서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습니더."


"와? 요새는 공장에서 철야근무로 안하고 술집에서 철야근무 하나? 철야근무가 그리도 그립나?"

"그기 아이고 예…"

"일본에서 니한테 이상한 편지가 왔다. 그라이 씰데없이 술 마시지 말고 퍼뜩 집으로 들어온나."

그랬다. 그 편지는 일본 조총련에서 보내온 연하엽서였다. 그런데 편지봉투 속에는 '조국의 자주통일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선생님께'라는 내용의 연하카드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빨간 표지에 '염원'이라는 제목이 적힌 엽서 크기의 책자까지 들어 있었다.

우스웠다. 공장에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해 쩔쩔 매면서 눈치밥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공돌이한테 '선생님'이라니. 처음에 나는 그 엽서를 읽으며 혼자 쿡쿡 웃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내게 '조국의 자주통일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다는' 그런 단어가 도대체 어울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조국의 자주통일' 어쩌고 저쩌고 하는 단어는 내게 아주 생소했다. 아니 생소했다기 보다는 그런 말들은 주로 북한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이라고 여겨질 그런 때였다. 게다가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런 말을 입에 담으면 아예 '빨갱이'로 낙인찍히는 그런 시대였다.

근데 그 엽서에 적힌 짤막한 글은 '염원'이라는 빨간 책자에 실린 내용에 비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그 조그만 책자 속에는 바로 몇 개월 전에 북한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소식이 빼곡이 실려 있었다. 특히 제○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이 이러저러한 말을 했다는 그런 내용까지 자세하게 실려 있었다.

a <씨알의 소리>에 시를 발표한 뒤부터 나는 모 기관의 끝없는 감시 속에서 불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씨알의 소리>에 시를 발표한 뒤부터 나는 모 기관의 끝없는 감시 속에서 불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 이종찬

그랬으니 집에서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난감했다. 나는 한동안 그 엽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몰랐다. 하지만 그 엽서를 그대로 집에 두거나 그냥 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분명히 들었다. 왜냐하면 이 엽서가 아무런 검열도 없이 내게 곧바로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어떡해야 됩니까?"

"아마도 니가 <씨알의 소리>에 시를 발표했기 때문일 거야. 그 잡지가 일본에도 가거든. 그리고 그 편지는 그냥 그대로 봉해서 우체국에 갖다 줘라. 수취인 거부라고 하고."

"그렇게 하면 아무런 탈이 없겠습니까?"

"아마도 모 기관에서 자네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 그 편지를 받고 자네가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이선관 선생님도 그런 편지를 몇 번 받았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 선생님은 그때마다 일단 내용물을 확인한 뒤 우체국에 가서 수취인 거부로 되돌려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앞으로 모든 행동에 특별히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검은 눈동자가 나를 늘 주시하고 있다며.

그랬다. 내가 그 편지를 수취인 거부로 돌려보내고 난 뒤 얼마 있지 않아서 모 기관요원들이 우리 집에 들이닥쳤다. 그것도 내가 공장에 출근하고 난 뒤에. 그리고 그 사람들은 우리 집 곳곳을 샅샅이 뒤진 뒤에 내 시가 실린 <씨알의 소리>와 당시 내가 읽고 있었던 <창작과비평>을 모조리 수거해 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었던가. 나는 또다시 총무부장의 호출을 받고 총무부로 불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총무부장실에는 한동안 찾아오지 않았던 그 신사가 총무부장과 함께 앉아 비밀스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다행히도 평소에 나를 아껴주었던 황복현 과장이 앉아 있었다.

"아니, 그런 뺄갱이 단체에서 온 삐라를 받았으면 총무부장인 내게 가져올 것이지, 왜 그냥 돌려보내?"

"…"

"그래 무슨 내용이 적혀 있던가?"

"그건 저도 잘 모르지예. 하도 이상한 글들이 적혀 있기에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돌려 보내뿟다 아입니꺼."

그날 안기부에서 나온 그 신사는 내게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오히려 총무부장이 내게 더 많은 질문을 했다. 그 신사는 총무부장이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꼬치꼬치 캐물을 때마다 그저 기분 나쁘게 빙글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있은 며칠 뒤 나는 공장에 입사한 뒤 네 번째로 부서 이동을 당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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